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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버니 샌더스 돌풍, 무엇을 시사하는가?

by 생각비행 2016. 2. 18.
그가 시대를 따라잡은 게 아니라 시대가 그를 따라잡았다. ― 《워싱턴포스트》


헌사에 가까운 이 기사의 주인공은 바로 미 대선을 앞두고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버니 샌더스입니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미미한 지지율에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그가 민주당의 강자 힐러리 클린턴과 자웅을 겨루는 대선 주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현재 박빙의 명승부를 치르는 중입니다. '4전 5기' '대기만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정치 인생 역시 파란만장합니다.

 

출처 - TIME



미 의회의 유일한 사회주의자


'매카시 열풍'이라는 말이 생겨난 나라답게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밝히는 것은 주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에서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공언한 유일한 연방 상원의원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선은커녕 '빨갱이'로 낙인 찍혀 통합진보당 의원처럼 의원직을 빼앗기고 인생을 망쳤을 법한 인물이 미국 대선에 혜성으로 등장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바마케어'에 대해 미국 사회가 보인 히스테리에 가까운 보수성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선 우리나라보다도 더 좌파 정치에 민감한 미국에서 말이죠.


또한 버니 샌더스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대선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25년간 줄곧 무소속 외길 인생을 산 사람이기도 합니다. 상원의원 100명 중 무소속 의원은 버니 샌더스를 포함에 단 둘 뿐이었죠.

 

출처 - AP


버니 샌더스는 대학생 시절 마틴 루서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 참여하고 베트남 반전운동 등 민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뿌리가 될 버몬트 주로 이주 후에는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목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 하기도 했죠. 그런 그가 정치에 뜻을 둔 이유는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자신의 친척들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거로 뽑힌 히틀러와 나치가 세상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가족의 비극을 통해 체험한 그는 정치로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방 2칸짜리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던 그의 경제 상황은 그가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의식에 천착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보수가 지지하는 좌파 시장


1970년대 초 처음으로 뛰어든 지방선거에서 샌더스는 고작 2퍼센트 득표 후 낙선했으나 4전 5기로 도전하여 1981년 불과 10표 차이로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당선되어 본격적 정치 인생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1981년 당시 버몬트 주는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였고, 미국 전체적으론 신자유주의를 세계 만방에 뿌린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론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평생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가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니 보수층이 걱정할 법도 합니다. 당시 UPI통신이 버니 샌더스 시장 당선 기사 제목을 <모든 사람이 겁을 먹었다>로 뽑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그를 시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시의회는 샌더스가 참모 몇 명을 시청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것조차 불허했고, 관료사회는 그의 구상을 좌절시키려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기업인들의 적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출처 - CNN


그런데 샌더스는 이후 4번이나 연속으로 시장에 당선되다가 마지막에는 72퍼센트라는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연방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합니다. 그후 샌더스는 하원의원을 8번이나 하고 상원의원까지 연임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정치 인생을 좌우한 뿌리는 벌링턴 시장 시절 쌓은 업적이었습니다. 무소속이던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어 미국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뛰어들겠다는 포부를 발표한 곳 또한 벌링턴이었죠. 버니 샌더스가 확고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시민을 위한 정치였습니다. 샌더스는 벌링턴의 갑부였던 토니 포멀로가 호숫가에 호화 호텔을 지으려던 계획을 불허했습니다. 그러고는 그곳을 시민을 위한 호수로 바꾸어버렸죠. 또한 시장 직속 예술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으로 하여금 무료로 예술과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한편 서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사업도 벌였습니다. 시예산으로 공공기금을 조성해 토지를 매입하고 서민들이 이곳에 집을 지어 소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드러났듯 서민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주택 매매가 정글 자본주의에 충실했던 미국 사회에서 샌더스의 각종 조처는 혁명적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형 식료품 체인점이 대형 마트를 만들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거부하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의 추진력과 정책이 뒷받침되자 지역 안에서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 서민의 삶이 점차 나아졌습니다. 현재 버몬트 주는 실업률이 가장 낮고 경제가 안정되어 있는 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 단순히 샌더스의 정치적 지향성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호숫가 호텔을 짓지 못하게 된 갑부 토니 포멀로조차 샌더스의 우군이 됩니다.


