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BS 창사 30주년 특집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열풍과 조작이라는 돈의 광풍에 관해 조명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부동산, 로또, 주식, 가상화폐 등등 일확천금의 성공신화를 쫓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죠.


출처 - SBS


2020년 현재의 키워드는 "영끌"입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의 줄임말로 월급부터 대출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부동산, 혹은 주식에 쏟아부어 대박을 노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경기 불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2030 젊은 세대를 주식 대박의 환상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는 데이터로 증명됩니다. 올해 새로 개설된 주식계좌 420만 개 중 20대의 비율이 27%, 30대의 비율이 30%로, 합하면 57%에 달합니다. 이 중 30대는 13조 원의 신용 대출을 일으켰고 평균 1600만 원 상당의 주식을 251번 사고팔았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투자인지 투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출처 - 중앙일보


20대의 대출도 1년 만에 47%가 늘었습니다. 2018년 20대의 대출 증가율인 7.4%에 비해 여섯 배나 넘게 치솟은 겁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20대의 마이너스 대출 잔액이 2조 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입니다. 저축은행 마이너스 통장이 집중적으로 늘었는데요, 그 이유는 신용등급이 낮아도 손쉽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저축은행 총 마이너스 통장 대출 잔액은 지난해보다 16.5%나 감소했는데도 20대에서만 유독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 시사저널


20대 마이너스 상품 대출의 신규 취급액도 늘고 있어 올해 3조 원을 넘길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 규모도 20대에서 지난해와 비교해 162.5%나 늘었습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액수는 아직 낮지만 증가율은 압도적입니다. 문제는 20대의 상환 능력입니다. 사회 초년생이거나 알바 수입이 전부인 20대의 평균 소득으로 이런 대출을 지탱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금리 높은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잘못 굴리다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험도 큽니다. 이미 신용회복위원회에 20대의 채무조정 신청도 30.8% 증가했다고 하죠.


출처 - MBC

 

지난 9월 8일 방송된 MBC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그램에 주식투자를 하면서 전교 1등을 한다는 학생이 소개됐습니다. 청심국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학년 박민영 학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주식을 받았고 남은 용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박민영 학생이 보유한 주식은 37만 원에서 시작해 약 53만 원까지 올라 투자 수익률을 따지면 44.30%라고 합니다. 방송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라 소개했는지 모르겠으나 최근 2030뿐 아니라 고등학생이 주식계좌를 터서 온종일 단타 매매에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학생은 등록금과 생활비마저 주식계좌에 쏟아붓고, 결혼 예정인 예비부부는 신혼 자금을 모두 BTS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상장 주식에 투자했다가 반 토막이 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죠.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일어나고 있는 투자 광풍을 2030의 일확천금을 노린 도박이라고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데 기업들의 채용은 줄어들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기만 합니다. 직장이 있든 없든 어차피 저축으로는 집 한 칸도 못 산다는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거라면 최후의 수단으로 빚을 내서 운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 작용한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갈수록 심화하는 자산 격차와 공고해지는 사회적 불평등이 이런 투자 광풍을 불렀고 탈출구 없는 2030 젊은이들의 일부가 거기에 편승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2030의 영끌로 남몰래 웃고 있는 무리도 있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어 주식을 사고팔게 해주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 그룹들입니다. 코로나19로 모든 산업이 주춤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이자 이익과 주식거래 수수료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넘치는 사회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요? 자산이 없어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청년들의 불안감을 해결하는 정책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슬로바키아 정권을 무너뜨린 마피아 살인사건이 있습니다. 슬로바키아 언론사 악투알리티에서 일하던 잔 쿠치악이란 젊은 기자는 당시 자신의 조국 슬로바키아 정부를 송두리째 무너지게 할 수 있는 특종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취재 때문에 자신과 동갑인 27세의 약혼녀의 목숨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쿠치악과 약혼녀 마르티나는 자신들이 살던 슬로바키아의 수도 근교의 마을인 벨카 마카에서 총을 맞은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출처 - BBC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쿠치악은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과 슬로바키아 정부 간의 유착 관계를 취재 중이었습니다. 남부 이탈리아부터 자금 세탁이 이뤄진 영국 런던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진 취재였으며 마피아, 청부살인자, 정치인, 전문직으로 이루어진 '돈 세탁가'들이 다수 연루돼 있었습니다. 마피아의 손길이 전 세계에 뻗쳐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였죠.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슬로바키아 여론은 두 사람의 죽음에 즉각 반응했습니다. 분노한 수많은 국민이 대규모 거리 집회에 나섰고, 그 결과 지난 3월 1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해오던 로베르토 피코 총리의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안 뻗친 곳이 없는 마피아의 무서움을 송두리째 뒤엎는 민중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죠.


