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에 이어 국기문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 사회 이슈에 신경 좀 끄고 살겠구나 하는 분이 많이 계셨을 텐테요, 적폐 세력의 발악이 참으로 끈질깁니다. 이번에는 특히 군이 나서서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뒷통수를 친 셈이라 국기문란이란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실장인 김관진과 국방부가 짜고 사드 도입 대수와 배치 현황을 대놓고 속였기 때문이지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 낮까지 국방부는 사드 추가 반입이 없다고 국정기획위에 공식적으로 보고했으나 그날 밤 10시 사드 발사대를 몰래 이동시키다 언론에 틀켜 26일 새벽 사드 2기 알박기에 들어갔죠. 박근혜 탄핵으로 궐위 상태이던 때여서 국방부의 단독 행동이 지나치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YTN이 사드 4기가 벌써 들어와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국방부는 아니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인수위가 없었다고는 하나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은 그 직책에도 불구하고 5월 14일 북한 미사일 발사 상황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표를 던졌고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는 국정운영과 관계된 자료를 넘겨주기는커녕 모든 자료를 파쇄하고 튀어버린 상황이었죠.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존재이자 대한민국 군의 최고 통수권자입니다. 당연히 전 정권에서 문제가 된 북핵과 사드 관련 보고를 빠짐없이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의 외교안보팀은 김관진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핵과 사드에 대한 현안 보고나 관련 자료를 넘겨받지 못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김관진의 후임으로 임명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1일 임명되었으나 김관진 실장은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드도 2기밖에 없다고 보고서에 적습니다. 4일 후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국방부도 사드를 2기 들여왔다고 거짓 보고를 합니다. 4기가 들어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정일 뿐이며 YTN의 보도가 있었지만 공식 확인된 바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모든 것이 그랬듯 아니라고 하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적이었습니다. 

 

성주에 알박기한 사드 발사대 2기도 절차상의 문제로 철수가 공론화되는 마당에 국방부는 비밀리에 4기의 발사대를 이미 국내에 추가 반입한 상태였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는 게 매우 충격적입니다. 사드는 국방부에서 북한에 대항하는 무기로 도입한 까닭에 초미의 관심사였고, 동북아 질서와 경제적으로는 사드 보복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제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무기의 존재를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에게 전화로 직접 확인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는 건 정말 황당한 상황이 아닙니까? 시쳇말로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말이죠.


출처 - 연합뉴스


우선 국방부가 발사대 4기를 반입하고서 보고하지 않은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공식 업무보고 문서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국방부의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관련 보고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드 정도 되는 무기의 존재를 회의에서 공식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국방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의로 보고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던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이 모의하지 않았다면 가능할 리 없는 일이죠.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드 보고 누락은 시민 사회의 논리까지 갈 것도 없이 그동안 누누이 군이 강조했던 자체 논리로 봐도 큰 문제입니다. 국방부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상관에 대한 항명이자 명령불복종 아닙니까? 더구나 전황을 좌우할 무기를 대통령 모르게 반입했다는 건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 초유의 일이죠. 군과 극우 세력이 늘 강조하는 말버릇처럼 우리나라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식으로라면 국방부를 해체할 만한 일대 사건 아니겠습니까?


출처 – 민중의 소리


이런 국방부와 군피아의 행태에 분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국기문란 사태로 인식하고 발사대 4기 반입 경위와 누가 반입을 결정했는지 정부 보고를 누락한 경위 등을 진상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국방부의 고의 누락으로 드러날 경우 군 내부의 적폐 인력 청산과 함께 국방개혁에 탄력이 붙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배치 업무를 진두지휘한 김관진부터 그의 지시를 신속히 이행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 국방부 국방정책실, 대미 관련 부서 등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국방부 장관이 임명된 후 곧 단행될 대장급 인사 등 군 수뇌부 인사 구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핵폭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참여정부 때 '국방개혁 2020'에 저항했던 육군 중심의 문화가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는 국방부에 전방위 수술이 불가피해졌음을 국방부 스스로 드러낸 꼴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독재자의 딸이 바로 전임 대통령인 시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군의 월권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국민의 절반 정도가 군에 복무해야 하는 징병제 국가이기 때문에 군의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염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숙청했듯 문민 통제가 살아 있음을 이 기회에 추상같이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군의 올바른 명령 체계를 확립하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요.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듯, 이번 국방부의 국기문란이 엄정한 군 개혁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점점 고조되는 우리나라 총선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각 당 대선 주자들의 행보가 바쁘죠. 그런데 최근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부패가 적발되어 화제입니다. 미국 해군 고위 장교들이 한 회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편의를 봐줬다가 들통난 겁니다. 미 검찰에 의하면 오랜 기간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고 하는군요. 부패 혐의로 체포된 해군 대령 대니얼 듀섹은 한 회사의 청탁을 받고 군함들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여러 항구로 보내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박한 군함들은 연료와 음식 등을 청탁한 회사에서 시가보다 비싸게 사들였습니다. 이렇게 회사에 벌어다 준 부정 이익이 348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1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출처 - SBS


여기서 잠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점에서 좀 의아한 생각이 드실 법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절대적인 군사력 1위 국가이지요. 2~10위 국가의 국방 예산과 군사력을 다 합해도 미국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오는데요. 이런 미국 해군의 역사상 최대의 부패 사건으로 꼽히는 이번 사건의 부정 이익이 '고작' 410억 원밖에 안 됩니다.


