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자리를 빼앗긴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국정원이 SNS의 선거 영향력을 분석하여 2012년 총선, 대선의 승리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장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세계일보》가 폭로한 국가정보원 SNS 장악 보고서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보고서를 보면 국정원이 집권여당의 선거 전략 기관처럼 운영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이자 공직선거법 위반이며 이명박 정권 당시 민간인 사찰 의혹마저 재점화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합니다. 현재까지 검찰과 법원은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댓글 조작 활동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청와대 핵심부가 구체적으로 연루된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셈입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탄핵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마저 벌어졌으니, 결국 지난 9년간 우리나라를 망친 몸통이 이명박이었다는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출처 - 세계일보


국정원 SNS 장악 보고서를 보면 각종 탈법과 비윤리적 방법을 이명박 정권 당시 거침없이 제안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출신 학교,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강화해 총선을 대비한 튼튼한 뿌리 조직을 만들되 평시엔 평범한 곳으로 꾸미라며 치밀한 준비 작업을 교사했습니다. 트위터와 관련해서는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팔로워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등, 18대 대선을 앞두고 트윗과 리트윗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던 것과 비슷한 방법들을 제안했습니다. 특히 팔로워가 많은 유명인사를 통해 국민 갈등을 부채질할 것을 제안하기도 해 트위터의 '초원복집화'를 꾀했음을 알 수 있죠. 듣보잡이었던 우익 논객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나 싶었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싶은 대목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2040세대의 야권지지 동조화 경향이 뚜렷하다며 선거에서 2040세대와 5060세대의 대결을 부추기고 2040세대가 SNS에서 투표 독려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도 섞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행위를 일벌백계하고 야당 좌파의 법치 공권력 경시 풍조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야당, 좌파에 대한 표적 수사로 보일 소지가 있으니 수사 독려 사실은 보안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정말로 공명정대한 활동이라면 수사 독려 사실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할 필요는 없었겠죠. 이는 국정원 스스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출처 - 세계일보


극도로 은밀하게 취급된 이 보고서는 2011년 매일 새벽 청와대 정무수석실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준공된 연풍문에 근무하는 경찰관에게 국정원이 밀봉 문서를 맡기면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출근하면서 수령하는 구조였는데요, 문서 접수대장 없이 수령을 확인하는 서명만 이루어졌다고 하니 떳떳하지 않은 문건임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행정관이 문서를 개봉, 분류해 정무수석에게 건네면 며칠 뒤 다시 행정관에게 문서가 돌아왔는데 이걸 파쇄하는 것까지가 그 행정관의 업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행정관이 2012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청와대 근무를 그만두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문서를 파쇄치 않고 틈틈이 빼돌렸습니다. 그 분량만 715건에 달한다고 하죠. 자기 이익을 위해 자신이 복무한 정부의 치부까지 빼돌렸다가 추후 세상에 드러난 셈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출처 - 뉴스1


현재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중입니다. 2심에서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모두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3년이 선고되었으나 3심인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 바 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번에 폭로된 국정원 SNS 장악 보고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부인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매주 이명박을 독대했을 원세훈. 그러니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 모든 조작과 선동의 배후라고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추론 아닐까요?


출처 - 경향신문


현재 현직 검사 등이 포함된 국정원 개혁위 산하의 적폐청산 TF팀은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주요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재조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LL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수사
-국정원 댓글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박원순 제압문건 수사
-국정원 '좌익효수' 필명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뒷조사 사건
-극우단체 지원 관여 의혹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통한 민간인 사찰

 

이번 기회에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그동안 권력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기관들과 그 배후 정치인들을 발본색원하여 앞으로는 정치 공작과 개입, 국민 분열을 선동하는 일이 없게끔 조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적폐청산 TF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엔 태풍이 몰아친다... 이는 '나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예입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유럽발 날갯짓이 극동아시아에 태풍을 유발했습니다. 지난 6일 이탈리아의 업체 해킹팀이 해킹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해킹을 해주던 업체가 누군가로부터 해킹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같았던 지구 반대편 회사의 해킹 소식이 일주일도 안 되어 대한민국의 국정원을 핵으로 한 무시무시한 태풍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해킹팀에서 유출된 내부 자료의 양은 무려 400기가 바이트에 달합니다. 여기엔 회사의 내부 문서, 소스코드, 전자우편 기록, 직원 컴퓨터의 화면 스크린샷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자료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공개되었죠.

 

 

위키리크스의 폭로,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다

 

생각비행은 위키리크스와 연관된 기사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위키리크스가 대한민국 썩은 정계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 11월 28일 위키리크스는 25만여 건에 달하는 미국 기밀 외교전문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2007년 한국의 대선과 관련된 보고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 사회에 파문을 남겼습니다. 폭로된 외교전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을 조속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쇠고기 수입 재개를 6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지요.   

