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친일, 독재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니?

by 생각비행 2016. 11. 29.

박근혜 정부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집필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역시나 집필진 31명 중에 뉴라이트 활동 이력이 있거나 박근혜 정부를 찬양하는 학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의 독단에 의해 만들어진 우편향 교과서라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겁니다.


출처 - 세계일보


교육부는 28일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특설 페이지에 현장검토본을 공개하며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혼이 비정상"인 정부가 "무당에게 홀려" 만든 교과서가 올바르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단 그래도 살펴보기는 해야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 수 있겠죠.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특설 페이지(교육부) : http://www.moe.go.kr/history/real_index.jsp?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북 형태로 전용 웹사이트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에 현장 검토본을 택배로 배포해 한 달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의견을 내려면 공인인증서나 휴대전화, 아이핀 등으로 전용 웹사이트에서 본인 인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참 시대에 뒤떨어진 의견 수렴 방법입니다. 이건 사람들을 귀찮게 만들어 의견을 받지 않겠다는 심보 아니면 비판하는 이의 정체를 낱낱이 파악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닌가 싶군요.


출처 - 세계일보


이번에 공개된 집필진을 살펴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였던 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학자 6명 중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어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역사학자가 쓰지 않은 역사교과서라니 대체 말이 됩니까? 그나마도 현대사를 집필한 학자 6명은 경제, 법, 북한학, 정치외교학, 군사학 전공자들이라 대체 무슨 정신으로 역사교과서를 쓰겠다고 덤벼들었을까 싶은 면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를 위해 역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었나 봅니다. 현대사 집필진 과반인 4명은 뉴라이트 단체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잘살 수 있게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이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자격 미달의 우편향 인사들만으로 집필된 이유는 지난해 국정화 논란 당시 역사학자 대부분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해 집필진이 급조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집필을 거부한 역사교과서라니 감이 딱 오지 않습니까?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필진들이 제대로 된 원고를 쓰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이른바 국정교과서 대필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원래 집필진은 초고본, 개고본, 최종본 총 3번의 원고를 넘기는데 그때마다 심의를 받습니다. 이 심의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맡기 때문에 원래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이 간여할 여지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이 초고를 거의 다시 쓰다시피 수정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죠. 지난해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역사학계가 국정교과서에 부역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자 시간과 인력 풀이 부족해지자 박근혜 정부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집필진을 모았기 때문에 집필진 역량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초고를 받아보니 자기들이 보기에도 도저히 교과서로는 쓸 수 없는 수준의 졸문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시간상 다시 작업할 수도 없으니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이 동원돼 대대적으로 고쳐 쓴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아무리 국정 역사교과서의 저작권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고 하더라도 집필진이 아닌 편집진이 거의 책을 다시 쓰는 수준으로 손을 본 셈입니다. 이럴 거면 집필진은 왜 있고, 심의위원은 왜 있습니까?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정 논란 이전에 교과서 그 자체로서의 질도 떨어진다는 증거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하니 내용은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국정 역사교과서는 건국절 타령으로 현대사를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 대신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대한민국 수립일을 헌법 전문에 기술된 1919년 3월 1일이 아닌 1948년 8월 15일로 왜곡한 겁니다. 이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데요. 그렇게 되면 과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은 면죄부를 받게 되어 친일 행적이 희석됩니다. 1948년 8월 15일 이전에 있던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게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독립운동가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를 위해 싸웠던 게 되고, 친일파들은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에서 부역한 셈이니 대한민국에 죄를 지은 건 아니게 되는 이상한 논리가 생기죠.


출처 - 브릿지경제


이승만, 박정희 역시 지나치게 미화됐습니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 체결의 역사적 의미나 민주화 운동은 경제, 사회 발전 과정에서 국민의 자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표현은 일견 맞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슬쩍 넘기고 사회가 그냥 발전해서 일어난 일인 양 치부하고 있습니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가장 안 좋은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견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으로 학생들을 현혹하지만 실상 뜯어보면 이는 친일파에 대한 면죄부와 독재에 대한 찬양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치 박근혜를 현혹한 최태민, 최순실처럼 말이죠. 참 교활하죠.


출처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 새누리당은 문제를 만들어놓고도 대한민국의 긍지를 일깨우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학계의 권위자들, 전문가, 현장 교사들이 참여해 만든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말입니다. 나라를 말아먹는 철면피들이 지금 같은 시국에서도 참 강심장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야 3당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로 규정하고 국정 역사교과서가 강행될 경우 교육부 장관 해임, 교육부 폐지 등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시민단체들도 하나같이 반헌법적 건국절 사관에 입각해 집필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당장 폐기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완결판 같은 역사교과서이기 때문이죠.


이뿐 아니라 일선 학교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배포해야 할 전국 시도 교육감들도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서울, 경기, 광주, 충북, 경남 등 진보교육감들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공개본에 대해 친일, 독재를 미화했다며 폐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란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한 퇴행적 행위이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주도하는 국정교과서 검토본의 검토 과정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역사교과서는 원칙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검토할 가치도 없다는 거죠. 출판계에서는 국정 교과서를 대체할 대안 교과서를 잇달아 출간하고 있습니다. 현장 교사와 역사학자 등이 모여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판하는 등 역사 교육의 다양성만큼 출판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2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방침을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사실상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며 청와대는 뇌사 상태에 빠졌음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이후 일선 학교에서 국정교과서와 검정, 대안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냐는 조삼모사 같은 제안 정도로 밝혀지긴 했지만, 이 역시 청와대와 조율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교육부를 통제할 힘조차 없는 것이 청와대의 현실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논란이 큰 박근혜 정부 안에서도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고스란히 피해는 학생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수정본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어쨌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미 국민들이 거부했고, 직접적으로는 교육감들이 배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 학생들은 역사교과서 없이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를 혼용하거나 지난 검정 교과서를 쓰면 되지 않나 싶지만, 현재 대통령령에 국정교과서가 있을 때는 국정교과서로만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국정교과서를 무효화하려면 대통령령부터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세계사를 먼저 가르치자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죠.


출처 - 뉴스1


자신들의 치부 가리기와 이권 따먹기에 급급해 무리하게 진행해온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그 동력을 잃고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친일 독재 세력의 생명력은 무척이나 질깁니다. 국정교과서가 실제로 사라지고, 박근혜와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 처벌받는 그 순간까지 신경을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이 미래 역사교과서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