21세기 백주대낮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나치 깃발을 나부끼며 길거리를 행진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차로 치어 죽였습니다. 나치가 창궐했던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냐고요?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지난주에도 나치식 경례를 했던 술취한 미국 관광객이 독일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고 경찰에 체포된 바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죠. 나치 깃발을 나부끼며 행진한 폭동은 믿을 수 없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싸우다 20만 명의 전사자를 남긴 나라, 미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출처 - news2share


미국 버지니아주 샬럿츠빌에서는 지난 11일 밤부터 백인 우월주의자를 비롯한 6000명의 극우단체가 대규모 시위를 열어 나치 깃발과 남부연합기를 들고 폭력 시위를 저질렀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이에 맞선 항의 시위대를 향해 차로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는 말 그대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백인 극우 민병대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시위대를 보호하겠다며 소총 등 개인 화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이 폭동으로 3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하면서 버지니아주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죠.


출처 - news2share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샬럿츠빌 폭동은 남북전쟁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부연합군 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 동상 철거 문제가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샬러츠빌 시의회가 인종주의의 상징물이라며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잇달아 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리 장군은 남부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만, 한편으로 남북전쟁의 원인인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상징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출처 - 문화일보


괜히 리 장군 동상을 들쑤셔서 이 사달이 났다고 주장하는 한심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면 철거에 반대하는 청원이나 서명운동을 하면 될 일이지 나치 깃발을 들고 나와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하겠다는 것은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닐까요? 애초에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원인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총기난사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15년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 총기를 난사해 흑인 9명이 사망한 찰스턴 총격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의 유산인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 및 남부연합군 장군들의 동상 철거 요구가 광범위하게 벌어졌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독재자의 동상이 철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듯, 노예제가 인류 사회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되었는데, 그 세력을 위해 부역한 자들의 상징물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하지만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긴 양 적반하장 식으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출처 – news2share


물론 이 폭동의 불을 댕긴 원인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습니다. 대선 때부터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일삼던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들은 점령군이 된 양 날뛰기 시작했죠. 대표적인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대표를 지낸 극우 컬럼니스트인 데이빗 듀크는 지난 12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기로 결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기간에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는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나는 양측 모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I think there is blame on both sides)."라며 KKK와 나치가 일으킨 폭동과 이를 막기 위해 시위에 나선 인권단체 등 선량한 사람들을 마치 똑같은 잘못을 한 것처럼 비난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과 증오는 미국의 가치가 아니라며 맞불집회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인종주의자들의 폭동이 미국과 세계에 안긴 충격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출처 – news2share


이민자를 반대하는 영국 극우정당의 전 대표조차 "21세기 미국에서 나치식 경례를 목격하다니 믿기 어렵다"며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극우파의 막가파식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FBI의 표적이었던 KKK의 부활보다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온 젊은 나치 추종자들의 폭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가 20만 명이나 죽어가며 나치로부터 지켜낸 나라입니다. 하원의원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군인은 "난 73년 전에 나치와 싸우려 입대했고 지금도 그래야만 한다면 다시 그럴 것이다"라며 "증오와 편견, 파시즘이 이 나라에 자리 잡으면 아 안 된다"며 이번 폭동에 대해 탄식했습니다.


출처 - 미주중앙일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은 확실히 전체적으로 사회가 망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국정농단에 몰두하던 박근혜를 본 이후라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역사적 퇴행에 대해 우리는 그 해결책을 알고 있으며, 실제로 이뤄냈습니다. 미국 시민들도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번 사태를 잘 봉합하길 바랍니다. 트럼프 정권이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전쟁이라도 시작하려 하기 전에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 상황으로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천재인 대지진에 도쿄전력,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실책이란 인재까지 더해져 발생한 상황이라 보는 이를 더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도움을 받기로 한 이상 모쪼록 일본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 더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빕니다.

요즘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 일본의 대재앙과 관련해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멜트다운 위험 문제 옆에는 꼭 주식시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자가 수만 명을 헤아리게 될지도 모를 '일본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 사태를 다루면서 국제적인 주식시장에 대한 기사와 국내 증시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주식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한 국가가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경제적 척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주식(증권)은 극단적인 위험으로부터 큰 이익을 취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고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유럽과 동양 사이에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의 서막인데요. 이로써 유럽 사람들은 동양의 금은보화와 진귀한 물자를 배로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가 되파는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바다'라는 대자연이었습니다. 개척 항로 무역을 통한 이익은 태풍을 비롯한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해적선의 약탈까지 염두에 둬야 했습니다.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도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성공률 때문에 사람들은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극단적 투기성 무역을 위해 주식 형태의 증서를 발행함으로써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증권의 시작이지요.

이런 동서양 해상무역이 나날이 발전하자 1602년 마침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 세계 증권시장의 역사는 이제 400년이 조금 넘는 셈이군요.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의 중심은 미국, 그중에서도 월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죠. 250여 년 전 뉴욕 월스트리트를 따라 맨해튼 쪽에 유럽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을 하역하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물품 대신 송장(invoice)을 근거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화폐가 없던 시절이라 은으로 만든 막대를 사용해 거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뉴욕 증시의 시작이라고 하는군요. 이 전통에 따라 아직도 뉴욕증시는 주가를 소수점이 아닌 1/8단위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끼리의 무역이 주식의 시초가 되었네요.

