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한 날, 생각비행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10년 차 초등교사가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집단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 교육계 전반의 무능과 폭력성 등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합리적인 의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이름으로, 교사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숱한 고민의 한 축을 떠안으려 하지 않고서, 산적한 교육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교실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저자가 인기리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보완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10년 차 초등교사의 미스터리 추적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귀담아들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 '보통 사람'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하는 이유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직이라는 직업 자체를 지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 사이에 어떤 특성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교사를 양산하는가?


학창 시절, 교사들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교사 개개인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축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착실하게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된다. 소득 수준, 생활양식, 교양 수준도 평범함에 가깝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딱히 현재의 상황을 뒤엎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도 아니다. 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다 선생으로 학교에 취직하기 때문에 평생 학교가 바라는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양심을 어기는 것'과 '관습을 위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기에는, 너무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 주류의 가치관, 체제의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더욱) 차별, 권위, 폭력에 무감각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의 권위와 폭력은 당연한 것을 넘어 '도덕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거 교사들의 면면은, 그들 딴에는 나름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교사가 비리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풀린다. 즉 당대의 '보통 사람들'인 교사가,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실현해내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를 잘못으로 볼 순 없지만, 사회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이들이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모난 데 없는 성격, 주위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맹목과 무비판으로 이어지는 길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베츠, 베트남에서 500명을 학살한 윌리엄 콜리, 프랑스 공화국의 사형 집행인 아나톨 데블레가 그러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극적인 반전이 학교, 군대, 감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자주 표출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가 가진 극적인 단순함, 폐쇄성, 그리고 권위 때문이다. 군대에는 계급이 있고, 경찰과 교도관들에게는 법의 집행자라는 권위가 주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과거와 달리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변모하긴 했으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사는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시험문제를 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권한으로 지금도 여전히 학생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출처 -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바보 양성소 교대, 이상한 학교의 커리큘럼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예비교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학생들을 내몬다. 이런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넓고 얇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은 실제 교육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의 성취 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교대생이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예비교사가 리코더를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과 초등학교 성취 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내지만,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


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성공적인 핀란드 교육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사 교육'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더라도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 과목 전담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과정을 거친다. 또한 핀란드의 예비 초등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핀란드 교사 양성 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의 예비교사들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니,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 차쯤에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95퍼센트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대생 대부분이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비, 교재비, 자료 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4년을 보낸 학생들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그런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드러난다.


 

▶ 책임지는 교사가 답이다!

 

스스로 고민하는 교사를 만들지 않는 교육,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을 양산하는 교사 양성 과정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이들의 권위에 순응하거나 집단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상한 선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또한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자기 반 교실 문을 굳게 닫고 여간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있는 공개 수업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교사들 간에도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다른 상황의 대화 속에서 혹은 학생들이 전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내 학생, 네 학생을 따져가며 교육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필요하다면 날 선 비판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학교 문화는 이상한 교사들의 횡포에서 학생들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교사들은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교육 당국의 명령에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은 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결부된 인간들이 만든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인간이 만든 환경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기준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증언하듯, 성스러운 장막을 두르고 있던 교실은 그 어떤 곳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난무하던 폭력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있는지 모를 성스러운 장막 따위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교실에 필요한 건 신의 장막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신뢰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선동의 먹이가 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 배움이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화와 재생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김현희 

1982년에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반 대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했다.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2007년 3월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주로 고학년 담임을, 최근 몇 년간은 영어교과 전담을 맡아 일했다.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SickAlien’이라는 닉네임으로 학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한국의 평교사다.

 

 

차례

 

책을 펴내며 | 교사의 책임

 

01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이상한 선생 질량 보존의 법칙 | 내가 만난 이상한 교사

 

02 권력에 취한 교사들
합리적 의심 | 교사의 권력과 권위

 

03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 교사의 적은 누구인가 | 다시, 이상한 교사

 

04 보통 사람들
권위에 순응하는 사람들 | 위험한 보통 사람들

 

05 교직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자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 | 교사의 직업윤리

 

06 관성의 법칙
사례1.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 사례2. 배구, 배구, 배구! | 관성의 법칙

 

07 교사의 적은 학부모?
극성맞은 학부모라는 프레임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교감, 교장도 교육 현장으로 나오라 | 학부모는 교육의 협력자

 

08 교사로 산다는 것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 교사 S와 교사 B | 아둔함과 사악함

 

09 교대는 바보 양성소
예비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커리큘럼 |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10 전교조, 분열이 아닌 확장으로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 | 개혁은 아래로부터 | 학생의 이익은 교사의 이익과 함께한다 | 연대를 위한 물리적 공간 | 받수 받으며 떠나게 하자

 

