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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조장하나?

by 생각비행 2024. 2. 6.

일본 전범기업에 의해 강제동원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 씨가 일본 히타치조센이 2019년 서울고법에 맡긴 보증공탁금 6000만 원을 압류해달라며 제출한 압류 및 추심명령신청서를 받아들였습니다. 피해자 이모 씨의 신청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근거해 히타치조센의 국내 자산인 공탁금 6000만 원을 압류하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히타치조센이 서울중앙지법의 압류 및 추심명령신청 인용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서울고법의 담보 취소 결정에 불복해 항고할 수도 있지만 채무자의 항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 이모 씨가 공탁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법조계에서 보고 있다고 하죠.

 

출처 - KBS

 

1944년 국민징용령에 따라 일본 오사카에 있는 조선소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 이모 씨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피해자가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44년~1945년 후지코시는 군수 공장에 조선인 10대 소녀 1000여 명을 강제동원했습니다. 공부도 할 수 있고 일한 대가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매일 10~12시간의 노동을 했는데도 사실상 임금은 없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낸 지 21년 만에 우리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왔습니다. 후지코시는 강제동원되어 노동했던 여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유족 41명에게 각각 8000만 원에서 1억 원, 그리고 지연 손해금을 더해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후지코시 측에서 배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극히 유감스럽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어 배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출처 - MBC

 

일제강점기 당시 전범기업에 의한 강제동원은 한국 사회에 해결되지 않은 숱한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의 피해자 대법원 배상 판결 같은 고무적인 사례가 나오는가 하면 같은 시기 분통 터지는 판결도 나오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지난 1월 2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이 '위안부는 매춘부' 발언을 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대법원이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한 데 이어 약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출처 - 오마이TV

 

2019년 9월 21일 《프레시안》에 공개된 연세대 사회학과 '발전사회학' 강의 녹취록에 따르면 그달 19일 강의 때 류석춘 (당시) 교수는 "왜 매춘을 했느냐? 살기가 어려워서, 집이 어렵고 본인이 돈을 못 벌고. 지금 그렇다는 것에 동의하죠? 지금은 그런데, 과거에 안 그랬다고 얘기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옛날(일제강점기)에도 그랬다는 거예요.", "매너 좋은 손님들에게 술만 따라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옛날만 그런 게 아니고.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발언했습니다.

 

출처 - MBC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의 발언이 피해자 개개인을 향한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향한 추상적 표현이라면서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해당 발언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류석춘 전 교수의 주장이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출처 - SBS

 

서울서부지법은 류석춘 전 교수가 2019년 당시 강의에서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한 발언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강의에서 류석춘 전 교수는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획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정대협이 끼어들어 와서 할머니들 모아다 교육하는 거다. 정대협 없었으면 그분들 흩어져서 각자 삶을 살았을 거다. 과거 삶을 떠벌리지 않았을 거다. 지금은 일종의 떠벌리는 거다. 텔레비전 나와서 떠들고 있잖아요. 일제가 끝난 직후에는 쥐 죽은 듯이 돌아와서 살던 분들이다. 그런데 정대협이 끼어서 '국가적으로 너희가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의 기억을 새로 포맷했다"라고 말이죠.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에 대해 벌금 200만 원으로 그쳐도 되는 걸까요? 시간을 잠시 되돌려보겠습니다.

 

출처 -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 뉴스1

 

당시 논란을 일으킨 류석춘 교수에 대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들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류 교수가 사과하고, 대학 본부가 류 교수를 파면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정의연은 "연세대학교는 류석춘 교수를 즉각 해임함으로써 실추된 학교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입은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하게 하며, 연세대 학생들이 입었거나 앞으로 입을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4년 만에 나온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판결했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까요? 과연 정의로운 판결입니까?  


출처 - MBC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범국 일본, 대만,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피해자가 발생한 끔찍한 전쟁 범죄였습니다. 그런데도 류석춘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주장해왔죠. 

 

출처 - MBC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월 24일 1심 판결에서 류석춘 전 교수에 대해 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선고하면서 헌법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볼 때, 교수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류석춘 전 교수의 전쟁 범죄 미화 발언이 학문의 자유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류석춘 전 교수가 학자적 소양을 갖추고서 저런 망언을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고요.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요 시위 때마다 엄청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발언이 한국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판결이 4건 있었는데 모두 피해 사실이 인정됐고 한국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이 이미 법적 판단을 내린 '법적 사실'을 고정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라 무죄 판결을 한 것은 모순"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현대사 문제는 역사 왜곡 발언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많아 사실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당사자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표현을 학문의 자유라고 재판부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진보당 박태훈 부대변인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이야기했던 류석춘 전 교수가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금도 아홉 분의 피해자가 살아서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와 고통을 무시한 판결이다. 일본 정부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한 류 교수의 발언을 재판부가 용납해선 안 됐다. 정금영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학문의 자유를 지킨 게 아니라, 조직적이고 악랄한 2차 가해에 동참하고 힘을 실어준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판결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당장 오늘 류 전 교수가 집회를 열고 '사법부가 내 주장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면서 "수요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혐오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고 하죠. 이런 류 전 교수의 행보를 가만히 둬도 괜찮은 걸까요? 지난 1월 30일 서울 서부지검은 류 전 교수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1심 법원은 류 전 교수의 발언이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자유 및 교수의 자유에 해당되고, 정치적 의견 표명에 불과해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면서도 "발언 내용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에 반한 점, 헌법상 보호되는 학문의 자유도 일정한 한계가 있는 점, 단순한 의견표명이 아니라 사실적시에 해당하는 점 등 여러 견해가 있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히고 "1심 법원의 법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봐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고, 유죄로 판단한 부분에 대한 선고형도 너무 낮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류석춘 전 교수의 망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숱한 상처를 주었습니다. 법정에 섰을 때 그는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 말한 것은 '단순 의견 표명'이었다"는 식으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심 판결이 나온 뒤에는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2차 가해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이 늘어지면서 2020년 1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해 사학연금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연세대에서 '정직 1개월'에 해당하는 징계, 그리고 정년퇴직 교수에게 흔히 주어지는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받지 못한 것 외에는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망언을 일삼는 이에 대한 사법적 징계와 역사적 심판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시민들이 눈과 귀를 열고 류석춘 전 교수가 어떠한 망언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하고 끝까지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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