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흔들리고 높은 분이 위기에 처하자 밑 사람이 자살로 스캔들을 막고, 첩보 활동에 연루된 용의자는 유유히 해외로 도피해 휴양을 즐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일드와 미드를 합해 놓은 듯한 일입니다. 이탈리아 해킹팀 자료 유출로 민간인 사찰 정황이 드러나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담당자인 국정원 직원이 자살을 하고, 해킹 프로그램 RCS를 국정원에 구매해준 나나테크 사장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유유히 캐나다로 날랐습니다. 막장 드라마 같은 모습이 바로 대한민국의 오늘입니다.

출처 - 시사인


생각비행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RCS라는 프로그램을 구매해 지난 대선 개입 당시부터 운용한 사실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빅브라더, 국정원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다 : http://ideas0419.com/566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이 점입가경입니다. 오늘은 그 난맥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해킹 불법 사찰 의혹으로 자살 '당한' 국정원 직원


해킹 프로그램으로 인한 민간인 사찰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확산 기미를 보이던 지난 주말, 국정원 직원인 임 모 과장이 자기 승용차 안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5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그의 아내가 소방서에 실종 신고를 한 지 2시간 만인 오후 12시 2분, 소방대원들이 야산에서 임 과장의 시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휴대전화 내 위치추적 앱을 활용해 임 과장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국정원 직원이 휴대전화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고 다녔다는 말인데, 이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더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실종 신고를 받아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자살로 추정되는 현장에서 실종자의 생사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더구나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쳐 외부 접근을 막기는커녕 현장을 기자들에게 공개해 사진을 찍고 차량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하는 일마저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살한 임 과장은 운전석에 앉은 채 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조수석과 뒷좌석에는 자살에 사용된 번개탄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수석에 A4 용지에 쓴 3장의 유서가 있었습니다. 주말에 자살한 시점, 언론과 방송의 이례적인 자살 속보 경쟁, 경찰의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자살 현장이 기자들에게 그대로 개방된 것…. 이렇게 국정원 직원의 자살 사건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지난 7월 18일 오후 9시 17분에 《조선일보》는 <[단독]숨진 국정원 직원은 해킹 내부 직원... "내국인 해킹한 적 없다>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때까지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 과장이 해킹 업무를 담당했는지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조선일보》는 어떤 언론사보다 먼저 임씨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과 해킹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 등을 보도한 셈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일절 보도하지 않던 《조선일보》가 이례적으로 국정원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면서 내국인 해킹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친 겁니다. 뭔가 짜인 각본에 의해 연출된 듯한 냄새를 물씬 풍깁니다.

 

유서 공개를 극구 반대한 유족을 설득해 경찰은 다음 날 임 과장이 국정원 상사들에게 쓴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임 과장은 유서를 통해 국민과 선거에 대한 사찰이 전혀 없었다면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유서라기보다는 사과문이나 시말서에 가까움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국정원은 임 과장이 2012년도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실무적으로 판단하고 주도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유서 내용과 국정원이 밝힌 내용에 근거한다면 임 과장이 자살할 이유는 사실상 전혀 없었습니다. 국정원의 발표대로 북한을 해킹하기 위한 구매였다면 그 부분의 자료만 증빙하면 될 것이고, 연구 목적이었다면 관련 사실을 그대로 국회에 제출해 의혹을 풀면 될 일입니다. 임 과장의 유서 내용처럼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한 적이 없다면 그가 억울해할 일이 전혀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 과장은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정말로 해킹 프로그램이 대북한용이었거나 연구 목적일 뿐이었다면, 그리고 임 과장이 너무나도 억울해서 죽음을 각오할 정도였다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는 편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에 근거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죽음을 앞두고 관련 데이터를 지워버렸다는 건 역설적으로 민간인 사찰 의혹을 더욱 의심하게 하는 정황 증거가 됩니다. 자살 직전 진행되고 있었다던 국정원 내부 감찰이 임 과장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수는 있지만 첩보 분야 전문가가 그런 부담감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증거를 맞춰보면 임 과장은 국정원의 보이지 않은 압력에 의해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실제로 또 있었습니다.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국정원 권 모 과장은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항변도 이번과 똑같았습니다. 국정원이 간첩 증거 조작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죠.