11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합리적인 판단 능력 성장을 방해하는 도덕 | 감정과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 | 낡고 불완전한 관념을 강요하는 도덕 | 자기계발, 정신승리, 과도한 긍정을 강요하는 도덕 | 현실과 맥락이 없는 공허한 도덕

 

12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 | 도덕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3 급식도 교육이다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와 학교 급식 문제 |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14 관료제 유토피아
무상급식, 복지인가 시혜인가? | 무책임의 윤리, 악마는 디테일 속에 | 마법의 단어: 빨갱이, 종북좌파, 외부세력 | 부실 급식 사태 속 괴물, 관료주의 |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급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15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항상 옳은가? |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 지식 교육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 | 지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 지식은 구속이 아닌 자유다

 

"조현병 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두도록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한다."


지난 26일 새누리당은 '여성안전 대책 당·정·외부전문가 간담회'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 마련을 논의하며 조현병 환자 전수조사와 인신보호관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과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생각할 법한 대책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그냥 눈에 거슬리는 무언가를 치워서 없애버리겠다는 안이하고도 인권 유린적인 발상 앞에서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출처 - jtbc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 수락산 살인 사건, 부산 길거리 무차별 폭행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1일 여성 안전 종합 대책이란 걸 내놓았죠. CCTV 확충으로 범죄안전 사각지대 해소, 재범 방지, 가해자들의 처벌 강화, 피해자 지원, 정신질환자 치료관리 등의 조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난주 당정회의에서 조현병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던 게 이번 여성 안전 종합 대책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공익인권법재단


'행정입원'은 조현병 환자로 판정되면 경찰이 의사에게 요청해 입원 필요성을 판단 받아 지자체에 입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의 반대나 인권 문제 가능성 때문에 입원 요청만 할 수 있을 뿐 강제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하고 정부 여당과 보건복지부, 법무부, 심지어 여성부와 국민안전처의 수장들이 모여 결론을 냈으니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경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몰아갔는데, 이제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나서서 정신질환자 혐오로 사건의 본질을 덮어버리려는 형국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인 단체뿐 아니라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환자 치료를 추적까지 하겠다는 대응에 대해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폭압적인 낙인 찍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명수 경기도 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조현병 환자에게 낙인을 찍어 잠재적 범죄자로 보겠다는 발상으로 히틀러 시대 우생학적 접근과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막는 내용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킨다"며 "조현병 환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정책들이 당혹스럽다"고 비판했죠.

 

출처 - 경향신문

 

안 그래도 현대인들은 정신병을 조금씩 가지고 있고 이를 돌보기 위한 정신의학 상담은 선진국에서도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면 마치 미쳐서 범죄라도 저지를 정신병자 취급하기 십상입니다. 이번에 새누리당과 정부가 대놓은 대책은 이런 편견을 증폭시켜 조현병 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을 뿐입니다. 더구나 전수조사라니 말이 됩니까?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상담 기록에 얼마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고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되는 기록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상식이 부족해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출처 - 시선뉴스


2011년 다른 곳도 아닌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장애인의 실제 범죄율은 비장애인의 1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란 자료를 봐도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일반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 중 강제 입원은 이미 67.4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10퍼센트대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입니다. 행정입원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강제입원이 횡행한다는 얘깁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치를 떠셨을 '형제복지원'만 해도 정부가 거리의 부랑자, 장애인들을 강제로 입원시킨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또 그런 짓을 하게 놔두자고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을 다루는 경찰과 정부의 대응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과 혐오 문제를 덮어버리고 책임을 또 다른 약자인 정신질환자에게 돌려 마녀사냥 하는 것으로 덮어버리려는 추악한 짓일 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부와 경찰이 최근 일어나는 사건을 혐오 범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혐오 범죄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 혐오로 인해 이익을 보던 기득권이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약자들이 계속 약자로 밑에서 짓밟히고 있어야 그들이 정당하게 누릴 이익을 기득권이 착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는 비단 여성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위험의 외주화에 노출된 최하위 단계 노동자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4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를 낸 경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에 투입됐던 근무자 대부분이 용접 자격증이 없는 일용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고 당시 안전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5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인화성 물질의 증기, 가연성가스 등이 산재해 폭발 또는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통풍 및 환기 등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폭발·화재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경보장치 등을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죠. 법을 어기고 밀폐 공간인 사고 현장에 '환풍기'와 '가스 누출 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음으로써 돈을 버는 이는 과연 누구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한편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한 안전문 유지 보수 협력업체 정비직원 사망 사건의 경우는 또 어떻습니까? 경찰이 사고 당일 2인 1조로 작업했다는 일지가 조작됐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으나 은성PSD의 작업일지에 2인 1조로 작업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19살 정비직원 김 모 씨가 숨진 결정적 이유가 혼자 작업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건 여전합니다.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보지 못한 건 주변 상황을 알려줄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사고 당일 책임자가 작업일지를 조작했을 가능성은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겠지만, 최하위 단계에 있는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범죄와 사고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일시적인 조치로는 안 됩니다. 사회의 구조 자체를 혁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약자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안전을 위한 연대에는 여성, 장애인 등의 경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두에 이야기한 여성 안전 종합 대책 문제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라도 경찰과 정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찍기를 그만두고 치료 지속성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합니다.

