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월요일(4월 8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그대, 강정》 북콘서트가 열렸습니다. 2011년 가을부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뜻을 함께한 작가들이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편지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2000부 가량의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제주 전역에 배포되기도 했는데요, 총 43명의 작가가 쓴 편지글과 제주 강정마을을 오랜 시간 촬영해온 7인의 사진가가 찍은 작품이 한데 엮여 《그대, 강정》(북멘토 출간)이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을 보면 언론이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다루지 않던 시기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연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 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작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그 글에 제주의 아름답고 아픈 사진을 함께 담아 책으로 엮습니다.

2007년 봄에 시작된 제주도 강정 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시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심지어, 2012년 9월에 장하나 국회의원이 찾아낸 해군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요구한 설계 기준에 의해 제주해군기지는 미군 핵 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
2013년 봄, 제주도 강정의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중'입니다.
-《그대, 강정》 날개글 중에서

생각비행은 월요일 저녁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은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최근 해군이 공사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들 조금씩 강정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던 마음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강정앓이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있구나 하고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활동으로 연대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그대, 강정》 북콘서트 공연 모습과 섞어서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와락 꼬마 난타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아이들 공연 모습을 찍지 못했는데요, 와락프로젝트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와락프로젝트 트위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모임인 '와락'의 꼬마들로 구성된 난타팀은 볼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 같습니다. 와락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진행된 난타 수업에 꾸준히 참여했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그려낼 세상이 기대됩니다.

다음으로 배우 곽유평 씨가 유채림 작가님의 글 <태산아, 참극이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겐 신령한 곳이었고, 네게는 장엄하고 광활한 바위벌판이었던 구럼비, 그 구럼비가 지금 무자비하게 박살 나고 있는 걸 아냐. 가증스럽고 미련한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으깨어지고 있는 걸 너는 아냐. 파괴의 이유는 정히 기막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주해군기지라나 미 해군기지라나. 그건 태평양전쟁 당시 히로시마가 어떤 곳이었는지 도대체 모르고서 설레발치는 꼴이다. 히로시마는 일본군의 제2사령부에다 통신센터, 병참기지가 있던 일본 제일의 군항이었다. 일본 제일의 군항이었기에 히로시마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원폭이 도심을 강타하자 무려 16만 6천 명이나 타 죽거나 그을려 죽거나 건물의 잔해에 깔려 죽었다. 제일의 군항이 제일의 과녁이 되어 참극의 도시가 되었다는 얘기다. 해군기지 강정이 강정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 강정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아니겠느냐. 해군기지 강정이 제주를 지켜 주는 게 아니라 제주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경종이 아니겠느냐. 해군기지 강정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절규가 아니겠느냐. 태산아, 그건 참극이다.
-<태산아, 참극이다> 중에서

곽유평 씨에 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만 목소리의 강약, 고저, 장단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내공이 깊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태산아, 참극이다>를 쓴 유채림 작가님은 두리반 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2011년 6월 24일 저녁에 "두리반에서 부르는 제주도 푸른밤"이라는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두리반에 연대하는 분들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마련한 콘서트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픔보다 마을공동체가 깨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는 강정의 상황을 걱정하시던 유채림 작가님을 기억합니다. 콘서트에 참가했던 분들이 두리반의 평화와 강정마을의 평화를 염원하며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너영나영'을 부르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두리반에 평화가 찾아왔듯이, 강정마을에도 속히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음악인 봄눈별 씨의 연주를 배경으로 배우 송은미 씨가 시인 김근 선생님의 글 <지구의 평화를 담은 땅, 여기는 구럼비입니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강정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글과 잔잔한 연주 덕분에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생명의 역사도 하찮을 뿐인데, 그 생명의 역사에 비해서도 정말이지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하찮은가요. 구럼비 해안이 비로소 만들어지고 연산호나 붉은발말똥게 같은 뭇 생명들이 먼저 찾아와 살기 시작한 한참 뒤에야 인간은 가장 늦게 이곳에 도착했을 테니까요.
자연과 생명이 이미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그 조화로움에 기대 여태 살아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한낱 인간이, 그것도 그 공동체에 속해 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앞세워 구럼비 해안에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연산호라면 또 모를까, 붉은발말똥게라면 또 모를까.
-<지구의 평화를 담은 땅, 여기는 구럼비입니다> 중에서
 

