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죽이는 한기총 전광훈, 기독교계가 '목레기'를 좌시해선 안 된다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 하고 친하단 말이야. 친해."

 

출처 - JTBC


술에 취한 아저씨나 조폭이나 할 법한 말투입니다. 내가 누군 줄 아냐고 큰소리치거나 내가 누구누구랑 가까운 사이니 알아서 모시라는 얘기니까요. 술집에서도 이런 고성방가를 하면 눈총을 받아 자리를 떠야 할 텐데 전광훈은 자칭 '목사'라면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이런 소릴 지껄였습니다. 이런 작자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이 막말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일파만파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라도 사람들 많은 곳에선 함부로 하지 않을 소리를 명색이 목사라는 자가 신도들을 모아 놓고 자기네가 믿는 신을 향해 까불면 죽는다고 떠드는 게 말이 됩니까? 언어도단도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전광훈은 자기모순을 넘어 신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계에선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자기네가 믿는 전지전능하고 영원불멸한 하나님을 까불면 죽이겠다는 신성모독 발언을 목사라는 작자가 했다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이거나 헛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이거나. 누가 봐도 전광훈은 '사이비'요, '목사 쓰레기'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애초 전광훈은 참된 영성이나 삶에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가 아닌 막말로 유명해진 사람이었습니다. 여자 빤스 운운하는 막말을 설교랍시고 내뱉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위의 막말을 수시로 하는 파렴치한입니다. 최근에는 태극기 부대와 함께 광화문에 몰려다니며 문재인 정권을 좌파로 규정하며 막말을 쏟아내어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광훈은 이미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자신의 광신도들에게 특정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단체 문자 메시지를 대량 발송한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그는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자신의 광신도들과 광화문에서 난동을 부리는 집회에서 헌금이란 명목으로 참석자들에게 돈을 걷었고, 명예훼손을 넘어 내란선동의 혐의가 있는 극단적인 발언을 마구 쏟아내 경찰로부터 수차례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이조차 무시해왔습니다. 자기가 믿는 신마저 무시하는 작자라 그런지 세속 권력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가 봅니다. 이제 남은 행보는 자신이 신이라고 밝히는 것뿐이겠군요.


출처 - 뉴시스


그런 전광훈이 지난 12일 5차례 소환한 끝에 경찰에 출두했습니다. 본인 말로는 조사받을 가치가 없어서 그동안 안 왔답니다. 거짓입니다. 계속 소환에 불응하자 경찰이 출국금지까지 걸으니 아차 싶어서 나온 겁니다.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전광훈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규 위반, 내란선동죄 등의 혐의에 대해 12시간에 걸쳐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전광훈이 나오자 기자들이 폭력시위 주도한 혐의를 인정하느냐, 순국결사대 조직에 관여했느냐, 불법헌금 걷은 것을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전광훈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헛소리가 아닌 진실과 관련된 말을 하려니 입이 열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극우 성향 광신도 30여 명이 모여 기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전광훈을 호위하느라 아비규환이었다고 하죠.


출처 - JTBC


기독교계에서도 전광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습니다. 교회개혁연대는 전광훈의 발언이 과대망상과 만용의 극치이며 목사라고도 볼 수 없는 한국교회의 수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는 전광훈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계가 최소한 전광훈의 헛소리라도 막고자 했다면 한기총 회장직을 맡지 못하게 해야 했고,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막말을 내뱉은 시점에 기독교 주요 교단이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이고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고 있죠. 극우 목사들이 설치는 바람에 누더기가 된 채 통과됐던 종교인 과세는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2018년 1월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됐지만 종교인이 낸 세금은 소득의 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금 부담이 일반 직장인의 5분의 1도 안 되는 겁니다. 대형교회를 제외하면 종교인의 벌이가 높지 않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세 부담이 너무 낮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월급이 200만 원인 직장인이 평균 12만 원을 세금으로 내는데 반해 종교인은 달랑 2만 원만 내는 셈입니다. 연말정산까지 거치고 나면 종교인들의 최종적인 실효세율은 0%대로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종교인 세 부담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당시 국회가 특혜를 줬기 때문입니다. 2017년 종교인 과세 제도 도입 시 종교 활동을 위한 종교활동비는 비과세한다는 내용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종교활동비를 종교 단체가 스스로 책정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월급 200만 원 중 190만 원을 종교활동비라고 주장한다면 세무 당국은 그저 10만 원에 대해서만 과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과세소득을 납세자 스스로 결정하는 곳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월급쟁이들이 자기 월급 중 10만 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겠다고 한다면 받아줄 겁니까? 그런데 국회는 종교인 특혜에 그치지 않고 종교인의 퇴직소득에 특혜를 주는 법안까지 추진 중이라고 하죠.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종교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게 바로 정치와 종교의 야합 아니겠습니까?

