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최다 세계기록유산 보유국입니다.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역사로 이어진 듯합니다. 지난 6월 25일 광주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 NGO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달성한 성과이기에 그 의미가 큽니다.

 

최근 정부는 일본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함도로 알려진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의 섬 하시마는 1940년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석탄 채굴에 동원됐다가 100명 이상 숨진 곳이죠. 일본은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리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 왜곡은 어떤 이유로든 허용되어선 안 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나치의 참혹한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진사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신간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의 주인공인 ‘프랑시스코 부아(Francisco Boix)’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마우트하우센의 사진사〉라는 영화를 보실 수 있는데요, 그래픽 노블인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가 원작입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절멸될 수감자들”

1938년 3월 독일 제3제국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지 며칠 후, 새 정권은 오스트리아에 집단수용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한다. 나치 친위대는 포로의 수가 급증할 것을 내다보고 수용소 추가 건설을 고려했다. 동시에 나치 친위대 사령부는 건설자재 산업을 일으킬 계획이었다. 이렇게 친위대는 강제수용소 확장을 정당화하고 수용소 내 활용 가능한 노동력을 독점함으로써 친위대의 재정을 튼실히 하고자 했다.


친위대는 그들의 경제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용소 부지를 물색하는 데 착수하여 마침내 화강암 채석장을 인근에 둔 마우트하우젠(Mauthausen)과 구젠(Gusen)을 낙점했다. 나치 친위대 기업은 독일 제3제국의 화려한 기념물과 건물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수용소 포로들을 동원해 채석하여 공급할 계획이었다.


1938년 8월 8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포로를 태운 첫 기차가 마우트하우젠에 도착했다. 포로들은 자신들이 수감될 수용소 건설을 위해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화강암 채석장 개발과 확장에도 동원되었다. 수감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조건 아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적합한 도구나 작업복조차 받지 못했고, 늘 부족한 음식에 시달려야 했으며,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해 숱한 질병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심각한 사고의 위험 속에서 생존해야 했다. 고된 노역 과정에는 친위대의 끊임없는 폭행이 이어졌다.


1938년 설치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는 1945년 미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약 33만 명이 수감되었으며, 그중 12만 명 이상이 죽었다. 마우트하우젠은 나치에 의해 기획된 절멸수용소(Extermination camp)였다. 이 명칭은 공식적으로 존재한 적은 없으나, 실제 역할은 다른 강제수용소와 명확히 구분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비롯한 6개의 강제수용소는 대량학살을 목적으로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설립했다. 이곳은 범죄 행위에 대해 형벌을 주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전쟁 중 절멸 정책을 일괄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희생자의 시체는 통상 소각 처분 내지 집단 묘지에 묻어 처리했다.
1941년 1월 2일, 당시 나치 독일의 국가보안본부 수장인 하이드리히(Heydrich)는 25개에 달하는 강제수용소를 3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카테고리I 수용소는 나치의 입장에서 개선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다하우, 작센하우젠, 아우슈비츠 등이 그런 곳이었다. 카테고리II 수용소는 부담스럽지만 재교육 가능성이 있는 수감자들을 위한 수용소였다. 부헨발트, 플로센뷔르크, 노엔가메, 비르케노 등이 그런 곳이었다. 카테고리III 수용소는 교화 가능성이 없는 수감자들이 수용되었고, 그들은 노동을 통해 절멸될 운명이었다. 나츠바일러-슈트루토프, 마우트하우젠, 구젠 등이 그런 곳이었다.