다음은 평화활동가 최성희 선생님과 정혜윤 피디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 국제팀에서 평화활동가로 연대하고 계십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1년 전 구럼비 발파 현장으로 달려온 평범한 시민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예술의 힘으로 전쟁 위기를 막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셨습니다.

 

생각비행은 최성희 선생님과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강정마을 영자신문을 리뉴얼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2010년 1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약 6개월간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연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최성희 선생님은 그 당시 해군기지 공사로 바람 잘날 없는 강정마을에서 여러 국제팀원과 소통하며 한 달에 한 번 영자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셨습니다. 강정의 소식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이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 국제팀과 연대하며 만든 영자신문

영자신문의 발행부수는 많지 않았지만 피디에프(PDF)로 만든 영자신문은 전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밖에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열정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2012년 6월 13일 조계사 강정평화캠프에서 최성희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던 '생명평화촛불 시노래 강연회'에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문하신 겁니다. 

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에서 평화 활동을 하던 엔지 젤터(Angie Zelter) 선생님 이야기를 서두에서 들려주셨는데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엔지 젤터가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당시 세 번 체포되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강정마을을 지키는 세계시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엔지 젤터는 항상 지구 깃발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구를 찍은 사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무력의 남용과 끝없는 전쟁이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하며, 진정한 문제는 기후변화, 물과 식량의 부족, 종다양성 감소, 생태계 파괴이며, 전지구적인 협력으로 근본적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하던 평화활동가로서의 발자취를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날 최성희 선생님께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강정마을은 이미 생명평화의 마을로 스스로를 선포했습니다. 이제까지 기지 반대 싸움에서 이런 유래가 없습니다.스스로를 생명평화의 마을로 선포하고,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것은 제주도의 싸움이 그 첫 번째 예가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을 이기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체 투쟁사에서 아주 획기적인 역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모범을 우리가 스스로 세우고 있고 또 그런 생명평화의 섬을 스스로 세움으로써 다른 나라 친구들의 싸움을 어떻게 고무시킬 것인가 하는 아주 중차대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에서는 이후 순서 때문에 최성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길게 들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후 순서는 가수 이지상 씨의 노래 공연이었습니다. 

<탄타오와 문정현>이라는 노래를 2012년 여름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탄타오는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자행한 밀라이 마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듣고 구찌터널 안에서 틈틈이 <밀라이의 아이들>이라는 연작시를 썼다고 합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시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군요."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묻는 이지상 시인의 노랫말이 귀에 맴돕니다. 북콘서트에서 영상을 담지 못해 이지상 씨 블로그에 있는 노래 영상을 연결합니다.


(출처: 이지상 블로그)

 

탄타오와 문정현

                                                                                                    이지상 시, 곡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런 일이 있었다네 밀라이에선 / 하늘과 달빛과 아이들이 뛰노는 들판 위로 / 하나의 총알이 한 아이의 심장에 / 또 하나의 대검이 여인의 가슴팍에 / 그렇게 흘린 피로 강물이 흐르고 / 꽃이 되고 시가 되고 평화가 되고 / 워 워워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렇게 말한다네 베트남시인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 하늘까지 닿는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런 일이 있었다네 제주도에선 / 수만 년 사람과 파도와 바람이 놀던 바위 위로 / 육지경찰 몰려오고 굴착기 포크레인으로 / 사람들을 패대고 바위의 심장을 뚫고 / 군사기지 만들어서 평화를 팔아먹는다네 / 이런 놈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네 / 워 워워 워 워워 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렇게 말한다네 길 위의 신부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발파가 대추리의 함성으로 / 강정의 외침이 용산의 비명으로 / 하늘까지 닿은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 워 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다음 순서는 성미산 공동체 학생들의 공연이었습니다. 구럼비와 맹꽁이를 인격화하여 그들의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숨죽여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마임이스트 이정훈 씨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온 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중덕바다와 구럼비 그리고 뭇 생명체들을 형상화한 듯했습니다. 마임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대, 강정》 글 쓴 작가 두 분과 사진작가 두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하여 강정마을과 연대하시는 분들을 향한 작가들의 마음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오랜 시간 강정마을의 사람들과 대자연의 풍경을 찍어온 두 분 사진작가의 이야기도 정겨웠습니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열정이 없이는 그런 작업을 이어갈 수 없는 법이지요.      

