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5일은 법의 날입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한 역사를 살아온 우리는 법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권력의 횡보를 막고 폭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공공복지를 증진하려면 무엇보다 법적 질서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월 10일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국정농단으로 한국 사회를 문란케 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역사적 결단은 의미가 큽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으로 3개월여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됐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이 법적 절차에 의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과 현직 지도부의 결탁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어지럽히던 일부 세력이 법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정농단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준법정신, 법의 존엄성 이전에 법에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선 국정농단의 핵심이자 이 사태로 가장 오랜 기간 수사를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 기각이 있었습니다. 박영수 특검 당시 영장이 기각되어 국정농단의 마지막 보스는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닌 우병우가 아닌가 하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죠. 보강 수사로 수많은 자료를 모아 영장을 재청구했을 땐 100퍼센트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검찰이 호언장담했습니다. 물론 국민도 그렇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12일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혐의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병우가 혐의를 잘 감춰서 그러한가 했는데, 밝혀진 이야기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정황이 보입니다. 지난 13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검찰이 청구한 우병우 구속영장의 분량은 20쪽 정도였습니다. 검찰이 특수본을 세워 우병우의 범죄를 밝히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정작 특검 때보다 범죄 사실 분량을 3분의 1로 줄여 영장 청구를 했기에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라는 질타가 쏟아졌죠.

 

출처 - 경향신문

 

검찰이 우병우를 손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 검찰총장을 비롯해 국정농단 당시 수천 번 전화 통화를 했던 검찰 수뇌부가 물귀신처럼 함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박영수 특검이 우병우 일가가 가족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를 넘겼으나 검찰이 이를 뭉갠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법의 칼날이 누구 앞에선 무뎌지고 누구 앞에선 날카로워진다면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이 훼손됨은 명명백백합니다.


출처 - 뉴스1


법의 정신을 짓밟는 것은 검찰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도 유야무야 지나가는 중이죠.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수뇌부가 법관들의 사법개혁을 논의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탄압했고 이른바 진보 성향의 법관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죠. 문체부의 문화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사실로 드러나 사회적 충격이 컸는데, 공명정대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원 안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임명한 진상조사위원회는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부당한 압력은 일부 인정했지만 법원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조사 자체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판사들이 블랙리스트 파일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조사를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이후 이 컴퓨터의 파일이 대거 삭제됐다는 진술까지 나왔습니다.


법의 날을 맞이해 묻고 싶습니다. 법과 관련된 종사자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에게 법을 계몽할 자격이 있습니까? 검찰과 법원의 부끄러운 자화상만 드러나는 법의 날이 아닌가 합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되고,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탄탄대로에 오른 것 같았던 윤창중. 그런데 채 3달이 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전격 경질되고 말았죠. 주미 한국 대사관 파견 직원이었던 여성을 성추행하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저지른 황당한 사건은 어쩌면 그 이후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와 지금의 탄핵 정국을 예견하게 해주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탄핵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키고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마저 터졌습니다.


출처 - 유튜브



지난 15일 칠레 지상파 방송인 카날13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En Su Propia Trampa(자신의 함정에 빠지다)〉는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ensupropiatrampa/videos/1147618558619176/ )을 통해 칠레 주재 한국 외교관인 박정학 참사관이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출처 - YTN


예고편에서 박정학 참사관은 대낮에 미성년자에게 성적 표현을 하며 목을 끌어안고 키스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저항하는 미성년자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경악스러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En Su Propia Trampa(자신의 함정에 빠지다)〉는 프로그램은 함정을 파고 대상자가 걸려드는 장면을 찍어서 보여주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입니다. 예고편에 등장한 미성년자는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박정학 참사관은 계속해서 미성년자를 방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강제로 신체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나중에 프로그램 진행자인 에밀리오가 등장해 "지금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압니까? 당신이 미성년자에게 한 행동들은 한국에서도 칠레에서도 범죄입니다"라고 몰아붙이자 아무 말도 못 하던 박정학 참사관은 에밀리오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허리를 숙이고 손을 붙잡으며 제발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사정합니다. 이런 장면까지 보고 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참사관으로 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출처 – YTN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박정학 참사관의 미성년자 성추행은 한두 번이 아니어서 현지 교민들 사이에 유명했다고 합니다. 박 참사관을 몰아세운 시사고발 프로그램 역시 실제 성추행을 당한 여학생과 부모가 제보해서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방송에 출연한 여학생의 부모는 "내 딸도 저런 상황에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출처 - YTN


박정학 참사관은 칠레에서 한국 문화, 그러니까 칠레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한류와 K-POP을 전도하는 담당자였습니다. 이를 이용해 K-POP 그룹의 팬클럽이나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는 10대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며 집을 방문해 성추행을 일삼기 일쑤였다고 교민들은 전합니다. 심지어 12살짜리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까지 받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한류와 K-POP에 호감도가 높은 칠레에서 한 사람의 잘못으로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실추되다 못해 혐오감마저 주는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칠레 교민들은 이전부터 박정학 참사관의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했으나 별다른 조처가 없어 이번 사태로 치달았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박정학 참사관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대사관과 외교부 전체의 관리와 감독이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터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칠레 현지에서는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현재 칠레 교민들은 가해자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문자 테러를 당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교민들을 살피고 불편을 덜어줘야 할 외교관이 오히려 민폐 덩어리에 범죄까지 일으키다니 박근혜 정부가 어디까지 썩었는지 그 뿌리까지 본 느낌입니다.