 


“나치의 만행을 폭로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프랑시스코 부아”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입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코와 히틀러가 조기에 맺은 동맹을 참작할 때 말이다. 그러나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안티-파시스트 군대가 유럽의 다른 곳보다 일찍 조직된 스페인의 복잡한 실상을 드러낸다.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대항하여 무기를 든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1936년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은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의 지지를 받은 프랑코 장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들은 신속한 귀환을 희망하며 프랑스로 대거 망명했는데, 그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


안전한 피난처로 굳게 믿었던 나라에서 스페인 공화파 망명자들은 자신들을 “달갑지 않은 빨갱이”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프랑스 각지로 흩어져야 했다. 남자들은 프랑스 군대, 외인부대, 보병대대 또는 군사 시설인 외국인 노동자 회사(CTE)로 들어가도록 강요받았다. 공장, 농장, 군사방어 시설의 건설 현장에서 하급 노동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삽과 곡괭이 부대”가 되어갔다. 1940년 5월 독일 부대의 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이런 회사에서 일한 스페인 망명자들이었다. 생존자들은 흩어져 도주하거나 스위스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계속하다가 독일 국방군에 체포되었다. 약 1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비시정부(Vichy政府)는 프랑스 군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포기해버렸다. 스페인 정권도 히틀러와 협상하면서 마찬가지 태도를 취했다. 결국 고국인 스페인으로도, 망명지인 프랑스로도 갈 수 없었던 이들은 대부분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0년 8월 시작된 강제수용은 1944년까지 이어졌다. 대략 1만 명의 공화파 사람들이 공화정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파시즘에 맞서 투쟁했다는 이유로 나치 강제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41년 1월 27일 1506명이라는 가장 큰 이주 대열 속에 한 명의 사진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프랑시스코 부아(Francisco Boix)’다.


초기에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스페인 포로들에게는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수용소 내 주요한 보직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더 좋은 식단과 생존의 기회가 보장된다는 의미였다. 미용사, 음악가, 소목장 등의 직군에서 일하면서 이들은 수용소에서 비교적 오래 존속할 수 있었다. 수용소를 지휘하는 나치 친위대의 입장에서도 이들을 부리는 편이 유용하다고 여겼다. 이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수감자들을 ‘프로미넨텐’이라고 불렀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스페인 수감자들인 동료들에 의해 프로미넨텐으로 연결되었으며, 수용소 내에 있던 신원확인국에서 일하며 필름을 현상하는 일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나치에 의해 은밀하게 작동하는 끔찍한 체계를 목도한다. 프랑시스코는 신원확인국의 책임자였던 파울 릭켄을 도우면서 그가 꾸미고 있는 일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파울 릭켄은 나치 친위대나 카포(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나치의 앞잡이)에 의해 살해된 포로들의 시신을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했다. 때로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죽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시신의 자세를 바꾼 다음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파울 릭켄은 노출, 초점, 구도 등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죽은 사람들을 촬영했다. 그는 단순히 시체의 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마치 자연의 아름다움을 불멸화하는 것처럼, 영상의 구성과 원근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총동원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스페인 수감자들의 지하 레지스탕스 한가운데에서 동지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나치의 범죄행각을 드러내고 나치 최고 수장들을 고발하는 데 증거가 될 필름을 빼돌리려는 은밀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이 계획은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대장정의 출발일 뿐이었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한 인물의 영웅담을 기록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홀로코스트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스페인 생존자들의 운명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픽 노블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화이며, 책의 후반부는 사료를 중심으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의 참혹한 삶을 증언하고 있다.  


프랑시스코 부아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서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빼돌린 필름으로 나치의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수많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 역사적으로 조명되었다. 그의 생생한 증언은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며, 그가 남긴 기록 역시 불멸할 것이다.


 

 

 

▌만든 이들

그림  페드로 J. 콜롬보(Pedro J. COLOMBO)
페드로 콜롬보는 1978년 스페인 그라노예르스(Granollers)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만화 주인공인 스파이더맨(Spider-Man)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은 뒤 자신의 영웅과 최대한 가까운 것(만화)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998~2000년 바르셀로나의 호소 만화 학교(Éole de bande désiné Joso)에서 제9의 예술의 역사와 자신이 그릴 만화의 기본을 공부했다. 동료와 만화가 친구들의 우정과 자기초월의 경향에 힘입어 프랑스의 만화 전문 출판사인 다르고(Dargaud)의 시리즈물인 《셋...그리고 천사(Trois...et l’ange)》 세 권을 그리는 것을 비롯하여 다양한 합작품을 발표함으로써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경력을 다져왔다.
2001년에 배우자이자 자신의 채색 전담이 될 아인차네(Aintzane)를 만났고, 현재 두 사람은 빌바오(Bilbao)에서 살고 있다. 시나리오작가인 살바 루비오와 함께 롱바르 출판사에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를 출간했다.