군사력이나 예산 규모로 미국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 방산비리 규모에 비해 미국의 방산비리 규모는 새 발의 피밖에 안 됩니다. 육군이나 공군을 빼고도 우리나라 해군이 단독으로 저지른 비리 중에 통영함 납품 비리가 669억, 고속함 호위함 사업 비리가 805억으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이라고 하는 비리 사건의 2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심지어 잠수함 인수평가 관련 비리는 1475억,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는 무려 5890억에 이릅니다. 반농담으로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부패 사건의 무려 14배나 되는 액수의 방산 비리가 터져도 그저 몇 명 구속되면 유야무야 넘어가고 맙니다. 방산비리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 규모는 트랜스포머를 만드는 우주방위군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이뿐 아니라 국군 병사 전원이 1인용 침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10년간 6조 8000억 원의 혈세를 투입한 병영생활관 현대화 사업이 미궁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2012년에 사업이 완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육군에서는 아직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대에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2조 6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비리의 무려 50배에 달하는 돈이 문자 그대로 '증발'한 겁니다.

 

이 돈은 우리나라 국방 연구개발 전체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만약 국방부가 요구한 추가 지원까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병사 침대 바꾸기 사업에만 약 10조 원을 쓰는 셈이 됩니다. 이는 미국 니미츠급 항공모함을 두 대나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 돈이 그냥 사라졌다고 합니다. 정부 조달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예산 책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10조 원이면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1인용 고급 침대를 2500만 개 살 수 있는 돈이라고 지적했죠. 그런데도 국방부는 20만 장병에게 지급할 침대조차 못 샀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방산비리를 뿌리 뽑겠다던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부터 국방부가 사실상 전작권 환수 준비를 중단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죠. 자주국방의 의지조차 없는 정권이 어떻게 국방 기술을 국산화하고,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참고: 〈박근혜 정부 방산비리 척결, 말뿐인 추악함〉)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최대 규모의 수사팀을 만들어 조사를 벌인다 한들 기대하는 이가 별로 없었고, 결과적으로도 바뀐 게 거의 없었죠. 

출처 - 팩트TV


〈진짜 사나이〉나 〈태양의 후예〉 같은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군대의 모습과 달리 대한민국군의 현실은 이와 같습니다. 뿌리 깊은 방산, 군납 비리가 군대라는 시스템을 매개로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며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 아셔야 합니다. 이재명 성남시장 말마따나 우리나라는 정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둑놈들이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지난 3월 28일 해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14개월 지연됐다며 5개 단체 120여 명을 대상으로 구상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에게서 34억 원을 뜯어내겠다는 속셈입니다. 가장 힘 있는 조직인 군이 가장 힘없는 강정주민들을 경제적으로도 짓밟고 마을을 깨뜨리겠다는 겁니다.

출처 - 프레시안


애초에 해군기지 공사는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공사가 중지되었죠. 해군기지 공사에 대한 중지 명령은 강정마을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제주도가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해군은 제주도에는 아무 소리도 못 하면서 만만한 주민들을 상대로 겁박하고 주머니를 털려 합니다. 제주도는 해군기지 공사 도중 무려 아홉 차례나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공사 중단을 위한 청문회까지 열기도 했죠. 이는 해군기지 공사와 맞물린 불법과 편법, 탈법 때문이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는 이를 선명히 드러내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해군은 지난해 강정마을 내 군 관사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용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 비용 8970만 원마저 강정마을회에 청구했고, 반대운동 과정에서 700명에 달하는 마을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부과한 벌금이 3억 7000여만 원에 이릅니다. 수천억, 수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갉아먹은 도둑놈들이 그 세금을 낸 가장 힘없는 국민한테서 34억 원을 더 뜯어내겠다고 하는 사태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출처 – 제주의 소리


정의당은 해군이 강정주민들을 대상으로 34억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해군 방산비리 책임을 물어 2000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김종대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해군참모총장 출신 3명이 줄줄이 뇌물과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있을 정도로 군이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며, 국가안보에 끼친 손실과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해군이 강정마을에 구상권을 청구한 것과 똑같은 법적 논리로 해군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남에게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군은 애초에 구상권을 운운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생각비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2011년부터 수차례 강정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께 해군기지 반대를 호소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해군기지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난 건 아닙니다. 해군에 의한 마을 파괴 행위는 지금도 진행 중인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디 강정마을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선거철만 되면 안보를 부르짖으나 속으로는 혈세를 빼돌리기에 바쁜 무리가 국민의 대표로 당선되지 않도록 이번 4.13 총선에서 여러분의 권리를 현명하게 행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비리 사건 규모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여러분의 돈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누군가의 배를 불리게 될 테니까요. 시간이 되신다면 〈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3]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 기사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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