출처 – SBS


여태까지 우리는 마피아와 연루된 살인사건이나 정치인과 끈이 닿아 있는 사건은 이탈리아 같은 유럽에서나 발생하는 일로 생각해왔습니다. 동양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일본의 야쿠자 정도를 떠올릴 뿐이었죠. 그 때문에 지난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한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년 전 파타야 살인사건으로부터 파생된 문제 하나를 파헤쳐보니 성남시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온 국제마피아라는 조직폭력배들이 있었고 이들을 경찰, 검찰 등 성남시 공권력이 암암리에 비호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정점에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와 현 성남시장인 은수미 의원이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3년 동안 수배 중이던 조직폭력배가 수배 중에 경찰서에 놀러 다닐 정도였다는 주장과 성남시 출신 전·현직 경찰들이 이 폭력조직이 양성화해 운영하던 기업으로부터 유령이라 불리면서 회사에 이름만 걸어놓고 검은돈을 받아갔다는 내용이 폭로됐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을 잡아야 할 경찰들이 그들의 돈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기업의 정체가 더 충격적입니다. 연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던 이 회사는 대륙의 실수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샤오미의 한국 총판인 코마트레이드였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많이 쓰시는 분들 중에 샤오미 보조 배터리 하나 정도 안 가지고 계신 분은 없을 겁니다. 그 돈이 다 성남시 조직폭력배들에게 흘러들어가 성남시 공권력에 기름칠을 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이 기업은 성남시 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되어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성남시에서 3년 이상 사업한 실적이 필요한데 당시 이 기업은 창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죠. 성남시청과 뭔가 커넥션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의심이 드는 정황입니다.


출처 - SBS


이재명 전 시장과 은수미 현 시장은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당시 이 기업이 장려상을 수상한 성남시의 채점 자료 등에 대한 공개를 거절했습니다. 은수미 시장은 왜 이재명 시장 시절 성남시의 과거 자료를 공개하길 거부했을까요? 은수미 시장 역시 과거 성남시 국제마피아에게 차와 기사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련 자료 비공개 방침은 더더욱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출처 – SBS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은수미 성남시장보다 한 술 더 뜹니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피디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이 점만 본다면 반론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는 담당 PD에게 "우리 PD님에게 미안한데 원래 제가 그런 건 안 하는 사람이지만 '위쪽'에 전화를 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실제로 박정훈 SBS 사장, 남상문 시사교양본부장, 김기슭 CP 등에게 전화를 돌렸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인 김상중 씨 쪽에도 전화를 하려 했다고 하죠. 뭔가 억울한 감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기도지사라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로 언론사 사장부터 실무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전화를 돌리고 이를 실무담당자에게 발언하는 행위는 대단히 저열한 방식의 압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중파에 압력을 행사하던 이들을 우리는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수두룩하게 보아왔죠. 그런데 촛불 혁명의 수혜를 본 사람으로 자처하는 이재명 도지사 자신이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저지르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입니다.


출처 – KBS 유튜브


지사직 사퇴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가 1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지난 25일 자신의 조폭연루설을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측에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1일 보도된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의 내용을 언급한 뒤, "시청자들로서는 이러한 악의적인 편집으로 인하여 이재명 지사가 중대한 범행을 일삼는 폭력조직을 도와왔던 것으로 오인할 소지마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김남준 경기도 언론비서관을 통해 '음해성 조폭몰이의 허구성을 밝혀주십시오, 검찰 수사를 정식으로 요구합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하며 정면돌파를 시사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막말부터 여배우 스캔들에 이어 이젠 조폭연루설까지 터져 나오니 반박만으로는 더 이상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출처 - KBS

 