 

채색  아인차네 란다(Aintzane Landa)
아인차네 란다는 1980년 스페인 바라칼도(Barakaldo)에서 태어났다. 배우자인 만화가 페드로 콜롬보가 그린 작품의 채색을 맡고 있다.
유럽에서 명작 만화인 《마팔다(Mafalda)》, 《탱탱(Tintin)》, 《아스테릭스(Astéix)》를 보며 자랐고, 지금도 손에 잡히는 작품들이면 죄다 읽는다.
그라나다(Granada)에서 페드로와 정착하면서 채색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벨기에와 프랑스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물 채색을 다수 담당했으며, 페드로 곁에서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 채색 작업을 했다.
현재 페드로와 함께 빌바오에 살고 있으며, 여가를 이용해 아미구루미, 수첩, 레터링, 스크랩북 등을 만든다.

 

글  살바 루비오(Salva Rubio)
살바 루비오는 1978년 스페인 마드리드(Madrid)에서 태어났다. 시나리오작가, 작가, 역사가다.
역사물 기획이 전문으로, 스페인작가출판협회(SGAE)가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 ‘Julio Alejandro’의 결승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그의 단편영화 중 하나가 스페인 세자르상에 해당하는 고야상(los Premios Goya) 예선에 진출했다.
마드리드 카를로스Ⅲ대학에서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단편영화뿐 아니라 장편 애니메이션 〈딥(Deep)〉(2017) 등 스페인 소재 영화제작사의 다양한 기획에 참여했다. 작가로서 다양한 창작물과 각색 작품을 발표했으며 서사에 대한 강의도 한다.
《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는 《모네, 빛의 노마드(Monet, Nomade de la lumièe)》에 이어 만화 시나리오작가로서 두 번째로 출간한 그래픽노블이다. 아마추어 화가이자 삽화가이며 여가를 이용해 재즈 트럼펫 연주를 한다.

 

옮김 문박엘리
서울에서 자라 학교를 다녔으며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으며 일반회사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 만물의 연계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옮긴 책으로 《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 《생물의 다양성》이 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한 날, 생각비행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10년 차 초등교사가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집단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 교육계 전반의 무능과 폭력성 등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합리적인 의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이름으로, 교사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숱한 고민의 한 축을 떠안으려 하지 않고서, 산적한 교육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교실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저자가 인기리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보완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10년 차 초등교사의 미스터리 추적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귀담아들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 '보통 사람'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하는 이유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직이라는 직업 자체를 지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 사이에 어떤 특성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교사를 양산하는가?


학창 시절, 교사들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교사 개개인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축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착실하게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된다. 소득 수준, 생활양식, 교양 수준도 평범함에 가깝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딱히 현재의 상황을 뒤엎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도 아니다. 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다 선생으로 학교에 취직하기 때문에 평생 학교가 바라는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양심을 어기는 것'과 '관습을 위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기에는, 너무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 주류의 가치관, 체제의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더욱) 차별, 권위, 폭력에 무감각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의 권위와 폭력은 당연한 것을 넘어 '도덕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거 교사들의 면면은, 그들 딴에는 나름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교사가 비리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풀린다. 즉 당대의 '보통 사람들'인 교사가,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실현해내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를 잘못으로 볼 순 없지만, 사회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이들이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모난 데 없는 성격, 주위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맹목과 무비판으로 이어지는 길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베츠, 베트남에서 500명을 학살한 윌리엄 콜리, 프랑스 공화국의 사형 집행인 아나톨 데블레가 그러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극적인 반전이 학교, 군대, 감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자주 표출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가 가진 극적인 단순함, 폐쇄성, 그리고 권위 때문이다. 군대에는 계급이 있고, 경찰과 교도관들에게는 법의 집행자라는 권위가 주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과거와 달리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변모하긴 했으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사는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시험문제를 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권한으로 지금도 여전히 학생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출처 -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바보 양성소 교대, 이상한 학교의 커리큘럼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예비교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학생들을 내몬다. 이런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넓고 얇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은 실제 교육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의 성취 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교대생이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예비교사가 리코더를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과 초등학교 성취 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내지만,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