마지막으로 두리반대책위원 유채림, 조약골, 윤성일, 정경섭, 김성섭으로 구성된 밴드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타'의 공연은 담지 못했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북콘서트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정리 정돈을 돕는 분도 계셨고,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책 출간부터 북콘서트 성사와 참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연대의 힘입니다. 《그대, 강정》 추천의 글을 보니 임보라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써놓으셨네요.

"구럼비를 포함한 강정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닌 강정앓이들의 공통분모이다. 그렇기에 43명의 작가들이 쓴 강정을 향한 연애편지는 우리가 이어 가야 할 투쟁의 기록이어서 절절히 가슴에 박힌다. 끝나지 않은 투쟁, 우리가 끝끝내 이어 가야 할 투쟁, 그 투쟁은 온몸을 담아내는 사랑의 바닥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이 연애편지가 그렇다." 

그렇습니다. "그대, 강정"은 우리 모두가 함께 불러야 할 이름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 구럼비에서 다시 평화를 노래할 그날을 기다리며 그대 이름을 부릅니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생각비행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휴가를 제주 강정마을로 다녀왔습니다.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강정평화대행진 행사 준비를 돕고 이틀간 행진에도 참여했습니다. 오늘은 강정평화 대행진 행사가 있기 전 강정마을의 상황과 행사 준비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7월 26일 강정마을에 도착해서 중덕삼거리를 방문했습니다. 공사장 펜스 옆에 우뚝 솟은 망루는 여전했습니다. 송강호 박사를 그린 고길천 화백의 걸개그림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송 박사는 4월 1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연맹의 전국노동자대회 행사 도중, 해군이 설치한 철조망을 넘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4월 3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송강호 박사는 제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수감 125일째를 맞이했습니다. 여태껏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주장하다 많은 이가 구속되거나 벌금형을 받았으나 투쟁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건설 중인 해군기지는 제주의 평화는커녕 국가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며 해군과 정부의 거짓말과 말 바꾸기는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7월 27일 점심때 찍은 사진입니다. 강정마을 곳곳에 강정평화대행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제 행사가 불과 사흘 남았습니다. 강정마을은 이 행사를 잘 치러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두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기독교 단체가 진행하는 '강정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하러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으로 나갔습니다.  

강정천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부자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후 3시, 뙤약볕 아래에서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정에 상주하고 있는 분, 활동가, 지지방문자들이 합심하여 강정의 평화를 노래하고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오후엔 마을회관 한쪽에 모인 각종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분리수거함으로 가져가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종이류가 많아 무겁지는 않지만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은 담당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됩니다. 어떤 분은 식사 준비로, 어떤 분은 행정 업무로, 어떤 분은 청소 등으로... 각자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녁 7시에 강정평화센터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마을주민, 활동가, 지지방문자 등이 평화센터를 가득 메웠습니다. 주민과 지지방문자의 신 나는 노래공연과 발언으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7월 21일 토요일 10시 30분, 천주교 단체에서 생명평화미사를 준비 중입니다. 해군기지 공사단은 해군마저 부정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거짓말을 여전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늘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강정에 평화, 구럼비야 사랑해"라는 구호를 매일 이 자리에서 외치는 문 신부는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의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문 신부에게 위해를 가하는 공사단 관계자의 비열한 행위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용역 한 명이 문 신부의 수염을 잡아 뜯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11시부터 이영찬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해군기지 사업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강정천 옆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으로 경찰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30여 분간 주민과 활동가를 고착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생명평화미사 또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공사단 측이 공사장에서 레미콘 차량이 나올 수 있도록 경찰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겨우 공사차량 10대를 내보내기 위해서 경찰은 생명평화미사를 훼방하고 주민과 활동가를 고착하고 최루액까지 분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해군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 경찰을 규탄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주민과 활동가들이 나서서 종교집회 방해, 최루액 분사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경찰 측에 재발방지를 요구했습니다.

