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만 1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그사이에 농산물과 화훼 시장이 수조 원의 피해를 봤다느니 경제가 죽는다느니 하는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도 못 달아드렸다, 선생님께 커피 한 잔도 맘대로 사드리지 못한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애플에 한국 언론이 취재를 가지 못했다 등등 자극적인 기사도 줄을 이었죠. 그동안 얻어먹던 산업계의 콩고물이 끊기자 언론들이 앞장서서 김영란법을 훼손하려고 작심한 것이었는데요, 언론계 일부는 김영란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죠.


출처 - SBS


하지만 볼멘소리를 하는 공직자들과 언론인들의 졸렬함을 치워놓고 보면 지난 1년간 김영란법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곳은 교육현장이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초중고 학부모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95퍼센트가 김영란법에 찬성했습니다. 명확히 반대한다는 의견은 1퍼센트에 그쳐 사실상 오차 범위 내에서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촌지 등의 금품수수 관행이 사라졌다고 답한 학부모와 교직원은 85퍼센트에 육박했습니다. 하자니 부담되고 안 하자니 내 아이만 피해를 볼까 두려워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법이 하지 말라고 못 박아주자 생긴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학교는 물론 구립 체육센터들까지 나서 강사들에게 선물을 주지 말라고 공지하는 등 안내문을 낸 곳도 많았다고 합니다.


출처 - SBS


지난해 전경련 유관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낸 보도자료는 가관이었습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고급 음식업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에 8조 5000억 원의 매출이 줄어든다는 겁박 수준이었습니다. 언론과 방송은 이를 비판 없이 인용해서 베끼기 바빴고 골프장과 선물 업계까지 포함하면 김영란법으로 추정되는 손실액이 1년에 무려 11조 6000억 원이라며 공포를 조장하기 바빴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국내 모든 음식점 매출이 10퍼센트는 줄 것으로 전망했는데 한국외식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줄어든 매출은 1퍼센트대로 극히 미미했습니다. 카드사의 실적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법인카드 결제액은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2.3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일반적인 음식점의 경우 김영란법 영향을 아예 받지 않았고 접대로 필요 이상 비싼 음식점들만이 제한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음식점이 다 망하고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진다던 소리는 다 자기들이 누리던 특권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장한 과장된 공포였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드러난 셈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물론 확실히 매출이 떨어진 분야가 있긴 합니다. 사과와 배, 한우, 화훼 같은 선물용 농산물 분야가 그러합니다. 특히 관상용인 난의 경우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10퍼센트 넘게 떨어졌습니다. 설 선문 세트 판매액도 작년 대비 26퍼센트 수준으로 큰 내려갔습니다. 통계 자료는 없지만 동네 떡집들도 매출이 줄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합니다.

 

출처 - 뉴스토마토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축산 도소매, 화훼 도소매 등 소상공인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매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하면서도, 김영란법 시행 취지에 공감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소상공인의 68.5퍼센트가 '공감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를 보면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소상공인의 실질적 매출 감소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함과 아울러 김영란법 시행의 긍정적인 면을 더 확산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권익위가 경제적 효과를 종합해 올해 안에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업계도 법에 맞게 조정을 거치면 될 것입니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2016년 우리나라는 52위였습니다. 우리 바로 위는 아프리카의 르완다였고, 바로 뒤에는 아프리카의 나미비아가 있었습니다. 한편 싱가포르는 7위, 일본이 20위, 대만이 31위였습니다. 아시아 국가에서도 우리나라는 부정부패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삼성 총수까지 잡혀들어가 있는 2017년 부패지수는 더 떨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부정부패는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협하고 국가 재정을 좀먹으며 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겨우 1년 만에 김영란법 적용 액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적폐와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김영란법은 더 강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부정청탁금지법이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직접 한 말입니다.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경제가 위축될 거라는 얘기였죠. 발의 당시는 물론 작년에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부터 이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김영란법 국회 본회의 통과의 의미와 향방에 관해 다룬 생각비행의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출처 - MBN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김영란법을 힐난하고 나섰습니다. 선물 액수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조정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물론 헌법 소원을 언급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내비치기도 했죠. 한국기자협회 등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공무원과 같이 처벌하는 조항이 언론과 사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의 9월 시행 전에 심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언론이 김영란법 반대 기사를 쏟아내는 이유는 이 법이 언론인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이완구 원내 대표를 통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언론인을 제외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 틈을 보수 언론이 파고들겠다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즉각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라는 감각적인 제목의 기사로 김영란법은 한우를 비롯한 농가를 죽이는 악법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농가가 김영란법으로 무너진 사이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와 시장을 잠식할 거라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죠. 우루과이 라운드, 조류독감, 쌀 수매 등의 핵심 사안이 있을 때마다 피눈물 터지는 농촌의 어려움을 외면하던 보수 언론이 지금은 왜 이러는지 그 저의가 궁금하군요. 노골적으로 언론인만 김영란법에서 빼자는 기사까지 내면서 말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정말 언론의 강령이라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여론이 모여 통과된 김영란법에서 자기들만 빠져나가려는 행태는 자가당착의 결과입니다. 김영란법, 즉 부정부패방지법으로 발목 잡힐 언론의 자유라면 그게 진정한 언론의 자유일까요?