그리고 1789년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비용을 조달하고자 최초로 정부채권을 발행했고 뒤이어 은행·보험사들이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쟁이라니 주식의 역사에서 위험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은 결국 투기로 말미암은 고공비행 끝에 1929년 주가 폭락과 더불어 대공황을 유발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지만 이때부터 미국에 증권감독원이 생겨 주식시장에 증시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규정과 감독기관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취인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해방 이후 1956년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거래소를 개장했지만, 상장회사도 투자자도 여력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거래는 미미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1970년대에 들어서 투자신탁회사가 설립되어 기관투자자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업공개촉진법의 반강제적인 도입으로 1970년대 말부터 상장기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국제화 단계에서 삐끗하게 되어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죠.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코스피(KOSPI) 지수가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원인이 무엇이건, 과열 후 폭락 그리고 재조정은 주식시장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국가 간의 주식시장은 점점 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주식은 시작부터 위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일본 대지진과 주가 위기가 세계 경제와 주식 역사 속에 어떤 족적을 남기게 될까요? 부디 대재앙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간사한 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렸나




분야 : 정치, 사회                      지은이 : 스티브 와인버그 옮긴이 : 신윤주이호은

판형 : 신국판(152*225)                                                쪽수 : 464가격 : 23,000

발행일 : 20101110일                                      ISBN : 978-89-94502-02-1 (03300)


진실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아이다 M. 타벨 vs. 존 D. 록펠러"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 11. 5~1944. 1. 6)과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7. 8~1937. 5. 23)의 대결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록펠러는 독점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이끈 재계의 거물로 미국의 석유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타벨은 이런 록펠러의 음모를 파헤친 여성 저널리스트였다.
석유 개척기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한 수많은 석유 생산업자, 정유업자, 운반업자는 모두 록펠러의 희생양이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스탠더드 오일은 타 기업을 흡수·통합하고, 사세를 확장해 거대한 트러스트를 만든 재벌기업의 전형이었다.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는 뇌물 수수와 협박, 담합, 위법 행위, 폭력적 행동이 숨겨져 있었다. 그 실상을 취재해 거대 독점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린 아이다 타벨의 삶과 기자정신은 부의 파워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부패의 고리를 파헤치는 탐사보도의 역할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판치는 재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아이다 타벨과 그의 정신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다 타벨의 삶과 기자정신"


아이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저장 탱크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석유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겪었다. 타벨은 석유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영향으로 소규모 석유 생산업자들과 스탠더드 오일의 부당한 경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 주 미드빌에 있는 앨러게니 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이었다. 그 당시 여성은 대학 교육을 받는 일이 드물었으나 교육의 중요성에 일찍 눈뜬 부모의 영향으로 타벨은 폭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남북전쟁 이후 뉴욕 주 셔토쿼 호숫가 마을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교회 봉사자를 훈련하는 모임으로 시작한 교육운동은 대중의 지적 탐구심을 자극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타벨은 셔토쿼 문학과학 서클의 편집장과 잡지 셔토퀀의 편집기자로 활동하면서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타벨은 체계적인 조사 연구 기법을 배우는 한편 다양한 언론매체에 기사를 기고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매클루어 매거진의 발행인 새뮤얼 시드니 매클루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아이다 타벨을 발탁해 거대 독점재벌인 스탠더드 오일의 상거래 독점 상황을 파헤치는 탐사보도를 연재하게 한다.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1902년부터 19회에 걸쳐 록펠러와 기업의 비리를 통렬하게 파헤친 폭로기사로 말미암아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기업분할 명령을 받아 해체되기에 이른다. 1904년에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 타벨의 폭로기사는 20세기 탐사보도의 역작이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현대적 탐사보도의 선구자인 타벨의 유년시절부터 석유제왕 록펠러를 파헤치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진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지은이

스티브 와인버그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6권의 저서를 냈고 여러 언론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언론 단체인 미국 탐사기자 및 편집인협회IRE, 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 전직 대표였으며, 9년간 미국 비평가협회 이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미주리 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에서 탐사보도를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옮긴이

신윤주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호은
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학부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M. Div)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관심을 두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비즈니스 관계 심리학 : 빅 파이브가 있다.


차례

서문

1.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석유와 함께한 어린 시절

2. 존 데이비슨 록펠러
    석유산업의 잠재력을 내다본 열혈 청년

3.
남북전쟁
    성장하는 석유산업

4.
도약
    소명을 찾아서

5.
잃은 것과 얻은 것
    타협이 아닌 저항을 꿈꾸다

6.
활자의 힘
    여성 저널리스트로 향하는 길

7.
타향살이
    문화적 차이에서 깨달은 통찰

8.
매클루어 매거진
    사회 변혁의 씨앗이 되는 잡지의 탄생

9.
나폴레옹
    탐사보도로 되살아난 영웅

10.
증인, 자료, 인터뷰
      펜 끝에서 되살아나는 역사

11.
폭로적 사고방식
      탐사보도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들

12.
괴물
      드러나는 스탠더드 오일의 실체

13.
폭로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의 가치

14.
인격의 문제
      록펠러라는 사람을 향한 의구심

15.
폭로의 여파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하다

16.
그 이후 그들의 인생
      타벨, 매클루어, 록펠러가 남긴 교훈


자료의 출처
참고문헌
감사의 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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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언론인
지은이 스티브 와인버그 (생각비행,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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