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성공적인 핀란드 교육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사 교육'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더라도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 과목 전담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과정을 거친다. 또한 핀란드의 예비 초등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핀란드 교사 양성 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의 예비교사들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니,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 차쯤에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95퍼센트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대생 대부분이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비, 교재비, 자료 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4년을 보낸 학생들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그런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드러난다.


 

▶ 책임지는 교사가 답이다!

 

스스로 고민하는 교사를 만들지 않는 교육,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을 양산하는 교사 양성 과정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이들의 권위에 순응하거나 집단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상한 선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또한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자기 반 교실 문을 굳게 닫고 여간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있는 공개 수업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교사들 간에도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다른 상황의 대화 속에서 혹은 학생들이 전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내 학생, 네 학생을 따져가며 교육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필요하다면 날 선 비판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학교 문화는 이상한 교사들의 횡포에서 학생들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교사들은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교육 당국의 명령에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은 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결부된 인간들이 만든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인간이 만든 환경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기준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증언하듯, 성스러운 장막을 두르고 있던 교실은 그 어떤 곳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난무하던 폭력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있는지 모를 성스러운 장막 따위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교실에 필요한 건 신의 장막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신뢰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선동의 먹이가 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 배움이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화와 재생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김현희 

1982년에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반 대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했다.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2007년 3월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주로 고학년 담임을, 최근 몇 년간은 영어교과 전담을 맡아 일했다.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SickAlien’이라는 닉네임으로 학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한국의 평교사다.

 

 

차례

 

책을 펴내며 | 교사의 책임

 

01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이상한 선생 질량 보존의 법칙 | 내가 만난 이상한 교사

 

02 권력에 취한 교사들
합리적 의심 | 교사의 권력과 권위

 

03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 교사의 적은 누구인가 | 다시, 이상한 교사

 

04 보통 사람들
권위에 순응하는 사람들 | 위험한 보통 사람들

 

05 교직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자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 | 교사의 직업윤리

 

06 관성의 법칙
사례1.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 사례2. 배구, 배구, 배구! | 관성의 법칙

 

07 교사의 적은 학부모?
극성맞은 학부모라는 프레임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교감, 교장도 교육 현장으로 나오라 | 학부모는 교육의 협력자

 

08 교사로 산다는 것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 교사 S와 교사 B | 아둔함과 사악함

 

09 교대는 바보 양성소
예비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커리큘럼 |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10 전교조, 분열이 아닌 확장으로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 | 개혁은 아래로부터 | 학생의 이익은 교사의 이익과 함께한다 | 연대를 위한 물리적 공간 | 받수 받으며 떠나게 하자

 

11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합리적인 판단 능력 성장을 방해하는 도덕 | 감정과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 | 낡고 불완전한 관념을 강요하는 도덕 | 자기계발, 정신승리, 과도한 긍정을 강요하는 도덕 | 현실과 맥락이 없는 공허한 도덕

 

12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 | 도덕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3 급식도 교육이다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와 학교 급식 문제 |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14 관료제 유토피아
무상급식, 복지인가 시혜인가? | 무책임의 윤리, 악마는 디테일 속에 | 마법의 단어: 빨갱이, 종북좌파, 외부세력 | 부실 급식 사태 속 괴물, 관료주의 |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급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15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항상 옳은가? |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 지식 교육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 | 지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 지식은 구속이 아닌 자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