 

2011년 5월 25일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위키리크스 대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인상 깊은 발표가 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직접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로 쓴 적도 있습니다. 이 발표에서 《슈피겔》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는 폭로 플랫폼이 미디어와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 폭로 사이트들이 기존의 미디어를 보완하거나 향상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위키리크스는 기존 언론이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해왔고, 이는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탐사 저널리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생각비행의 예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해킹팀의 자료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위키리크스 해킹팀 자료 다운로드 : https://wikileaks.org/hackingteam/emails


해킹팀은 해킹을 당한 직후 공격자들과 대중에게 자료를 퍼뜨리지 마라, 공격자들이 우리 회사에 관해 주장하는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며 사태 수습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그들의 통제 범위를 까마득히 넘어버렸습니다. 이틀 후인 8일 해킹팀 대변인은 6일 해킹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고객인 정부와 정부기관에 판매한 기술에 접근할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며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해킹된 해킹팀의 자료에는 이 회사에서 해킹 장비를 구매한 FBI, KNB 등등 세계 여러 정부 및 정보기관 목록과 구매 대금 영수증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5163부대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소프트웨어 구매와 유지, 보수 등으로 6차례에 걸쳐 8억 8000만 원을 지불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포털 사이트 댓글부터 SNS까지 광범위하게 대선 개입을 해 유죄를 선고받은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이 바로 5163부대입니다.



박정희에 충성을 맹세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 5163부대

 

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2013년 《시사in》의 취재에 의하면 자주 등장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은 7452부대와 5163부대였습니다. 어느 것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습니다. 북파 공작원도 한때 중앙정보부 5163부대 소속이었는데요, 5163이란 5.16 쿠데타 때 박정희가 새벽 3시에 한강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7452부대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과 그 밑 준비를 위해 5월 2일 처음으로 판문점을 넘은 중앙정보부 이후락을 기념한 숫자라고 하죠.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에 담긴 뜻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독재를 꾀하다 죽은 지 30년이 넘도록 제정신이 아니었던 국정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더구나 대선 개입을 해서라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던 국정원의 지난 행적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약간은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국정원(5163부대)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고도의 해킹 프로그램 RCS를 국민의 혈세 8억 8000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해킹 자료에는 구매 영수증까지 포함되어 있어 국정원도 이를 부인할 수 없었죠.



RCS, 당신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국정원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나나테크를 통해 도입한 RCS는 원격제어시스템으로 스파이웨어 기반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감염시키고 감시하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해킹팀이 RCS를 특정 사용자들의 암호화된 통신까지 모조리 감시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감시의 광범위함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MS 윈도나 구글 안드로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보안이 좋다고 알려졌던 애플의 iOS, 리눅스뿐 아니라 블랙베리, 심비안 등 거의 모든 PC와 스마트폰 운영체제 감시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글 지메일을 쓰거나 MS의 스카이프로 통화하거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할 때, 아무리 암호화를 해두었다고 하더라도 키보드 입력, 음성통화, 오디오, 비디오 등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유출된 해킹팀의 자료를 분석한 언론의 보도를 들여다보면 국정원이 얼마나 꼼꼼하게 감시에 공을 들였는지가 드러납니다. 5163부대가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에 카카오톡 해킹 기술을 문의했다는 문서 내용이 공개된 가운데 카카오톡에서 사이버 망명한 메신저 중 인기가 높던 바이버에 관해서도 해킹 기술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이버는 안철수, 유병언, 황교안 등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의원이나 비서관이 많이 쓰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죠. 바이버가 텔레그램처럼 본사가 외국에 있고 도·감청 가능성이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시 이탈리아 해킹팀은 R&D팀에서 검토 결과 RCS 다음 버전부터 요청한 기능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초처럼 카카오톡 사태를 우려해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들 국정원이 타깃으로 지정하는 이상 감시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는 실로 무서운 이야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국정원은 한술 더 떠서 R&D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S 시리즈를 비롯, 스마트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해킹팀에 보내 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3년엔 갤럭시S3를 직접 보냈고, 지난달에는 매우 중요한 기능 요청이라며 신제품인 갤럭시S6를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국정원은 전 세계에 발매된 갤럭시 S3 중에서도 굳이 국내에 발매된 모델을 보냈다고 합니다. 통신사별로 기본 탑재 어플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해킹을 위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스마트폰을 직접 분석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죠. 이는 국정원의 변명과 달리 RCS를 국내 감시용으로 썼다는 방증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국정원과 나나테크, 그리고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 내용만 봐도 국정원이 스마트폰 하드웨어부터 백신 프로그램, 카카오톡 등 메신저 어플 같은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감시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음이 드러난 것이죠.  


