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는 1주기 추모식이 지난 지난 5월 28일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 2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에 쫓긴 스무 살이 채 안 된 하청노동자의 유품 가운데에는 컵라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던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 김군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참사가 아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군 사망사고 1년 전 강남역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김군처럼 한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죠.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극도로 인력을 축소한 상태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2인 1조 점검이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와 관련한 기본 근로 조건을 보면, 49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직원은 6명으로 1명당 5개 역을 담당하는 셈입니다. 하나의 역을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두세 시간인데 반해 하루 평균 고장 신고는 40여 건에 달했습니다. 여름철과 겨울처럼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계절에는 최대 하루 200여 건 가량의 신고가 접수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서울시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구의역에서 김군 혼자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고 있을 당시 서울메트로에서는 김군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청사회에서는 힘없는 을들에게 이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갑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시행하는 외주화란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포함하거나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청년 김군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에서 8월까지 서울교통공사 등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 중인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개선했다는 게 고작 고용기간만 연장하고 처우는 비정규직 그대로인 무기계약직이어서,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중규직'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죠.

출처 - 경향신문

 

'위험의 외주화'는 지하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외주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주기 추모 행사가 있던 지난 5월 1일에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망한 작업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고, 중경상을 입은 25명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정규직 근로자가 휴식하는 법정공휴일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죠. 또한 5월 20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변전설비 정기점검을 하던 부산지하철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3명이 감전사고로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가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재난의 현장에 본청의 정규직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출처 - JTBC


첨단산업에 속하는 스마트폰 제조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전자, 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젊은이 6명이 업체의 관리 소홀과 보건 조치 미흡으로 생산공정에서 쓰는 독극물인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시각을 잃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기까지 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20대가 시력을 잃은 것만이 아나라 심한 경우 뇌손상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6월 9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는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이 조사한 국내 대기업들의 인권 침해 현황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유엔 측은 메탄올 피해자 사례와 노조 탄압 등을 언급하며 원청 대기업들이 인권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명의 노동자가 시력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이 본청의 정규직들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요?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별탈 없이 지냈습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건의 경우 크레인 신호수로 일한 1명만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을 뿐 원청업체 관련자에 대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스마트폰 공장 메탄올 실명 사건의 1심 판결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6명이 눈을 잃고 뇌 손상을 입었지만 불법 파견과 메탄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명의 책임이 있는 업체 사장까지 모두 집행유예와 수십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불법 파견사업주들도 집행유예에 끽해야 벌금 100만 원이 다였습니다.

 

6명이 앞을 보지 못하는 채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노동 현실이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기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와 장치를 불합리한 규제라고 우기는 기업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자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근본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외주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원청과 발주자의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이런 내용은 다른 정권에서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하는 노동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실행으로 증명할 때입니다.

 

"조현병 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두도록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한다."


지난 26일 새누리당은 '여성안전 대책 당·정·외부전문가 간담회'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 마련을 논의하며 조현병 환자 전수조사와 인신보호관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과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생각할 법한 대책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그냥 눈에 거슬리는 무언가를 치워서 없애버리겠다는 안이하고도 인권 유린적인 발상 앞에서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출처 - jtbc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 수락산 살인 사건, 부산 길거리 무차별 폭행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1일 여성 안전 종합 대책이란 걸 내놓았죠. CCTV 확충으로 범죄안전 사각지대 해소, 재범 방지, 가해자들의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 정신질환자 치료관리 등의 조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난주 당정회의에서 조현병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던 게 이번 여성 안전 종합 대책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공익인권법재단


'행정입원'은 조현병 환자로 판정되면 경찰이 의사에게 요청해 입원 필요성을 판단 받아 지자체에 입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반대나 인권 문제 가능성 때문에 입원 요청만 할 수 있을 뿐 강제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하고 정부 여당과 보건복지부, 법무부, 심지어 여성부와 국민안전처의 수장들이 모여 결론을 냈으니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경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몰아갔는데, 이제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나서서 정신질환자 혐오로 사건의 본질을 덮어버리려는 형국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인 단체뿐 아니라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환자 치료를 추적까지 하겠다는 대응에 대해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폭압적인 낙인 찍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명수 경기도 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조현병 환자에게 낙인을 찍어 잠재적 범죄자로 보겠다는 발상으로 히틀러 시대 우생학적 접근과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막는 내용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킨다"며 "조현병 환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정책들이 당혹스럽다"고 비판했죠.

 

출처 - 경향신문

 

안 그래도 현대인들은 정신병을 조금씩 가지고 있고 이를 돌보기 위한 정신의학 상담은 선진국에서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면 마치 미쳐서 범죄라도 저지를 정신병자 취급하기 십상입니다. 이번에 새누리당과 정부가 대놓은 대책은 이런 편견을 증폭시켜 조현병 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을 뿐입니다. 더구나 전수조사라니 말이 됩니까?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상담 기록에 얼마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고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되는 기록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상식이 부족해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출처 - 시선뉴스


2011년 다른 곳도 아닌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장애인의 실제 범죄율은 비장애인의 1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란 자료를 봐도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일반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 중 강제 입원은 이미 67.4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10퍼센트대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입니다. 행정입원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강제입원이 횡행한다는 얘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치를 떠셨을 '형제복지원'만 해도 정부가 거리의 부랑자, 장애인들을 강제로 입원시킨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또 그런 짓을 하게 놔두자고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을 다루는 경찰과 정부의 대응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과 혐오 문제를 덮어버리고 책임을 또 다른 약자인 정신질환자에게 돌려 마녀사냥 하는 것으로 덮어버리려는 추악한 짓일 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부와 경찰이 최근 일어나는 사건을 혐오 범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혐오 범죄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 혐오로 인해 이익을 보던 기득권이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약자들이 계속 약자로 밑에서 짓밟히고 있어야 그들이 정당하게 누릴 이익을 기득권이 착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는 비단 여성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위험의 외주화에 노출된 최하위 단계 노동자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4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를 낸 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에 투입됐던 근무자 대부분이 용접 자격증이 없는 일용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고 당시 안전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5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인화성 물질의 증기, 가연성가스 등이 산재해 폭발 또는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통풍 및 환기 등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폭발·화재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경보장치 등을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죠. 법을 어기고 밀폐 공간인 사고 현장에 '환풍기'와 '가스 누출 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음으로써 돈을 버는 이는 과연 누구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안전문 유지 보수 협력업체 정비직원 사망 사건의 경우는 또 어떻습니까? 경찰이 사고 당일 2인 1조로 작업했다는 일지가 조작됐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으나 은성PSD의 작업일지에 2인 1조로 작업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19살 정비직원 김 모 씨가 숨진 결정적 이유가 혼자 작업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건 여전합니다.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보지 못한 건 주변 상황을 알려줄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사고 당일 책임자가 작업일지를 조작했을 가능성은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겠지만, 최하위 단계에 있는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범죄와 사고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일시적인 조치로는 안 됩니다. 사회의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약자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안전을 위한 연대에는 여성, 장애인 등의 경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두에 이야기한 여성 안전 종합 대책 문제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라도 경찰과 정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찍기를 그만두고 치료 지속성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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