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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박근혜 정부 3년, 그리고 테러방지법

by 생각비행 2016. 2. 25.

10시간 18분과 5시간 32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시작한 필리버스터의 기록입니다. 1973년 폐지되었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시 도입된 것으로 국회법에 의거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방법입니다. 국회의원 3분의 1의 동의를 받으면 해당 법안에 관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무제한 토론으로 시간을 끌어 국회 회기를 넘기면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점을 노린 방법입니다. 미 대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버니 샌더스도 8시간 넘게 부자 감세에 관한 필리버스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세력이 작은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의 발언 도중에 삿대질을 하며 공천 타령을 하거나 네이버에 '필리버스터 저지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식을 증명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출처 - 한국인터넷언론협동조합


국민을 억압하는 테러방지법을 책상을 두드려 가며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그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덕택에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쓰이게 된 셈인데요,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한편 필리버스터가 올림픽 종목도 아닌데 '기록 경신'에 주목해서 트래픽 끌기에 바쁜 언론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것이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생각비행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테러방지법? 국민 때려잡는 중정부활법이 그 정체!


박근혜 정부 3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대한민국을 휩쓸 정도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을 위한 '성장 제일주의'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제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3년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기사를 보니,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경제성장과 관련된 핵심 키워드가 20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한 공개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 '대한민국' '경제'였습니다. 단어가 합쳐진 결합 키워드로는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경제혁신' 등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평화통일의 연관어는 2013년 '한반도' '신뢰'에서 2014년 '통일준비위원회' '대박'으로 변하다가 2015년 들어서 '이산가족'으로, 2016년에는 '도발' '제재'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최근 언론과 방송 기사는 북한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룹니다. 201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긴장 관계를 극단적으로 조장하는 한편 '안보 위기 프레임'으로 자신의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타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 단기간에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행보와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어서 과거의 행보가 과장된 연출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적인 테러와 북한의 핵 도발 등 '안보 이슈'와 관련된 기사가 판을 치니 당연히 테러방지법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IS가 생기기 전부터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지난 15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에 의한 인권 침해 등의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은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은 이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부여하느냐겠죠. 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원이 권력을 더 많이 얻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테러방지법에 독소 조항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선 이번 테러방지법은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에 한정되어 있던 활동을 국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원칙적으로 국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국외의 정보활동을 통해 안보를 지키는 것이 정보기관인데, 테러를 내국인도 저지를 수 있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테러방지법의 칼끝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요.

 

현재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17조를 보면 테러단체의 수괴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테러방지법이 규정하는 테러의 정의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당시 국민이 적법하고 상식적으로 진행한 시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박근혜 정부라면 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경우 시위단체와 시위주동자를 테러단체와 테러범으로 몰아 극형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유신시대처럼 국민을 공포로 통치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이를 볼 때 테러방지법은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부활을 노리는 법과 다름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테러방지법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형법이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이중처벌을 하는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생길 경우 이중, 삼중의 처벌이 줄을 이을 테니까요. 더구나 필리버스터로 기록을 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의 질문으로 굴욕을 당한 황교안 총리의 사례를 보면 왜 테러방지법이 필요 없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2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라는 기구가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을 포함한 11개 부처가 반기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의장은 다름 아닌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는 그런 기구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자신이 그 기구의 의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미 있는 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런 조직의 장인지조차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테러방지법이 생긴다고 갑자기 유능해지고 대테러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러방지법은 국민감시법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끼워 통과시키려는 감청설비의무화법은 전 국민의 카카오톡과 문자, 통화를 도청, 감청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을 시도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정치 수준이 참으로 저열합니다. 테러방지법과 감청설비의무화법이 통과되면 전 국민은 국가의 감시 속에 사는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누가 엿들을까 봐 조심해야 하는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겁니다. 이는 심각한 헌법 위반이며 인권 침해입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35년 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존재해왔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단독의 테러대책기구를 두어야 하는가?


-합법적인 영장 집행 절차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의 독단적인 판단의 정보 수집을 허가해야 하는가?


-정보통신법에 따라 합법적인 게시물 삭제가 가능한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독단적 판단에 의한 긴급삭제권을 주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무슨 저의로 이미 있는 법과 기구들까지 무시해가며 국정원에 무제한적인 권력을 주려고 하는가?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을 테러방지법 무산으로 연결하자


최근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 테러범의 아이폰을 FBI가 잠금해제 해달라고 애플에 요구한 사건입니다. FBI는 총기 테러를 벌인 뒤 사살된 사예드 파룩이 쓰던 아이폰 5c의 보안 기능을 해제할 수 있는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은 거부했습니다. 사생활 보호가 안보에 우선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때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IT업체들과 인권단체는 일제히 FBI를 비난하며 애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상이 테러범일지라도 국가 정보기관을 위해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경우 선량한 국민의 아이폰도 FBI가 사찰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누리집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라는 장문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애플 코리아 누리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애플 코리아 누리집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나 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느냐는 국민의 지속적인 노력과 권리 행사의 결과로 귀결됩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 행사는 투표입니다. 올해 4월 13일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국민을 사찰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테러방지법에 반대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진보 진영의 당도 있습니다. 시민은 권리와 책임이 있는 주체입니다.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가꿀 책임 있는 존재들입니다. '할 수 없다'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거대 정당 중심으로 짜인 선거판을 뒤집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녹색당

 

출처 -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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