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TV조선 등 뉴스에서 폭로되는 최순실 게이트가 점입가경입니다. 새누리당이 나서서 특검을 수용함에 따라 12번째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줄도 모르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의 의혹을 잠재우고 정치인들의 이목을 끌 블랙홀로 '개헌 카드'를 들이민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만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사실상 묻혀버렸지만, 이 역시 '박적박', 즉 박근혜의 적은 박근혜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무당 놀음에 놀아난 것으로 밝혀진 헬조선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6개월 만에 경제가 살아났다고 확신했나 봅니다.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6개월 전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던 걸까요? 

출처 – 시사오늘


애초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다급히 들이밀었기 때문에 국민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박근혜는 '최순실 방패용 개헌'으로 헌법을 능멸하려고 한다"며 돌직구를 날렸죠.

출처 - 페이스북


아버지인 박정희는 유신헌법으로 헌법을 압살했다면 박근혜는 최순실 방패용 개헌으로 헌법을 능멸하고 있으니 권력에 취한 가문의 몰락을 볼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는 불발로 끝나겠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지난 25일 "개헌 논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야와 행정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긴급 제안"한 바 있고, 김종인·손학규 등 제3지대에서 정계개편을 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죠. 개헌은 줄곧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하려는 이도 많은 편이라 결국 개헌 논의가 재점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토대입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헌법이 바뀌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기초가 되는 헌법만 해도 9차 개헌된 헌법이니까요. 아래 표를 보시면 어떤 때, 어떻게 개헌을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he300


1948년 제헌절에 제정된 제헌 헌법은 대통령제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소급입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3년밖에 안 됐기에 친일파를 처단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헌법이 그 시점에 그냥 선포되면 친일파를 처벌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제헌 헌법 부칙에 광복절 이전의 악질적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했습니다. 이에 의한 것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였죠.


안타깝게도 1차 개헌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의 연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피난 간 부산 국회의사당에서 군인과 경찰에 포위된 채로 이뤄졌죠. 개헌 과정 자체가 위헌이었습니다. 2차 개헌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으로 4.19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죠.


3차 개헌은 4.19 혁명의 결과로 헌정사상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개헌이었습니다. 의원내각제로 전환되었고,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 유보조항이 삭제되는 등 국민 기본권이 강화되었죠. 헌법재판소와 지방자치제 등 오늘날과 같은 정치의 토대가 3차 개헌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출처 - 중도일보


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독재자 치하에서 이뤄진 5차~8차 개헌은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었습니다. 5차 개헌으로 헌법재판소가 폐지되었고,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며 5.16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들이밀어 헌법을 더럽혔죠.

 

6차 개헌은 박정희의 3선을 위한 방책이었고, 7차 개헌이 그 유명한 유신헌법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죠. 8차 개헌은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에 의해 이뤄졌는데요, 유신 독재 때와 비교한다면 국민 기본권이 약간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대통령 간선제였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었죠.


출처 - 프레시안


그러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9차 개헌이 이뤄집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헌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했으며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사라졌습니다. 또한 국회의 국정감사권과 헌법재판소가 부활했으며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습니다. 국민 기본권도 폭넓게 보장되었죠.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명약관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정권의 치부를 가리고 안위에 집착한 개헌은 언제나 헌법을 망가뜨리고 국민의 권익을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힘을 결집해 개헌을 이뤄냈을 때 헌법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민주공화국에 걸맞은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금 정치권이 들먹이는 10차 개헌은 이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하물며 무당 손아귀에 놀아난 대통령과 그 세력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빌미로 개헌을 입에 올린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 한겨레

출처 - 민중의 소리

 

민중이 다시 궐기하려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에서 전국 5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투쟁본부는 "국민의 힘으로 불통정권을 끝장내고 민중의 희망을 열자"고 촉구했습니다.

 

 

2014년부터 이어진 세월호 투쟁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이어진 장기 투쟁, 2015년에 비롯된 민중총궐기 투쟁이 도화선이 되어 4.13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가 달라졌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은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공권력 폭력의 실상을 자신의 죽음으로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치권은 개헌이니 뭐니 하며 권력을 잡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다시 한 번 보여줘야 합니다. 힘을 모읍시다.