한편 바른미래당은 조폭 연루설이 제기된 이재명 경기지사를 허위사실공표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추가 고발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장영하 전 진상조사위원장과 하태경 의원, 경기지사 후보를 지낸 김영환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은수미 성남시장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요청서를 제출했다"고 전하면서 "정치인과 조폭 연루 의혹은 무고한 한 젊은이가 희생된 살인사건까지 연결돼 있다"며 "국회가 국정조사에 나서거나 필요하면 특검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과거 변론을 맡았던 조직폭력배는 성남국제pj파 조직원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SBS 방송에서 다룬 바 있는 태국 파타야 살인사건의 김형진이 속해 있는 조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조직폭력배 연루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이들 조직원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고, 이재명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 참여한 정황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관련 수사가 진척된 게 없어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든 은수미 성남시장이든 혹여 문제가 될 일을 한 적이 있다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 앞에 진실을 고하기 바랍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도 해외 원정 도박 적발과 이화여대 입시 부정이라는 작은 사건에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자신의 과거를 자책하며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합니다. 국민 앞에서 떳떳하다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은 관련 의혹에 대해 확실하게 대응하길 바랍니다.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 미국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에 있는 제1침례교회에서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중 방탄조끼를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나 AR-15 소총을 난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26명의 신자가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언론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지였던 교회가 주민 360여 명 가운데 7퍼센트가 숨지는 텍사스주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현장으로 변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0월 초 추석 연휴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테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19년 전에 일어난 총기 관련 의문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인 군에도 변화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죠.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군 의문사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국정과제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장병들의 인권보호를 강화해나가기로 함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하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는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5월 26일 군 의문사 장병들 어머니들의 사연을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관람했습니다. 역대 영부인과는 다는 행보를 보인 것이죠. 김정숙 여사가 관람한 연극은 선임병의 상습 구타와 가혹 행위로 사망한 한 병사의 죽음을 군이 자살로 은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

 

출처 - SBS

 

19년 전 김훈 중위의 의문사를 규명하라며 어머니는 절규했습니다. 그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군은 김훈 중위의 죽음을 계속 자살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후보자 신분이던 6월 26일 군 의문사 유가족과 면담한 이후 7월 20일 국방컨벤션에서 '군 의문사 관련 유가족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군 의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한편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과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김훈 중위 유족은 7월 25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김훈 중위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냈습니다. 김훈 중위 어머니의 절규가 울려 퍼진 지 19년 만인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의문사 중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김훈 중위의 순직이 인정됨에 따라 다른 군 의문사 문제에도 서광이 비칠까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경비중대 소대장이었던 고 김훈 중위가 GP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서둘러 덮으려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죠. 자살할 동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사건 현장에 남은 정황 증거들이 자살이라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것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자살이나 사고가 아닌 군 의문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건 현장에는 김훈 중위의 손목시계와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훈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또한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다시 검증에 나섰는데, 김훈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해본 결과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죠. 일각에서는 김훈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불법적인 교류행위를 저질러 이를 뿌리 뽑으려다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박찬욱의 출세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프가 된 의혹이기에 그렇습니다. 2004년에는 김희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으로 또다시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훈 중위의 죽음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자살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 권력의 인권유린과 이에 동조하는 비양심적 지식인, 언론, 사법부를 고발함과 아울러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끝까지 침묵한 주한 미군의 존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고 했던가요. 숨진 김훈 중위의 아버지는 예비역 중장이었습니다. 평생을 군에 몸 바쳐 복무하고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자랑스러운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도 없고 초동수사는 엉망진창이며 그저 사건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군을 보며 아버지인 김척 씨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군을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훈 중위와 같은 육사 출신 동기들의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김훈 중위의 의문사가 국방부에 의해 자살로 결정지어지자 육사52기 장교 33명이 5년 차 전역을 선택하고 군을 나와버렸습니다. 육사 출신 장교 중 5년 차 전역을 택하는 사람은 평균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하는데, 동기의 죽음에 대한 군의 처사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으면 집단 전역을 택했나 싶습니다. 군의 엉터리 수사로 생겨난 의문사는 한 가족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앞날이 창창한 33명의 장료가 집단 전역하는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스스로의 전력까지 낮추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2006년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군 당국이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하면서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 판결을 한 주심 재판관이 바로 김영란법의 김영란 전 대법관이기도 합니다. 이 판결을 토대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와 위의 권총 실험을 하고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계속 시간을 끌다가 5년이 지난 2017년 8월에 이르러서야 순직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여 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아들의 명예회복에 매달린 김척 씨는 이 결정을 듣고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면서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군 사건 수사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여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예비역 장성의 아들에 대한 처우가 이럴진대 장삼이사의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은 오죽했겠나 싶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갈 곳을 잃고 경기도 벽제의 육군 부대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있던 김훈 중위의 유골함은 20여 년 만에 제자리인 국립묘지로 돌아갔습니다. 고(故) 김훈 중위 안장식이 지난 10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안장식에서 어머니 신선범 여사는 고 김훈 중위를 떠나보내며 영정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수많은 군 의문사를 생각하면 이제 겨우 하나의 사례가 풀렸을 뿐입니다. 군 의문사는 군 자체의 개혁이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국민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뒤늦게 생각비행이 김훈 중위 순직 인정 소식을 다시 공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지난 글 : 한국의 탐사보도 -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불만제로>)
             한국의 탐사보도 - K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추적 60분>)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을 출간한 뒤로 한국의 공중파 방송-KBS,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공중파 방송인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소개할 차례가 되었네요. SBS는 앞서 소개한 2개 공중파 방송보다 개국이 늦었기에 탐사보도 프로그램 또한 그 시작이 늦었습니다만, 타 방송에 못지않은 훌륭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알고싶다> 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1992년 3월 31일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다룬 <살해범의 목소리>로 처음 전파를 탔는데요, 시사 프로그램으로는 방영되자마자 25%라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과는 다른 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탐정의 사무실을 연상하게 하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소품들을 배치했으며,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달리 PD나 기자가 아닌 연기자를 진행자로 영입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시간이 지나면서 박원홍 씨 같은 언론인 출신이나 오세훈 씨 같은 당시 인기 변호사를 영입하기도 했지만, 이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연기자거나 연기자 출신의 진행자였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역대 진행자들. (문성근, 박원홍, 오세훈, 정진영, 박상원, 김상중)