생명평화미사가 재개되어 문정현 신부가 해군기지 공사의 부당성을 성토했고, 이에 동조하는 경찰의 위법행위 또한 비판했습니다.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했던 이영찬 신부는 종교집회를 훼방하고 주민을 고착할 뿐 아니라 최루액마저 분사하는 경찰의 위법적인 행태에 반대하는 뜻으로 풍림콘도 앞에 있는 레미콘에 올라가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 측의 재발방지 약속을 각서로 받고서야 레미콘에서 내려왔습니다. 상식을 저버린 공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에서 바람직한 성직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저녁 촛불문화제는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열렸습니다. 여러 순서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주 강정평화대행진을 알리며 근 한 달간 전국을 순례한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 국토 순례단'이 도착했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단은 전국 24개 도시, 1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일주를 마쳤습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를 알리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땅의 아픔을 공유하기 위해 출발한 자전거 순례단은 서울 쌍용자동차 분향소, 서울 용산참사 남일당 현장, 서울 재능교육 농성장, MBC 언론노조투쟁 현장, 인천 콜트콜텍 사업장, 아산 서해안 걸매리갯벌, 안산 SJM, 여주 4대강 남한강, 홍천 구만리강원도 골프장, 강릉 강원도골프장 농민사망 분향소, 평택 쌍용자동차공장투쟁 현장, 평택 대추리미군기지사업장, 양평 4대강두물머리, 청주 4대강미호천, 부산 한진중공업 투쟁현장, 부산 신고리원전,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 현장, 울산 발레오만도농성 현장, 영덕 신규원전부지, 경주 방폐장, 밀양 원전송전탑 농민분신 보라마을, 청도 원전송전탑 마을노인투쟁 삼평마을, 합천 일본원폭피해 평화마을, 지리산용유담댐, 전주 고속버스투쟁 현장과 연대했습니다.  

순례단 일행 중 최고령인 최종대 씨(77)가 긴 순례를 끝낸 감회를 밝히자 다들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단의 박용성 국장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생명평화의 아픔과 상처의 현장과 연대하면서 국민을 만나 온 순례단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강정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촛불문화제에서 강정마을회는 "강정마을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 2008년 주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밀어붙이기식 사업을 추진하는 데 대해 강정마을은 인권유린 측면에서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지만 기각된 바 있습니다. 그 후 강정마을에서 주민동의 없이 토지 강제수용이 진행되는 일에 관해 진정서를 냈을 때도 기각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강정마을은 2011년부터 해군과 경찰의 인권유린 사태를 목도하며 10월경부터 인권위에 진정서를 수십 건 보냈으나 인권위는 이를 확인조차 하지 않고 신속히 사안을 종결했습니다. 이에 강정마을회는 "현 위원장 체제하의 인권위원회의 방문은 사절하겠다"며 "강정마을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촛불문화제는 신짜꽃밴의 공연,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발언, 부산에서 강정마을을 지지방문한 예술팀의 공연 순서로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화합의 춤마당이 펼쳐졌습니다. 

7월 29일 오후, 강정평화대행진을 하루 앞두고 마을회관에서 행진 때 사용할 깃발을 준비했습니다. 마을주민, 평화활동가, 지지방문자들이 힘을 모아 깃발을 만들고 정리하면서 단합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기독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강정을 방문했던 제주평화순례단이 26일 아침에 남기고 간 현수막을 강정평화센터 실내에 걸었습니다. 많은 청년이 남긴 평화의 메시지가 절절합니다.