더구나 해킹팀의 해킹 공격 기술을 이용한 한국 국내 공격이 실제로 이루어진 정황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2013년 국정원의 요청을 받아 이탈리아 해킹팀은 공격코드를 삽입한 ‘천안함 문의(Cheonan-ham inquiry)’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을 만들어 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워드 파일을 받아 연 사용자는 해킹팀의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모든 것을 감시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는 국정원이 국내 이슈 전반에 걸쳐 무차별적인 도·감청 및 감시 활동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정원의 치졸한 변명, RCS는 사용했지만 감시는 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산 스파이웨어 RCS를 실제 사용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치졸한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국정원은 RCS를 민간인 사찰이 아닌 대공수사용으로만 썼다고 합니다. 이는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하기까지 하는 국정원의 행태를 볼 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RCS는 모든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법이 정한 압수수색의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큰 탓에 이런 수사방식은 설사 영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위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큽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48조와 49조에 의해서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감청 소프트웨어를 심고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백신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정원이 국가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며 스스로 컴퓨터의 악성코드와 똑같은 존재로 타락한 것이죠. 생각비행은 <메르스 정국에 SNS 감청법 발의한 새누리당>이란 기사에서 지난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SNS감청법을 발의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유출된 해킹팀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미루어볼 때 새누리당의 SNS감청법 발의와 국정원의 미친 짓거리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군요.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에 의하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인가한 감청 장비 현황과 기관별 보유 감청장비 사이에 70여 대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신고할 의무가 없는 국정원이 이 70여 대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인을 무는 개라면 마땅히 재갈을 물려야 하겠지요. 국민을 위법 감시한 국정원은 단죄함이 마땅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 도·감청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사생활을 보장함과 아울러 국정원 활동을 법으로 규제할 제대로 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킹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사찰했을 가능성이 커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3일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규명에 나섰습니다. 이번 사안은 야권 전체의 초당적 차원에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당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댓글 공작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또다시 국정원이 불법사찰을 지속했음이 드러난 이상 문제의 근원이 된 국정원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고 처벌함이 마땅합니다. 국정원이 사용하는 예산이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해킹 프로그램 도입에 사용된 것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들이 하는 일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구조 자체가 참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사건을 '국정원 불법사찰 시즌2'로 규정하고 국회 차원의 대응을 시사한 것과 상반되게 새누리당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참 의아한 상황입니다. 초록은 동색이기 때문일까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상황이 드러난 시점에 새누리당이 이를 '국정원녀 감금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야권 전체를 싸잡아 비판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불법 도청 사건으로 하야한 닉슨을 기억하라

 

1972년 6월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공작반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이었죠.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닉슨 정권은 의도적으로 선거를 방해했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정치 헌금을 받았으며 탈세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죠. 결국 1974년에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합니다.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감청은 유명한 일입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포함한 각국 정상의 휴대폰을 불법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최근 미국은 정보기관의 무차별 도·감청을 끝낼 미국 자유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오랜 악습의 고리를 끊어낸 것입니다.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을 비공식 방문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체 왜 그 시점에 국정원을 방문했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SNS감청법을 발의한 이후라는 걸 시기적 우연성으로 넘겨야 할까요? 지난달 22일 다음카카오가 언론사의 기사에 정부나 기업이 해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게 하는 댓글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7월에 시행하겠다고 한 것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일이었을까요? 최근 터져 나온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매 사건을 국민의 자유를 옥죄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엮어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모르는 어마어마한 일이 이면에서 진척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 https://resistsurveillance.org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보안 전문가들과 디텍트(DETEKT)라는 보안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도·감청 비리를 폭로한 이후 정부가 감시 목적으로 컴퓨터에 심어 놓은 도·감청 스파이웨어를 찾아낼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 스파이웨어가 있는지 추적하는 기능도 포함된 모양입니다. 혹시 컴퓨터가 도·감청 스파이웨어에 감염되어 있는지 걱정되는 분이 계시다면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점검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국가기관의 불법을 용인해선 안 됩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원의 실체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혀낼 일입니다. 국민을 감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는 이는 그 누구라도 일벌백계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계의 역사를 뒤흔든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4주기가 되던 지난 9월 11일.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흔든 판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의 중심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었죠. 이날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한 건설업자에게 1억 7000여 만 원의 뇌물을 받은  개인 비리 혐의로 1년 2개월간의 징역을 살고 만기 출소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한 판결에 따라 출소한 지 며칠 만에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 6월에 자격정지 3년 그리고 집행유예 4년으로, 유죄이긴 하나 애매하고 찜찜한 이율배반적인 선고를 내렸습니다.