 

우주적 상상력을 과시하며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 인기가 어찌나 많은지 요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며 허니버터칩을 먹는 게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입니다. 오늘은 우주적 상상력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와 달리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을 그려낸 영화 <카트>입니다.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과 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뒤 노조를 결성해 사용자 측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이랜드 리테일 소속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극적으로 재구성했지요. 당시 상암 월드컵경기장역 근처를 지나가 본 분이라면 홈에버 앞에서 연일 벌어지던 파업 투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마트 비정규직의 파업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에 이 영화는 아주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영화 카트의 실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화 카트의 모티브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였습니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고용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 홈에버의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포함해 계열사 근로자의 700여 명을 해고합니다. 이 중에는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근로자도 많았습니다. 이랜드 그룹은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그들의 일을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의 불합리한 조처에 반발하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홈에버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마무리되어 노동자가 계산대로 돌아가기까지 이 사태는 510일이나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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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보호법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는 경우 무기 계약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법으로 보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악용해 노동자를 고용한 뒤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를 일삼는 작태를 보여왔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고용 불안이 본격화된 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 2년인 경우에,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계약 만료 없이 계속 근무하게 되면 입사일로부터 2년이 되는 바로 다음 날부터 더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아닙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상당 기간' 더 근무를 해야만 갱신이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법이 명확하게 '2년'을 정해놨기 때문입니다. 만약 2년이 넘은 며칠 후 회사에서 계약 만료를 통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 해지'가 아니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105쪽

14.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재계약 없이 계속 일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처럼 계약 기간에서 하루만 넘어도 근로자의 신분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탐욕적인 기업들은 기를 쓰고 2년 안에 해고하려고 열을 올리는 이유가 됩니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아는 것이 힘!


영화 <카트>에서 태영이는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따귀를 맞습니다. 태영이의 여자친구가 분을 참지 못하고 편의점 유리문을 깨자 편의점 사장을 포함해 세 명이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급히 경찰서를 찾은 태영이의 엄마(선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그때 태영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억울해서..."


사실 그 심정은 마트에서 파업 중이던 선희가 싸우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라고 하는 소박한 바람뿐이었는데, 이토록 냉혹한 현실과 마주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분기탱천해 편의점 사장한테서 아들의 급료를 기어이 받아낸 선희는 아들에게 돈을 건네며 힘들게 번 돈이니 네가 받아 쓸 권리가 있다고 얘기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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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상황은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노동법을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한테서 이른바 '열정페이'라며 뜯어먹는 나쁜 어른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애초에 억울할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가장 좋겠지만, 당장 현실이 바뀌지는 않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역시 '아는 게 힘'입니다. 노동법을 안다면 아르바이트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쓰셔야 합니다.
 

2.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조항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최저임금'에 모자랄 수 있습니다. 주로 급여 수준이 적은 경비직, 생산직, 일용직, 아르바이트생의 경우에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에 의해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되고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로 이듬해 적용됩니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그 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사용자는 그 차액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82쪽

07. 근로계약서에서 무엇을 살펴봐야 하나요? 중 <근로계약서에 있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들>


근로계약서를 썼더라도 악덕 사장이 네가 서명한 계약서니 지키라고 강요하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에 관한 내용은 잠자코 넘어가지 마세요.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임금으로 지급했다면 사장의 잘못입니다. 아르바이트비와 별도로 법에 따라 처벌받게 할 수도 있으니 당당하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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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어 무심코 넘어가곤 하는데 원래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라면 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급여를 차별할 수 없습니다.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일명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는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정규직과 차별을 둘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이 있다면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하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이때 차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해서 사용자가 차별이 없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353쪽

55. 비정규직이면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해도 월급이 적은 건가요?


다만 이 경우 법적 표현이 미비해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나 노무사 등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빈번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을 때는 가급적 함께 행동하는 편이 좋습니다. 노동위원회에 차별신청을 할 때에는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대표자를 선정해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차별 시정의 문제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정이 됨으로써 혜택을 볼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충분히 논의한 후 신중하게 진행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단독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향후에 있을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고 진행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뭉치면 강하다! 