마을의례회관으로 이동하니 강정평화대행진 식사 준비를 위해 감자와 양파를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엄청난 양의 감자를 까며 많은 분과 친해졌는데요,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감자와 양파를 까야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생각보다 시간이 덜 들었습니다. 꼬마 친구도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강정에서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남녀노소가 똑같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 행사가 있는 강정포구로 향했습니다.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는 ‘강정 동화 읽는 밤, 치유와 평화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라는 책을 쓴 김선우, 전석순, 이은선, 나미나 씨가 강정마을회에 책을 기증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 책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운동에 뛰어든 마을사람들, 활동가들, 사제들의 투쟁과정을 13살 한별이의 눈으로 담아낸 동화입니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를 입체낭독하는 공연을 마련하여 전야제 참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른들의 대립과 마을의 혼란 속에서 해답을 찾아 나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지난 5년여의 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야제 공연장 뒤편에서 강정평화대행진 스태프들이 참여자들에게 티와 배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입체낭독이 끝나고 나서 인디언수니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가 강정마을에 연대의 뜻을 표했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운영하고 있는 정혜신 박사는 이 자리에 모인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곧 구럼비의 '엄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도 아픔을 치유할 시간과 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출처: 이지상 블로그)

이지상 씨가 <탄타오와 문정현>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블로그에 "전쟁은 사랑의 적이라는 뼈아픈말씀을 남겨준 탄타오 시인. 여전히 아픈다리 이끌고 구럼비로 향하시는 문정현신부님... 부끄럽지만 그냥 한번 봐주십시오"라는 글로 이 노래를 소개했더군요. 가사를 음미하며 들으시면 감동이 배가됩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탄타오는 1968년 하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민족해방전선에 문예전사로 참전했습니다.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자행한 밀라이 마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듣고 구찌터널 안에서 틈틈이 <밀라이의 아이들>이라는 연작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탄타오 시인은 베트남작가협회 최고작품상, 국가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베트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시인, 평론가, 기자 등으로 활동 중입니다.

탄타오와 문정현

                       이지상 시, 곡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그런 일이 있었다네 밀라이에선
하늘과 달빛과 아이들이 뛰노는 들판 위로
하나의 총알이 한 아이의 심장에
또 하나의 대검이 여인의 가슴팍에
그렇게 흘린 피로 강물이 흐르고
꽃이 되고 시가 되고 평화가 되고
워 워워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그렇게 말한다네 베트남시인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하늘까지 닿는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워 워워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그런 일이 있었다네 제주도에선
수만 년 사람과 파도와 바람이 놀던 바위 위로
육지경찰 몰려오고 굴착기 포크레인으로
사람들을 패대고 바위의 심장을 뚫고
군사기지 만들어서 평화를 팔아먹는다네
이런 놈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네
워 워워 워 워워 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그렇게 말한다네 길 위의 신부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구럼비 발파가 대추리의 함성으로
강정의 외침이 용산의 비명으로
하늘까지 닿은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가 없다네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워 워워 워 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이후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 순서는 문정현 신부의 발언, 신짜꽃밴의 공연, 노찾사 문진오 씨의 공연,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환영사로 이어졌습니다.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30일부터부터 본격적인 강정평화대행진이 시작됩니다. 섭씨 30도를 넘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자발적으로 행진하겠다고 찾아온 많은 시민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의 빛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강정평화대행진에는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함세웅 신부, 도법 스님 등 종교계 인사와 소설가 현기영, 시인 김선우 등 문학계 인사는 물론 가수 안치환과 전인권, 영화감독 김조광수, 변영주, 방송인 김미화 등도 함께합니다. 평화대행진 주최 측은 참가자들이 연인원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강정평화대행진 과정에서 찍은 사진을 위주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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