출처 - JTBC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서 부정을 저지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고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데 그친 이유는 법원이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이율배반적인 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법원의 판결을 본 많은 국민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거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당선된 선거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과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활동을 했다는 점, 그리고 선거 국면에서 국민의 여론 형성에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직접 개입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원세훈은 국정원장으로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할 책임이 있음에도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정홍보 등을 지시하여 정치관여 활동을 이루어지게 했다"며 "특히 이와 같은 활동은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하는 행위로서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이 전 차장과 민 전 심리전단장에게 "소속 직원들의 정치관여 행위를 차단하고 방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원세훈의 위반한 지시를 그대로 전달하여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했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찜찜한 유죄... 선거법 85조 아닌 86조였다면?(오마이뉴스)


어쨌든 재판부의 선고로 사실관계는 명확해졌습니다. 선거 시기에 국정원의 활동이 있었네 없었네, 정치 및 선거에 관여를 했네 안 했네 하는 식의 갑론을박을 더는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이 치러질 시기에 국정원장을 정점으로 3차장과 심리전단장을 거쳐 지시-보고 체계를 통해 조직적 범죄를 저지른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이죠.



출처 - 세계일보


그런데 문제는 이번 판결의 핵심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관한 부분입니다. 유죄 판결은 났지만 핵심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국정원과 여당 입장에서는 무죄 판결이 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혐의에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사실상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이유가 대체 뭘까요?


법원이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중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핵심 논리는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구분해서 적용한 데 있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린 핵심 논리는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구분한 데 있다. 재판부는 "비록 피고인들의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있더라도, 그보다 좁은 개념인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인들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어떠한 행위를 선거운동이라고 보기 위하여는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찜찜한 유죄... 선거법 85조 아닌 86조였다면?(오마이뉴스)


정리하자면 1심 법원의 최종 판단은 국정원법상 정치관여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긴 했지만, 이것을 선거운동이라고 확정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는 지나치게 선거운동을 좁게 해석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검찰이 기소한 선거법 조항이 선거법 제86조가 아닌 제85조라는 점의 이미도 파악해야 합니다. 선거법 제85조 내용은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제86조는 몇 가지 행위를 나열하며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포괄적인 조항입니다. 둘이 쌍이 되어 공무원의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이유에선지 이번에 국정원이 기소된 선거법 조항은 제86조를 제외한 제85조뿐이었습니다.


결국 판결의 행간에 숨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는 선거법 제86조인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는 해당할지도 모르지만, 검찰이 기소한 제85조 선거운동에 관해서는 무죄라는 것입니다.

 


출처 - 트위터


법 해석을 지나치게 좁게 하여 일반인이 보기에 이율배반적인 판결로 해석되는 결과 때문에 짜맞추기식 판결이라는 비판 여론이 쇄도했습니다. 이 사건의 고발장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판사 출신 새정치민주연합의 박범계 의원은 이 판결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강간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있는데 재판정에서 보니 강간은 맞지만 상해는 아니라고 해보자, 그럴 경우 판사가 기소된 강간상해가 아니므로 무죄를 선고하는 게 맞느냐"면서 "그럴 경우 판사가 공소장을 강간으로 변경하는 게 어떻겠냐고 검찰에 권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초 민주당에서 고발장을 제출할 때는 선거법 85조와 86조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기소단계에서 86조가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찜찜한 유죄... 선거법 85조 아닌 86조였다면?(오마이뉴스)


이 비유대로라면 강간은 맞는 것 같은데 때린 건 아닌 것 같으니 전반적으로 무죄로 보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꼴입니다. 혐의는 명백하니 벌을 하긴 해야겠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는 판결을 할 수는 없으니 다분히 정치적인 선고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셉니다. 이 판결에 대해 청와대는 할 말 없다며 침묵했고, 여당은 벌써 야당의 정치공세일 뿐이라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법 감정에서조차 이 판결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형평성의 문제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1심 판결 직후 SNS상에는 지난 대선 때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반인의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출처 - 트위터


일반인은 커피 제공 공약을 했다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데, 국정원의 경우 정치관여 혐의가 모조리 인정된다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는 판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법의 위엄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상필벌을 엄격히 지키는 것. 즉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죄를 지었으면 같은 벌을 내려야 법의 위엄이 생기고 권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죄임에도 사람에 따라 지위에 따라 돈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어떨까요? 그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주먹을 가깝고 법은 멀다는 한탄처럼, 법이 우습게 보이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4.19 정신을 기억하라


최상위 법이자 대한민국 법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그리고 이념 등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실 첫 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렇습니다.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3.1 운동, 그리고 또 하나,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 국민들이 일으킨 혁명인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축으로 공명정대한 선거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꼽고 있는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일어난 4.19 혁명으로 단죄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이기붕 부통령이 가족과 동반 자살한 지 54년이 지난 오늘, 부정과 부패를 알면서도 찜찜한 유죄와 무력한 무죄를 목도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습니다. 과연 2심과 3심에서 진실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남은 두 번의 판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향방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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