출처 - 이뉴스투데이


현재 외교부는 박정학 참사관의 직무를 정지시켰다고 밝히며 조만간 국내로 소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칠레 검찰 당국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는 하는데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됩니다. 한국에서 형사고발을 포함한 법적 조치와 중징계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윤창중의 전례를 볼 때 과연 제대로 처벌이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윤창중의 성추문 사건으로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휘청거리며 체면도 잃고 실리도 잃고 말았습니다. 세월호에 탄 국민이 수장되던 시간에 올림머리를 하고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자신은 비선실세에 휘둘려, 아니 한통속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다 탄핵이 된 마당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하는 패륜 사건마저 터져 나와 대체 국격 파탄의 끝이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게 나라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아닌 그들 스스로에게 해야 했을 말이 아니었을까요?

 

4.13 총선 개표 방송을 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분이 많으실 테지요. 뜻밖의 총선 결과에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어지간하면 개헌선 못 돼도 과반이라고 기고만장하던 새누리당은 참패했습니다. 반면 19대 의석이나마 유지하면 성공이라던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이 되었습니다. 국민의당은 '천하삼분지계'에 성공하며 약진했습니다. 정의당의 심상정과 노회찬은 금의환향했습니다. 

 

거대 양당의 공천 갈등이 이번 선거의 화두였습니다. 일여다야의 구조 속에 청와대까지 총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설문조사 결과는 번번이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습니다. 역시 민심은 무섭습니다. 20대 총선 결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출처 - 노컷뉴스



새누리당 참패, 콘크리트 지지층 붕괴


이번 총선 내내 새누리당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습니다. 정권을 잡은 집권당인 데다 단독으로 원내 과반을 차지할 정도로 견고한 지지를 받은 제1당이었죠. 레임덕이라는 불안 요소를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새누리당을 돕기 위해 탄핵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총선 개입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보수 언론들은 연일 북한의 동향을 퍼트리고 탈북자 문제를 다루며 북풍 몰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모든 게 이전 선거판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방심은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총선 참패 후 나오는 수많은 조롱은 그간 함부로 내뱉은 새누리당의 오만함의 결과일 겁니다.


출처 – 시사in

출처 – 뷰스&뉴스

출처 - 아주경제

출처 - 트위터


이번 총선에서는 북풍이 통하지 않는 중도층이 선거 판세를 움직였습니다. 총선 국면 전후로 이어진 대북 이슈에도 과거와 같은 보수 세력 결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북한 핵실험, 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폐쇄, 탈북자 집단 망명 등 주목할 만한 북풍 이슈가 연이어 터졌지만 국민은 이에 대해 염증을 느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일변도인 대북 제재가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완전히 실패한 결과입니다.


중도층의 관심은 경제와 안전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보수의 아이콘이 집권하고 있고 과반이 넘는 원내 1당인 새누리당이 그 뒤를 받치고 있으면서도 경제는 계속 곤두박질쳤고, 사회적인 참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집권당에 과반 정당이라는 카드를 양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둘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무능하거나 악하거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이 둘에 다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으실 테지요. 어느 쪽이든 중도층은 손을 들어줄 일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특히나 이번 총선에선 진박, 친박, 비박 등이 갈리는 추한 공천 경쟁과 충성 경쟁 속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인 영남권조차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총선의 평균 투표율은 영남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는 새누리당이 꼴 보기 싫고 그렇다고 갑자기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주긴 그러니 투표를 포기하는 것으로 성난 민심을 표현한 보수 지지자가 많았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3의 선택지로 국민의당까지 등장하니 새누리당에 실망한 지지층이 국민의당으로 이동하는 결과 또한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박근혜 대통령과 TK의 총본산인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영남의 주요 선거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 후보가 대거 당선되며 콘크리트 같았던 보수 지지층인 낙동강 벨트도 끊어졌죠. 여권 지지자는 투표 포기로, 야권 지지자는 적극적 사전투표로 각각 정권 심판에 마음을 모은 결과,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겁니다.


4.13 총선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차기 대권 주자인 김무성은 새누리당 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그는 공천 당시 살생부, 옥쇄파동 등으로 재기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았습니다. 공천 학살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 이한구 등 친박 인사들도 총선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순 없겠죠.