출처 - JTBC


JTBC는 김영란법이 국민 경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즉 박근혜 정부가 직접 발주한 용역 보고서의 내용이었죠. 이 보고서는 김영란법 시행령의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죠. 용역 보고서는 대통령이나 언론인 등 반대하는 부류의 불만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알려진 화훼산업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선물 수요도 줄지 않을 거로 나타났죠.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즉 김영란법에 걸릴 만한 행위를 했던 공무원 수 등을 대입해 시장 수요를 조사해봤더니 많아야 0.86퍼센트 정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예측조차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오히려 김영란법 시행의 긍정적 효과로 기업 접대비가 감소하여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면 진정한 의미의 경제 활성화가 일어날 수 있고 부패 척결을 통한 지하 경제 양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건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내용이 아니었던가요?


결국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한들 국민 경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불안한 이들은 걸릴 구석이 많은 높으신 분들과 그 주변에서 꿀을 빨던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크니 사회가 시끄러울 뿐입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적한 내용처럼 뇌물 아니고는 국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없다고 전 세계에 고백하는 창피한 이야기를 대통령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지나친 고액 선물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 경제가 위축된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뇌물 공화국에 다름없으니, 김영란법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될 뿐입니다.

출처 - 뉴시스

 

국제투명성기구(TI)가 175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아시아 1위 청렴 국가는 싱가포르였습니다. 1960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퇴출당하며 국가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 싱가포르에는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렸죠. 망해가는 싱가포르를 살리기 위해 리콴유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해외 투자 유치에 앞장섰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리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정치인으로서 눈을 뜹니다. 종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인민행동당을 창당하고 1959년 자치의회 의석 43석 중 41석을 석권하며 싱가포르 자치정부를 이끌었죠. 이후 1991년까지 3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했고 2011년까지 다른 직책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싱가포르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의 역사를 쓰고 통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한 리콴유가 앞장선 결과 부패방지법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부패행위조사국이 설립되었죠. 1963년에는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의도가 있었거나 이에 따르는 처신을 했다 해도 범죄가 성립되도록 법을 강화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해외에서 뇌물을 받거나 비슷한 부정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에는 법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뇌물 수수자에 대해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도록 한 것이죠. 반환할 능력이 없을 때는 액수에 따라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출처 - KBS 명견만리

 

이러한 싱가포르 정부의 반부패 노력에 의해 시민의식이 차츰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가벼운 경범죄에 대해서조차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금연 장소에서 흡연할 경우 1000싱가포르달러(한화 약 80만 원)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근간으로 하는 법 때문에 시민들은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리콴유의 한결같은 의지와 실행력이 오늘날 부강한 싱가포르의 초석이 된 측면도 있으나 정치·사회적으로 남긴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예전에 쓴 기사(리콴유 서거, 싱가포르의 정치적 향방)를 참고해주세요.

 

현재 한국은 OECD 34개국 중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가 27위로 최하위권에 해당합니다. 김영란법을 재논의한다면 이 법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할 겁니다. 전관예우 관행으로 일파만파 퍼지는 법조계 게이트, 돈 좀 있다는 사람 중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역외 탈세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부정부패청탁금지법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김영란법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행되기도 전에 비난과 법 개정에 관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마저 제기합니다. 그런데 반부패 개혁을 추진 중인 중국 시진핑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상하이 인민검찰원장과 이야기하는 중 한국의 김영란법을 호평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작 이 법안을 제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번에 통과된 법이 반쪽짜리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현재 정치, 언론, 기업 등 전방위에 걸쳐 혼란의 중심에 있는 김영란법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비슷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 법안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부정 및 청탁 금지의 토대가 되는 김영란법


이 법안은 2012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던 김영란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하지만 3년여의 세월을 거치는 사이 국회에서 여야 간 신경전과 각계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려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의 취지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이 정도 법안이나마 통과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평하는 측도 있습니다.