일본 정치권이나 우리나라나 거대한 스캔들이 일어나면 몸통이 아닌 꼬리가 희생되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책임자라며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죽음으로 내몰았던 유병언 회장의 자살 사건도 의혹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가 세월호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맞는가 하는 사실관계의 의구심부터 누군가 그의 시신을 바꿔치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국정원과 정치권과 경찰의 무능하고 한심한 반응들


진실을 감추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국정원의 태도는 이번에도 여전합니다. 해킹팀의 해킹프로그램을 35개국 97개 기관이 구매했지만 아무 논란 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근거 없는 의혹으로 국가 정보기관을 매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겁니다. 새누리당도 여기에 동조했지요.

출처 - 시사인


하지만 변명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해외 정보기관 역시 이번 해킹팀 사태로 뭇매를 맞고 있으니까요.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FBI와 마약단속국에 해킹팀 해킹프로그램 사용처를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마약단속국은 해킹프로그램 사용을 시인하고 사용 규모를 공개했습니다. 키프로스 정보기관은 정보보호법 저촉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장이 물러났습니다. 규모가 큰 나라부터 작은 나라까지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뻔히 나오는 뉴스를 두고서도 국정원은 마치 자신들이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조작과 변명을 일삼았습니다. 

 

이는 국정원의 마인드가 전근대적인 시점에 멈춰 있음을 방증합니다. 그들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화룡점정은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로 언론에 배포된 공동성명입니다. 명색이 정보기관이라는 곳의 직원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감성팔이를 하는 것은 세계 정보 역사에 유례가 없을 겁니다. 직원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고, 위에서는 내부 직원들을 통제조차 못 하는 무능한 조직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사건의 용의자이니 헛소리를 해도 사실을 은폐하고 싶어 그러려니 하겠지만, 민간인 사찰 의혹과 이로 인한 국정원 직원 자살에 반응하는 정치권과 경찰의 대처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출처 - 뉴스1


유승민 사태 때 박근혜 대통령 보위에 나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번에는 국정원을 두둔하고 나섰습니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국가 안위를 위해 필요하면 해킹해야" 된다고 발언해 비난을 받았죠. 대한민국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입니다. 여권의 제1 대선주자라는 사람이 이 나라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모르고 있다면 크나큰 문제입니다. 알고도 저런 소리를 지껄였다면 이는 더 큰 문제입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빼놓으면 섭섭하게 여기겠지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부터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산 넘어 산이었던 청와대로서는 이번 해킹 프로그램 사건에 개입하면 일이 커질까 봐 쉬쉬하고 있습니다. 2005년 참여정부 때는 국정원의 도청 의혹을 "정부나 국정원이 무슨 말을 한들 국민이 믿겠느냐. 도청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려면 (국정원이)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비판하던 분이 왜 지금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출처 - 한겨레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최종 지휘권자는 대통령입니다. 국정원이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용도로 변명한 대공 감청의 최종 허가권자 또한 대통령입니다. 백번 양보해 국정원의 변명을 믿어준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실정법 위반의 혐의가 짙습니다. 해킹 프로그램을 대북용으로 사용했다 한들 대통령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입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4개월에 한 번씩 대통령으로부터 감청 허가를 몰아서 받는다고 변명했는데요, 법적으로 개별 건마다 대통령의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이것만으로도 국정원은 위법 혹은 규정 위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허가를 받은 감청 대상자라도 그 사람이 대한민국 국적의 내국인과 통신을 할 때는 추가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국정원은 어느 쪽이든 법을 어긴 셈입니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직속기관이 뭘 하는지도 몰랐던 무능한 대통령인 셈이고, 알고도 허가했다면 미국 닉슨 대통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 위반입니다.