<그것이 알고싶다>는 시청자와 소통하기 위해 '추리'라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사건을 소재로 잡고 그 전모를 추리해나가는 방식을 적절히 사용했는데요, 거기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추리를 위해 심층적인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각 계통의 최고의 전문가를 섭외하여 철저한 실험을 진행한 다음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추리하여 시청자와 소통했습니다. 실험하는 전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선보이기도 했죠.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영화화 되거나 도움을 준 작품들


이렇게 추리를 바탕으로 하여 나온 내용들은 영화로 제작되거나 몇몇 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연출진이었던 박진표 감독은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연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도 <그것이 알고싶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위해 제작하고 실험한 세트가 영화 세트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도 <그것이 알고싶다>의 화성연쇄살인사건 편을 보고 시나리오를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SBS는 창사 20주년을 맞아 많은 특집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이때 <그것이 알고싶다> 또한 <창사 20주년 특집 그것이 알고싶다 - 한국사회 미스터리를 파헤치다>라는 이름으로 특집방송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진행을 맡았던 배우 문성근, 정진영, 그리고 현재 진행을 맡은 김상중 씨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PD를 맡았던 분들과 가수 김장훈 씨도 함께 자리하여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1995년 9월부터 1996년 10월까지 약 1년의 공백기를 제외하고 <그것이 알고싶다>는 SBS 개국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


이렇듯 의미 있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지만 인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작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지난번 KBS <추적 60분>을 소개해드렸을 때의 기분과 비슷합니다. SBS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아도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제작진과 진행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있지만 정작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특집방송이 없었다면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정보를 더더욱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MBC를 제외하곤 KBS, 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왠지 찬밥신세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습니다.



중간에 사라져버린 약 200회분의 분량. 어떻게 된 것일까?



더욱이 다시보기를 살펴보면 477회 이후 약 200회분의 방송이 업로드 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일부 회차가 사회적 이슈와 피해자 인권 문제 때문에 다시보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써놓긴 했습니다만, 200회분의 분량이 싹둑 잘려나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제작진의 해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란 제목으로 공중파 3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여성 저널리스트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을 통해 탐사보도의 시작을 알게 되었다면, 세 번에 걸친 포스팅은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뿌린 씨앗이 한국에서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탐사보도와 관련된 좋은 정보를 앞으로도 계속 공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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