샌더스는 "정부가 주민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행동하는 사회주의자라는 그의 면모는 현실에서 지지층을 다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생을 지켜온 신념을 현실적 결과물로 만들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미국을 바꾸자


정치에 투신한 후 40년 동안 샌더스의 주장은 한결같습니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과두제 국가인 미국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샌더스는 기괴한 수준의 불평등을 낳고 있는 조작된 경제를 끊임없이 고발해왔습니다. 그리고 대형 금융기관 해체와 조세제도 개혁 등을 통해 1퍼센트 극소수에 편중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뛰어든 샌더스는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을 이 한마디로 압축합니다.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2010년 미국 상원 의사당 연단에 오른 샌더스는 먹지도 앉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은 채 8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연설을 합니다. 이른바 필리버스터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 이뤄진 감세 연장 타협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야합이며 그 야합으로 망가진 부자 감세안 법안을 이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며 샌더스가 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일로 샌더스는 전국적인 유명인으로 떠올랐으며 이 필리버스터 영상을 보기 위해 접속자가 몰려 상원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죠.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새누리당이 기를 쓰고 없애려고 하는 국회선진화법에 필리버스터가 들어 있죠. 한국 기네스 기록은 김대중 대통령의 필리버스터였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으로서 1964년 임시국회에서 자유민주당의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려 5시간 19분 동안 쉬지 않고 발언한 덕분에 임시국회 회기가 마감되면서 체포동의안을 무산시켰습니다. 동료 의원이 박정희 정권하에서 체포되면 왜 안 되는지에 관해 허튼 소리 하나 없이 논리적, 감성적으로 조목조목 짚어내어 그의 연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당시 박정희 정권이 김준연 의원을 체포하려고 날뛴 이유는 한일협상 관련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랄까요, 굴욕적 위안부 합의로 시끄러운 박근혜 정권에 대해 무력한 야당 정치인에 실망한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더 엄혹했던 시절 박정희 정권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던 김대중처럼 소신 있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샌더스가 내세운 공약은 부자 증세, 월스트리트 규제와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확대, 공공기금에 의한 선거 등 양극화에 신음하는 미국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큰 이슈들입니다. 특히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초래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야기한 월스트리트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나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파산하기에 너무 크다면 그들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이다."


이는 대기업 해체에도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고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말을 너무 쉽게 하니까요. 하지만 대기업이 무너져 나라가 무너진다면 그 전에 안전하게 그 기업을 분할해야 합니다.


샌더스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금융권에 쏟아부어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해냈으니 이번에는 월스트리트가 세금을 돌려줄 차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금으로 대학 교육의 무상화를 이루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교육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계층 이동의 가장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70대 할아버지인 샌더스를 지지하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굉장한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후원금 규모도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슈퍼팩 후원을 받는 힐러리 못지 않게 커졌습니다. 샌더스의 후원금은 전체 후원금의 87퍼센트가 250달러 이하의 소액 후원일 정도로 풀뿌리 기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개혁을 천명한 그이기에 슈퍼팩을 거부한 그의 행보는 주목할 만합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은 아이오와 경선에선 패배하긴 했으나 거의 동률을 이뤘고, 뉴햄프셔에선 샌더스가 압도적인 우위로 승리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민의 저항과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버니 샌더스에 대한 비판 지점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예산 확보에 관한 부분입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확률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간접 선거인 미국 선거 시스템상 이미 수많은 연방 의원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의 대선 행보가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버니 샌더스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한 노엄 촘스키 교수는 그 가치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금권선거하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샌더스가 이긴다고 해보자. 그는 혼자일 것이다. 그는 의회 대표자들도, 주지사도, 관료체계 내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백악관의 한 인물이 아니라, 전면적인 폭넓은 정치적 운동이어야 한다. 사실 샌더스 캠페인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캠페인은 이슈를 제기하고, 주류나 민주당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대중의 힘을 동원한다. 만일 대선 후에도 그들이 남아 있다면 가장 긍정적 결과가 될 것이다. 4년씩 선거 때마다 나오는 헛소리라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동원력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 조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 조직, 결국 대중의 힘이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미국 대중은 현재 샌더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나라 진보 정치가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지점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버니 샌더스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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