 

출처 - JTBC


통과된 법안대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분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부정부패 방지에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파급력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유예 기간을 1년 6개월로 넉넉하게 두어 2016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김영란법에 통과에 따른 각계각층의 반발


 그렇지만 이번 법안 통과와 관련하여 각계각층의 입장에 따라 반발, 비판, 아쉬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법을 제안하고 이름을 내건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최초 발의했던 법안에서 핵심 사항이 여럿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전관예우 등 공직자의 사익 추구 행위를 금지하는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빠졌다며 "반부패 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아쉽다"고 밝혔습니다. 이해충돌 방지 규정은 국회에서 여야가 끝까지 충돌했던 요소 중 하나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해 입법예고안에는 있었으나 최종 법안에서는 빠져버린 조항입니다.


출처 - YTN


이 조항은 공직자의 공적 수행이 사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장관이 본인의 자녀를 특채 고용하는 등 공직자로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반부패 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와 더불어 부정청탁의 개념이 포괄적인 개념에서 15가지의 구체적 유형으로 축소된 점, 부정청탁 대상이 공직자 등의 가족에서 배우자로 축소 된 점 등도 원안과 달리 김영란법이 반쪽짜리 법안으로 의미가 퇴색했다고 보는 근거가 됩니다.

 

출처 - 세계일보


김영란법이 건전한 정책 제안이나 친교 유지마저 저해한다는 기업의 주장은 구태의연함으로 치부해도 무방하겠지만, 현재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언론인과 사립 학교 임직원처럼 민간인이 포함되는 부분은 사실 미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후보자였을 당시 유출된 녹취록 파문 당시 기자들을 압박하는 방편으로 김영란법 통과가 사용되었듯이, 자칫 이 법을 이용한 정부의 언론 통제 및 민간기업 통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부분이 김영란법이 통과되자마자 대한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위헌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데요, 실제로 법안의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원안의 공직자 외에 사립 학교 교원이나 언론인 등 적용 대상이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확대된 면이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끊고 공직과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이 정도의 극약 처방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공감대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김영란법에 대해 국민의 69.8퍼센트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조사 결과가 그 방증입니다.

출처 - MBN


이완구 녹취록 파문 당시 현장에 참석한 기자가 기사화하고자 했어도 각 언론사의 데스크에 막혀 결국 다른 방송사에서 기사가 나온 현실을 현실을 생각하면 위헌 논란을 떠나 언론이 이런 상황을 자초한 면이 큽니다. 철마다 드러나는 사학 재단의 비리를 생각하면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그리고 김영란법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 등으로 법 개정부터 위헌 심판까지 각계각층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외국의 부패방지법들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훨씬 더 엄격합니다. 다만 범위는 공직자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 KBS


로비가 합법화되어 있긴 하지만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입법한 미국은 고의성 있는 뇌물과 없는 금품수수를 구분하여 뇌물의 경우 징역 15년, 벌금으로 뇌물 수수액의 3배를 물리는 식으로 엄격히 처벌합니다. 로비가 합법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만날 때는 일시와 사유를 기록해 이를 공중에 공개해야 합니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도 정부 이외의 다른 곳으로부터 보수나 기부금을 받으면 최고 5년의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합니다.

 


출처 - KBS


독일은 형법으로 공무원 뇌물 수수 범죄의 정도와 준 쪽과 받은 쪽 등에 따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부당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는다면 이 사실을 소속 기관장에게 즉시 신고해야 하며 기관장은 이를 일반에 공개해야 합니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금품수수행위는 강력히 처벌하고 있죠.

 

이 때문에 2008년 주 총리 시절 주택 구입을 위해 친구에게 6억 원을 빌렸던 볼프 전 독일 연방대통령은 2년 뒤에 이 돈을 갚았지만 특혜 의혹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습니다. 201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는 선물로 받은 260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외국에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청렴성을 공직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영란법, 접대와 부정을 근절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


공직자와 관계하는 일뿐 아니라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도 기름칠을 좀 해야 일이 잘 돌아간다는 말이 통용되는 우리 사회입니다. 말은 사회를 반영합니다. 돈이든 향응이든 갑에게 접대 행위를 하지 않으면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의 접대 및 로비 문화 근절을 입법 목표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의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민간이라도 김영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지 않았을까요?


출처 - KBS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김영란법 국회 통과에 대한 소감으로 반쪽짜리라 아쉽지만 우선은 이 상태로라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상의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김영란법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오래된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고 근본적인 부패 문화를 바꾸는 데 역점을 뒀기 때문이겠죠. 일단 제대로 시행해서 부패 문화를 강도 높게 바꾸면서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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