 


2010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야당에서 청구한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총 9명의 재판관 중 4명이 인용, 4명이 각하, 1명이 기각 의견을 내어 인용을 위한 정족수 5명에 1명 모자라 안타깝게도 기각되었습니다.

참고로 문제의 핵심인 미디어법은 이런 법입니다.

미디어법 [media law]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나, 편의상 흔히 미디어에 관련된 여러 법을 통틀어 미디어법으로 부른다. 주로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디지털전환법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한나라당이 개정을 주장하였으나 야당과 진보 세력의 반발을 야기했고, 2009년 7월 22일 국회에서 논란 끝에 통과되었다. 통과 과정에서 투표의 유효성 논란이 발생했다. 7월 3일 민주당 등 세 야당은 헌법재판소에 방송법의 효력정지가처분 및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개정안에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여 대기업과 일간신문이 방송사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했다. 한도는 지상파 방송 10%, 종합편성 채널 30%, 보도채널 30%까지다. 또한 외국인은 종합편성과 보도 채널을 60%까지 소유할 수 있다. 지상파, 종합편성 및 보도 채널을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지분도 66%로 상향조정되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고 있으나 언론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제한장치를 두고 있다.

출처 : DAUM 백과사전 시사상식사전

일부 대기업과 언론사가 독과점을 이룰지도 모를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거죠. 이때 통과 과정에서 재투표, 대리투표 등 날치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절차상의 문제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올려주신 따뜻한 카리스마 님의 예를 참조하시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일개 국민 입장에서 미디어법 통과,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볼까요?( http://careernote.co.kr/686 )

문제는 이미 헌재가 국회 표결 당시 절차상의 위법은 있지만 법안 자체가 무효는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작년 10월 이 때문에 '컨닝한 것은 인정되지만 합격이 무효는 아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등 국민 사이에 헌재를 비꼬는 말이 많았죠. 절차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적어도 절차상 하자는 하자, 공을 돌려 받은 국회는 이 하자를 제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헌재에 문제를 제기했고, 올해 11월 25일 결국 이런 웃지 못할 대답을 듣게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헌재가 한 말은 이런 말입니다. 잘못한 건 맞는데 늬들 일은 늬들이 알아서 해결해라.

자기들이 저지른 일은 자기들이 알아서 해라... 언뜻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헌재가 이미 미디어법 표결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상 법적인 문제로 다뤄야 함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해버렸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한상희 건국대 교수와 임지봉 서강대 교수의 말을 옮겨보죠.

한상희 건국대 교수 : "헌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사건"
임지봉 서강대 교수 : "헌재가 존립하는 이유는 위법 위헌 상태를 적극적 위헌 판결을 통해 바로잡고 우리사회의 헌법질서를 수호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을 보면 헌재가 있을 이유가 없고 위헌이나 위법의 유권 해석은 법학자에게 물어봐도 될 사안"

출처 : 미디어법 기각 … “헌재 스스로 존재이유 부정”(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83690&sid=E&tid=0, 내일신문)

정치적인 선택으로도 직무 유기에 가깝습니다. 민주주의 정부의 근간은 삼권분립입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 권력을 견제한다는 사실은 중학교 사회 시간에도 배웁니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상징으로서 입법부의 잘못을 견제해야 하는 정치적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방기해버렸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법조계 사람들과 의식있는 언론인들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반대로 현 정부의 방통위와 방송 시장에 진출하려는 대기업 그리고 이른바 조중동은 신이 났습니다. 헌재의 판단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거죠. 방통위는 이미 종편 심사 절차와 관련된 일정을 밀어붙이기로 했습니다.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종편과 보도채널을 준비하는 언론사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란 기자가 진실이란 칼을 탐사보도란 끈기로 벼려내어 그 유명한 석유 독점재벌 록펠러의 문어발을 잘라내 해체한 후 100년. 이젠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독점재벌이 되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언론인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약자의 입장에 서서 진실을 파헤치는 참다운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이 그리운 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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