 

반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내친 유승민 의원은 TK의 텃밭인 대구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총선 참패 다음 날부터 비대위 체제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에도 세대교체와 권력이동의 돌풍이 불 예정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전과 국민의당의 약진, 20년 만에 제3당 등장


더불어민주당 스스로 놀랄 정도로 총선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현상 유지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뜻밖에 원내 1당이 되는 승리를 거뒀으니까요. 중간에 잡음이 많았지만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자 경제통인 김종인 영입과 그의 당 운영이 주효했다고 말합니다. 우클릭이라는 비난을 받긴 했으나 새누리당의 안보 이슈 쟁점화를 노련하게 피했고, 경제 이슈에 전력한 결과 중도 보수층을 흡수해 원내 제1당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아무튼 더불어민주당의 선전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면이 연출됐습니다.



출처 - 아주뉴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국민의당의 약진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중진들과 안철수 대표의 약발이 다 떨어진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감돈 적도 있었으나 호남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부 보수층의 지지도 흡수했습니다. 특히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보다도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죠. 경제와 안보 문제에서 경우에 따라 편을 달리한 전략이 이번 선거에서는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중도 보수가 향방을 가른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안철수와 국민의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의당이 약진한 결과 국회는 20년 만에 양당 정치의 틀을 깨고 3당 정치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의 지지를 거의 상실한 대신 대구를 포함한 영남과 수도권 지역에서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며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진출하게 된 셈이고, 국민의당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당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주요 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됐습니다.



지역정치 소멸하나? '국회 삼국지'의 시작


20대 총선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지난 40년 동안 선거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던 지역주의가 상당히 해체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대구와 부산 등 야권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던 보수의 아성이 붕괴했고 강남 벨트의 한 축도 무너졌습니다.

 

호남과 야권 주류의 결합이 처음으로 사실상 와해되었으나 야권 주류가 수도권 압승을 발판으로 원내 1당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선 여에서 야로 간 사람, 야에서 여로 간 사람 등 상호 교체가 많았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종북세력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노동운동 출신 야권 인사가 울산에서 당선된 걸 보면 이제 한국 정치도 단순한 지역 구도와 북풍 공작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소통의 정치가 시작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어느 당이든 다른 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출처 - 헤럴드경제


각 당은 이번 총선 결과 앞에 겸허해야 할 것입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니까요. 새누리당은 참패를 맛봤지만 이번 총선 결과를 더 상세히 분석해봐야 합니다. 야권통합이 되지 않아 3자 구도여서 어부지리로 당선된 곳만 33곳이 넘으니까요. 만일 야권 연대가 이뤄졌더라면 압도적으로 야권 후보가 당선됐을 곳들입니다. 이런 지역을 모두 잃었다면 새누리당은 90석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국민은 그동안 안하무인으로 유신 독재로 회귀하려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셈입니다. 이제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청와대 바라기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독재를 견제하는 국회 본연의 자세를 되찾는 것이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총선 결과 앞에서 겸허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원내 1당이 된 셈이니까요. 여기서 기고만장해 국민의 뜻을 거스르다가는 제2의 열린우리당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성난 민심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인 원내 1당이 되었던 열린우리당은 기고만장하다 호남권의 역풍을 맞고 소멸하여 민주당에 흡수되고 말았죠.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TK의 아성을 깨고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하여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호남이란 기반을 잃어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민의당은 기뻐하기에 앞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호남권의 지지가 없었다면 당은 소멸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민의를 벗어나는 우클릭은 자신의 존립 기반을 없애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20대 총선이 끝나고 내년이면 대선 정국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박근혜 정부의 독재도 필연적인 레임덕과 더불어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3당을 주축으로 하는 국회 삼국지라는 결과를 내어준 국민의 의중을 읽고 각 당은 제대로 된 소통으로 시원한 정치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 혐오가 기승을 부리고 이전투구의 다툼 속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대선을 치르게 될 테니까요.

 

출처 - 경향신문

 

여야를 막론하고 3당은 세월호특별법과 특검 수용, 테러방지법 폐기, 노동개악 4법 폐기, 청년 고용 및 경제 문제 해결 등등, 국민이 원하는 문제부터 하나하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합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정신 차리고 자신의 의무를 잘 감당하기 바랍니다. 점점 더 성숙해지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10시간 18분과 5시간 32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시작한 필리버스터의 기록입니다. 1973년 폐지되었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시 도입된 것으로 국회법에 의거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방법입니다. 국회의원 3분의 1의 동의를 받으면 해당 법안에 관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무제한 토론으로 시간을 끌어 국회 회기를 넘기면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점을 노린 방법입니다. 미 대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버니 샌더스도 8시간 넘게 부자 감세에 관한 필리버스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세력이 작은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의 발언 도중에 삿대질을 하며 공천 타령을 하거나 네이버에 '필리버스터 저지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식을 증명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출처 - 한국인터넷언론협동조합


국민을 억압하는 테러방지법을 책상을 두드려 가며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그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덕택에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쓰이게 된 셈인데요,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한편 필리버스터가 올림픽 종목도 아닌데 '기록 경신'에 주목해서 트래픽 끌기에 바쁜 언론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것이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생각비행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테러방지법? 국민 때려잡는 중정부활법이 그 정체!