노동조합이라는 하나의 대안


아이 급식비와 수학여행비를 버는 선희, 싱글맘 혜미, 면접만 50번 넘게 떨어진 취업 준비생 미진, 나이가 들었어도 안락한 생활을 꿈꾸기 힘든 순례... 영화 <카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뭉쳐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 몰랐던 사람들이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노조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영화 <카트>에서처럼 또는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처럼 노사 간 충돌이 생길 때 노동자의 연대를 막는 공권력 행사가 비일비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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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합니다. 불이익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해고, 퇴직 강요, 전보, 대기발령 등 신분적인 불이익 대우가 있고 차별적 승급, 강등, 각종 수당의 차별적 지급 등을 통한 경제적 불이익 대우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불이익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방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노동위원회에 권리를 침해받은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하면 구제명령을 내리는데 구제명령의 내용은 각 신청 취지에 따라 다릅니다.

 

노동조합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정당한' 활동이어야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파업 등) 중에는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현행법 외에는 노동조합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않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취급을 할 수 없고,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근로자나 파견근로자를 통해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1~443쪽

73.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그렇지만 영화 <카트>가 잘 그려내듯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현실에서 무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정권이 정책 차원에서 노조를 핍박하는 경우 더더욱 어렵습니다. 준법투쟁조차 불법으로 낙인을 찍어 기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영화 <카트>에서도 공권력이 투입되어 마트를 점거했던 근로자를 모조리 연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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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투쟁은 겉으로는 파업이나 시간 외 근로 거부나 연차휴가 사용 등 근로자에게 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하거나 작업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행동으로 인해 근로 제공의 양이나 질이 평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 노무 정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파업이나 태업을 하지 않고도 사업 운영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준법투쟁으로 생긴 피해를 본 사용자들은 이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불법쟁의에 대한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해 노동조합의 준법투쟁을 막으려 합니다.


준법투쟁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일단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쟁의행위는 파업, 태업 등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준법투쟁의 불법 여부를 놓고 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해왔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8쪽

77. 준법투쟁이 왜 불법인가요?


 

지난 12월 2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파업노동자 대상 손해배상 청구액 10년 새 9배 증가> 기사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 규모가 10년 전인 2004년 51개 사업장 575억원에서 올해는 17개 사업장 1천691억6천만원으로 대폭 늘었"으며 "2004년에는 사업장당 평균 손배청구액이 평균 11억3천만원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그 규모가 사업장당 99억5천만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파업 한 번 했다가 하나의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배상 규모가 약 100억 원에 달한다니 기가 막힙니다.


근래 정당한 파업에도 기업들이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평생토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기업의 속내가 달리 있겠습니까? 기업의 요구에 불응하는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고 노조의 단합을 와해하려는 심보에 불과하지요. 따라서 기업 차원에서 시도하는 막대한 규모의 배상청구는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미국의 법조계는 기업의 부당한 소송을 조기 각하하거나 약식판단으로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제소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리적 판단을 발전시켰습니다. 2010년 현재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7개 주에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카트>의 마지막 장면(비정규 노동자의 근무 복귀)은 510일을 투쟁한 끝에 노조 지도부가 희생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뤄진 사실입니다.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였던 셈이죠.



'중규직'이라는 웃기고도 슬픈 현실,

연대만이 현실을 변화시킬 원동력!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화보다도 가혹합니다. 며칠 전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신설하겠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보호되고 있는 귀족 노조인 정규직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는 영화 <카트>의 모티브가 된 이랜드 홈에버 사태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정규직 대리인 동준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대부분의 정규직은 나랑 상관없는 비정규직의 일이라며 처음에는 무시합니다. 하지만 곧 사측의 진짜 의도는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정규직까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마트 자체를 팔아넘기려는 속셈임을 알게 되죠. 이로써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정규직들도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칩니다. 사측의 설득에 떠밀려 복직한 직원들과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직원들이 함께 카트를 밀며 사측과 공권력에 맞서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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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문재인 의원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든 참여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와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려는 뜻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법이 시행됐을 때 사용자들이 외주용역이나 사내하청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작태를 막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죠.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키고 이제 정규직마저 망가뜨리려는 이명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과연 문재인 의원처럼 생각을 돌이킬 날이 올까요? 그날이 오게 하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비정규직도, 노동조합도, 파업도 유별나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의 범위를 따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은 민법 제35조(법인의 불법행위능력)를 유추 적용해 불법파업에 대한 노조의 민사적 책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파업의 정당성을 가리는 기준인 파업 주체·목적·방법(수단)·절차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불법파업이 되어 그에 따른 민사적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자들의 권리행사와 노동 삼권을 억압할 목적으로 제기되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리를 마련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하나하나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한 연대만이 현실을 바꿀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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