 

출처 - 조세일보


정치권과 국정원이 한통속이니 경찰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경찰은 임 과장의 자살이 불법 민간인 사찰과 맞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채 사실상 하루 만에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부검 결과 타살 의문이 없고 행적도 다 밝혀졌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경찰은 평범한 사람의 자살 사건이라도 한 번쯤은 조사해볼 통화 내역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정원 윗선의 압력으로 인한 자살이라면 부당한 업무 지시나 협박에 의한 죽음으로 볼 의혹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또한 윗선의 지시로 데이터를 삭제했다면 이는 증거 인멸 교사라는 중범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부분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도무지 수사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출처 - 한겨레


이렇게 어지러운 판국에 국정원과 해킹팀 사이에서 에이전트 역할을 했던 나나테크의 허 대표는 출산을 앞둔 자기 딸을 보러 간다며 유유히 캐나다로 출국했습니다. 허 대표는 해킹팀의 프로그램 구매와 사용이 불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역시 이번 사건의 중요한 용의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런 사람을 출국금지 조치도 하지 않아 캐나다로 나가는 것을 그냥 뒀으니, 이는 일부러 보내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안철수 의원 국정원 해킹 자료 요청, 과연 의혹을 파헤칠 수 있을까?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9일 안철수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정원의 불법 해킹을 통한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관련 직원의 돌연한 죽음으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운영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국정원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수사 당국은 한 점 의혹 없이 국민 앞에 밝혀 달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가 이번 사건에서는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지난 21일 국정원에 7개 분야 30개에 이르는 해킹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해 국정원과 새누리당을 당혹게 했습니다. 보안업계 출신자다운 행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안 의원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3년 6개월치의 모든 로그 파일과 감청 단말기, 인적 사항을 포함한 인원 숫자, 감청 내역 및 조치 사항, RCS 감청 시연 및 운용 실무자 면담까지 물샐 틈 없이 자료를 요구하는 한편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삭제한 데이터와 관련해서도 그가 삭제 수정해 훼손된 디스크 원본과 복구 파일을 동시에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스스로 복구하겠다며 해킹 미끼 블로그들을 지우고 있는 국정원의 위변조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이상한 점은 새누리당이 "국정원이 목숨을 끊은 직원 임 씨의 삭제 자료 복원을 완료하는 시점에 맞춰 새정치연합도 여야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합의한 국정원 현장 조사에 응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료가 복원되면 새누리당은 정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석연치 않은 국정원 직원의 자살, 삭제된 자료를 디지털 포렌식으로 100퍼센트 복원할 수 있다는 국정원의 대응, 새정치민주연합의 의혹 제기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겠다는 새누리당의 알 수 없는 자신감 등을 미루어 볼 때 과연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민간인 사찰 의혹의 진실이 밝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걸린 문제인 만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대통령 선거 3일 전, 한밤의 경찰 수사 결과 발표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초박빙의 대선을 치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경찰이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사건에 대한 긴급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양당 후보의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경에 느닷없이 진행하여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2012년 12월 16일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토론에서 박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도 없는 걸로 나왔다.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문 후보를 쏘아붙였습니다. 이때 문 후보는 "그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고, 지금 발언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출처-민중의소리

그런데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 한밤에 서울 수서경찰서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후보 관련 댓글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박 후보의 토론회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셈이 된 것이죠. 예측을 불허하는 혼전 상황에서 경찰의 이례적인 심야 발표 배경을 놓고 야권은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하는 글을 올린 것과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서 트위터에 수십만 건 이상의 정치·대선 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추후 확인되어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각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는 "대선 당시 경찰이 국정원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밝혔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8.3%가 마음을 바꿔 문재인 후보를 찍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문제점을 잘 정리해놓았으니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의 개그본능


대선을 앞두고 경찰의 깜짝쇼가 인구에 회자하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국정원도 주말 예능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9일 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문제와 관련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발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만 던졌을 뿐이니까요. 개그콘서트와 시청률 경쟁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런 중요한 사과를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일요일 밤에, 그것도 기자들한테만 기습적으로 메일을 보내놓고 넘기려 하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금할 수 없군요.