박근혜 정부 3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대한민국을 휩쓸 정도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을 위한 '성장 제일주의'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제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3년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기사를 보니,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경제성장과 관련된 핵심 키워드가 20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한 공개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 '대한민국' '경제'였습니다. 단어가 합쳐진 결합 키워드로는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경제혁신' 등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평화통일의 연관어는 2013년 '한반도' '신뢰'에서 2014년 '통일준비위원회' '대박'으로 변하다가 2015년 들어서 '이산가족'으로, 2016년에는 '도발' '제재'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최근 언론과 방송 기사는 북한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룹니다. 201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긴장 관계를 극단적으로 조장하는 한편 '안보 위기 프레임'으로 자신의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타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 단기간에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행보와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어서 과거의 행보가 과장된 연출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적인 테러와 북한의 핵 도발 등 '안보 이슈'와 관련된 기사가 판을 치니 당연히 테러방지법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IS가 생기기 전부터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지난 15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에 의한 인권 침해 등의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은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은 이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부여하느냐겠죠. 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원이 권력을 더 많이 얻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테러방지법에 독소 조항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선 이번 테러방지법은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에 한정되어 있던 활동을 국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원칙적으로 국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국외의 정보활동을 통해 안보를 지키는 것이 정보기관인데, 테러를 내국인도 저지를 수 있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테러방지법의 칼끝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요.

 

현재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17조를 보면 테러단체의 수괴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테러방지법이 규정하는 테러의 정의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당시 국민이 적법하고 상식적으로 진행한 시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박근혜 정부라면 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경우 시위단체와 시위주동자를 테러단체와 테러범으로 몰아 극형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유신시대처럼 국민을 공포로 통치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이를 볼 때 테러방지법은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부활을 노리는 법과 다름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테러방지법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형법이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이중처벌을 하는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생길 경우 이중, 삼중의 처벌이 줄을 이을 테니까요. 더구나 필리버스터로 기록을 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의 질문으로 굴욕을 당한 황교안 총리의 사례를 보면 왜 테러방지법이 필요 없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2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라는 기구가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을 포함한 11개 부처가 반기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의장은 다름 아닌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는 그런 기구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자신이 그 기구의 의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미 있는 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런 조직의 장인지조차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테러방지법이 생긴다고 갑자기 유능해지고 대테러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러방지법은 국민감시법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끼워 통과시키려는 감청설비의무화법은 전 국민의 카카오톡과 문자, 통화를 도청, 감청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을 시도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정치 수준이 참으로 저열합니다. 테러방지법과 감청설비의무화법이 통과되면 전 국민은 국가의 감시 속에 사는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누가 엿들을까 봐 조심해야 하는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겁니다. 이는 심각한 헌법 위반이며 인권 침해입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35년 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존재해왔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단독의 테러대책기구를 두어야 하는가?


-합법적인 영장 집행 절차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의 독단적인 판단의 정보 수집을 허가해야 하는가?


-정보통신법에 따라 합법적인 게시물 삭제가 가능한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독단적 판단에 의한 긴급삭제권을 주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무슨 저의로 이미 있는 법과 기구들까지 무시해가며 국정원에 무제한적인 권력을 주려고 하는가?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을 테러방지법 무산으로 연결하자


최근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 테러범의 아이폰을 FBI가 잠금해제 해달라고 애플에 요구한 사건입니다. FBI는 총기 테러를 벌인 뒤 사살된 사예드 파룩이 쓰던 아이폰 5c의 보안 기능을 해제할 수 있는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은 거부했습니다. 사생활 보호가 안보에 우선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때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IT업체들과 인권단체는 일제히 FBI를 비난하며 애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상이 테러범일지라도 국가 정보기관을 위해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경우 선량한 국민의 아이폰도 FBI가 사찰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누리집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라는 장문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애플 코리아 누리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애플 코리아 누리집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나 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느냐는 국민의 지속적인 노력과 권리 행사의 결과로 귀결됩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 행사는 투표입니다. 올해 4월 13일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국민을 사찰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테러방지법에 반대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진보 진영의 당도 있습니다. 시민은 권리와 책임이 있는 주체입니다.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가꿀 책임 있는 존재들입니다. '할 수 없다'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거대 정당 중심으로 짜인 선거판을 뒤집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녹색당

 

출처 -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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