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이은 씨와 함께 <독립, 하셨습니까?>라는 꼭지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 합니다. "꿈을 펼치는 일의 연장선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인터뷰와 문화 리뷰+칼럼이 뒤섞여 모호하지만, 어딘가로부터 독립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랄까. 내가 면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보편에 기대는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라는 기획의도에서 앞으로 어떤 글이 나올지 짐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에 대략 두 명 정도를 인터뷰하여 다양한 문화계 인사가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독립, 하셨습니까?> 꼭지의 기획의도를 풀어낸 글을 싣습니다. 다음 주엔 영화 <조선명탐정> <의뢰인>의 제작자이자 첫 장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감독, 19살 연하의 동성애인과 결혼선언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조광수의 삶을 소개합니다.
2. <동성애와 드라마의 행복한 공존, 김조광수의 영화 두결한장>
흔해빠진 세 개의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넌 꿈이 뭐니?"
"한 해 수입이 얼마나 되시나요?"
"그렇게 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겠어?"
첫째 질문의 유효기간은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는 즈음까지일 것이다. 대체로 20대 중후반, '어른이 되어 자신의 두 발로 서기'를 강요(?)당하는 시기. 이 질문을 더 받지 않게 된 시점을 돌이켜보면, 아마 무언가를 전업(그러니까 풀타임)으로 하게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밥벌이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붓고, 그 대가로 보통의 삶을 영위하고, 또 그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과정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야 하는 굴레'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그 기준이 늘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인데, 늘 묘한 박탈감 혹은 경쟁심이 짝패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질문은 요즘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서) 처음 만났을 때 묻는 말이란다. 선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대놓고 이런 질문을 하거나 받은 적이 없지만 이 질문이 오가는 장면을 떠올릴라치면 시쳇말로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 판에 서로의 외모와 조건(연봉부터 가정환경까지)을 검증한 다음 결혼을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은 도무지 신뢰가 가질 않는다.
사실 셋째 질문은 둘째 질문을 거쳐 결혼에 골인한 이후에도 수시로 들어야 하는데, 다년간 여성들이 주로 보는 잡지에 글을 써온 입장에서 '적어도 남들만큼'이라는 강박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서 극대화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이를 잘 키우는 비법이나 필수품 같은 것들은 맞벌이로 아이를 충분히 돌보지 못하는 양육자의 부채감을 한껏 자극하는데다 돈이 있어야 가능한, 한 꺼풀 벗기면 탐욕스레 벌어진 현금투입기와도 같더란 말이다. 끊임없이 돈을 버는데도 늘 가난하다고 느끼고 자산만큼 빚도 늘어나야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기묘한 세상.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는데 꼭 저래야 하나, 싶었다.
당연한 명제에서 열린 결말으로
어쨌거나 세간의 질문에 동의하거나 적당히 순서를 밟으며 살고 싶지 않았기에 조금씩 다른 선택을 시작했고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내가 유일하게 묻고 또 답하는 질문으로 1번이 남아 있다. 사실 한순간도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 일을 멈추지 않은 것뿐인데.
대학 진학을 계기로 원 가족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갖게 된 지 대략 수년, 어느 때부터 나는 연기를 하고 사람을 만나 글을 썼고, 또 몇 년이 지나니 인권단체의 활동가가 돼 있었으며 언젠가부터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돈 안 되는 일만 하면서도 먹고살 돈은 열심히 벌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고 (사교육 전무에 등록금 대출도 다 갚은 지 오래니 부채감이 없다) 2년마다 이사를 하면서도 내 공간만큼은 꾸려가고 있다.
세상엔 뼛속 깊이 존경할 만한 사람도, 무조건 경멸할 만한 사람도 드물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절감한다.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내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열린 결말에도 익숙해졌다.
세상에 당연한 일만 있는 건 아니더라는 아주 새삼스러운 기분.
새삼 뒤집어보기 시작했는데 크게 위험할 것도 없던데 뭘.
이렇게 나는 다소간 위험한 여자가 되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대체 뭐가 되고 싶은데? 묻는 이들을 위해 대답을 해야겠다. 글쎄, 십 년쯤 후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겠지만 지금 주로 쓰는 인터뷰보단 조금 더 창의적인 작업이었으면 한다. 직접 쓴 글로 연극무대를 꾸미고, 영화작업을 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연기도 계속하고 싶고 그때엔 고료도 (제발 좀!) 올라서 부업으로 가끔 기고하는 것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더 넓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 여전히 옳다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손발을 놀리면서도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몸도 마음도 건강했으면. 사실 이게 거의 전부다. 실은 욕심이 없는 게 아니고 아주 많은 거다!
자본, 가부장제가 쓴 각본 뒤집기
어쨌거나 꿈을 펼치는 일의 연장선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꼭지명은 <독립, 하셨습니까?>. 인터뷰와 문화 리뷰+칼럼이 뒤섞여 모호하지만, 어딘가로부터 독립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랄까. 내가 면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보편에 기대는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뒤집어보는 경험에서부터 사람은 성장하고, 무언가를 보는 안목 또한 길러진다고 믿기에 나는 가능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것이고,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글을 쓸 것이며, 나 역시 그렇게 살 것이다. (드문 가능성이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더 이상 누군가의 불편함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해도 이 글을 시작하는 마음만은 절대 놓지 않으리란 다짐도 더해서.
무가지에 공짜로 안겨주는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니, 평론가라도 되는 양 날카로운 관점이나 전문 지식에 기대기보다는 조금 더 의미가 있고 마음을 울리는 것들에 대해 써보련다. 작지만 소중하거나 더 아름다운 가치에 대해 한 겹의 소박한 포장만 하는 글을 쓰리라. 그것이 읽는 이들에게도 자그마한 공명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이 글이 누군가의 꿈에 밑그림이 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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