출처 - MBN
 

국정원은 '발표문' 첫머리에서 "최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힌 뒤 곧바로 해명을 늘어놓았다. 국정원은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있다면 한밤중에 꼼수를 부릴 일이 아니라 책임자인 국정원장 혹은 그 상급자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사과란 진심과 예의를 갖춰서 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국정원의 사과는 꼬리자르기식으로 억지로 꺼낸 비겁한 사과로 보입니다. 여론이 나빠짐을 느껴서일까요, 오로지 종북 타령만 하던 보수 신문과 검찰도 비겁한 급선회에 동참했습니다.

대통령이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마디 하자 검찰은 전격적으로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했고, 보수 신문들은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와 사태의 철저 규명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초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6.4 지방 선거용 말치레라는 관측이 일반적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향후 꼬리자르기 위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조직이 아니며, 현재 드러난 것만 알고 있을 뿐 사건의 실체와 배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며 "국정원이 책임지는 쪽으로 꼬리를 잘라내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 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배후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수사책임자인 검찰에 대한 사법처리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특검 명분을 없애고 선거 앞두고 조기 봉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야당이 공세를 펴기도 어렵게 돼 지방선거 정국이 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며 "정치적으로 과감한 선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 배후와 관련해 박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색깔론 공세를 펴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싹을 자르기 위해 무리하게 하다가 덤터기 쓴 것이다. 검찰의 이런 기세라면 1~2주 안에 처벌대상자와 구속자까지 다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주말 예능식 사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가?

그런데 이런 상황,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이런 주말 예능식 사과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공공기관과 권력자의 잘못을 한 개인에게 떠넘겨 꼬리자르기 하는 대처법은 박근혜 정권의 전매특허인가 봅니다. 세계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치인 윤창중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과도 이와 똑같았으니까요.

출처 - 한겨레21

미국을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하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 바와 자신의 호텔 방에서 성추행했다는 보도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치권 안팎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비서실장이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데 이르렀지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과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어오던 청와대가 주말 오전에 갑자기 사과 입장을 밝힌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날 일간신문들이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사전 공지도 없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건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던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있을 수 있는 '인사참사'에 대한 논란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책임자인 대통령은 뒤로 빠진 채 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청와대 대변인이 주말에 기습적으로 대독했지요. 추후 가시적인 책임자도 후속조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뒤로 머리를 굴리는 사과, 예의가 아닌 꼼수에 불과한 참으로 나쁜 사과의 전형이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잇따른 인사 실패의 결과가 1년 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해 많은 국민이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든가"라고 분노하며 한때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41퍼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이 뽑아준 대표자가 국민을 우습게 보니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소비자 우롱하는 기업의 꼼수 사과도 여전

정치권의 하는 듯 마는 듯한 비겁한 사과 행태가 사업계까지 퍼져나간 걸까요?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는 지난 3월 5일 경찰로부터 3년 전인 2011년 해킹으로 113만 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이를 주말인 7일 저녁에야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직장인들이 다 퇴근하고 주말을 즐기기 바쁜 시간에 은근슬쩍 사과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듭니다.


출처 – 티켓몬스터 홈페이지

더군다나 티몬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광고뿐입니다. 별도의 팝업으로 사과문을 띄우기는커녕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보이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2011년 개인정보 유출 확인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거늘, 국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 국정원, 검찰, 여당, 보수언론이 이렇게 비겁한 작태를 보이는데 일개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들이 한결같이 휠체어 신공을 선보이며 집행유예 코스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큰 기금을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기는 술책에 국민이 하루 이틀 당한 것도 아니지요.

박근혜 정부 내내 각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될 텐데 비겁한 주체들이 앞으로 어떠한 예능감으로 무장하여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줄지 자못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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