 

출처 - 한겨레

 

한국 교회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을 모욕하고, 유족의 아픔을 나누려는 국민을 비하하고 추모의 마음을 왜곡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기총 부회장인 조광작 목사는 세월호 사고 당시 임원회의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문제의 발언은 홍재철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 부응하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전통시장 방문행사를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가도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묻자, 조 목사가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하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모욕한 발언이어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출처 - 4.16연대

 

한편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세월호 사고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에 있는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세미나 참석해 "여러분 아시지만 한국은요. 이번에 정몽준씨 아들이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미개하다'고 했잖아요. 사실 잘못된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세월호 참사 직후 주일예배 설교에서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에요. 나라를 침몰하려 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아이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요사이 우리가 세월호 때문에 해경 때문이다, 청와대 때문이다, 해수부 때문이다, 안전부, 방송 비판 안 하는 데가 없다"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처럼 신의 뜻을 왜곡하고 어지럽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왜 일부 기독교인이 세월호 참사를 신의 섭리로 이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내가 가르치는 어떤 과목 과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을 읽다가 또다시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학생들이 읽은 책 가운데 하나는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였다. 한국전쟁이 일반 민중에게 가져다준 고통에 대한 실증적이고 사회학적인 분석인데, 전쟁의 비극과 후유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저술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남북 양쪽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되었던 잔인한 학살행위, 자기 국민을 버리거나 죽인 정부의 무책임,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는 전시체제와 그 악영향 등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언급하며 한국전쟁을 역사적으로 성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몇 학생은 그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한 것에 대한 벌이다,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어 남한이 반공국가가 되게 했다, 혹은 왜 하나님이 전쟁을 일으켰는지 잘 모르지만 전쟁이 당시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했기 때문에 일으켰을 것이다, 라는 식의 논리였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 나는 이런 해괴한 논리가 일부 교수와 목사들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피력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기가 막혀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은 사건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해일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 그리고 역사 속의 온갖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신학대학 교수는 출간된 논문을 통해 임진왜란이 조선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버젓이 주장했다. 그런 글을 학술 논문이라고 쓴 사람이나, 그것을 심사하여 통과시킨 심사자들이나, 세상에는 참으로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것이 맞는가 싶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략)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직후 나는 ‘참회록’을 하나 썼다. 거기서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번 사고로 희생당한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 특히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저는 모든 가치관이 마비되는 충격을 느낍니다. 이 개명천지에서 어떻게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저의 이성과 학식은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못합니다.” 살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일,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한다. 그것이 내 한계이고, 나아가 인간의 한계이리라. 모든 일이 의미 있을 수 없다. 의미 없는 일은 의미 없는 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필요하다.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일에 억지로 의미를 갖다 붙이다 보면 위에 언급한 목사처럼 되기에 십상이다. 인간이 벌인 일에 신을 끌어들이고, 자기 생각을 신의 뜻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뒤얽힌 문제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욕심과 어떤 어리석음이 얽혀 있는지 밝히면 된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는가보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지가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창래의 소설 어딘가에서 읽은 대목이다. 이해할 수 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불편과 두려움 없이 살겠는가.

_류대영,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세월호〉 중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정말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희망의 씨앗이 되길 원한다면, 자신들이 믿는 신의 뜻마저 왜곡하며 막말을 일삼는 자들을 신속히 퇴출해야 합니다. 종교인 과세 문제도 일반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근로소득으로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기득권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현실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종교인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달라고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를 신에게 떠넘기는 것이어선 안 됩니다. 신이 얘기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신이 이루려고 하는 뜻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것이 종교인의 기도여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에 참여하고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요?

댓글(4)

  • 2019.12.18 13:16 신고

    이런 일부 목사들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교로 비아냥을 받고 있습니다.
    언급하셨지만 문제는 기독교 내에서의 자정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심각하게 보입니다.
    사실 신이 된 목사들이 한둘이 아닌데.....
    빛과 소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표어이지 싶습니다.

    • 2019.12.19 16:15 신고

      예수가 삶으로 가르친 복음은 철저히 현실 지향적이었으나 어느 순간 기독교는 내세 지향적인 종교로 변모해버렸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차별에 저항할 때, 평화를 지향할 때, 반자본주의적인 삶을 살아낼 때, 창조 세계를 이 땅의 원리로 만들려 할 때 예수는 이 땅에 현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 성명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 2019.12.18 14:56 신고

    구구절절 동감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목사들....

    • 2019.12.19 16:20 신고

      예수는 인간이 쌓아온 형식적 구조와 가식적인 체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형식적인 제사보다 가장 작은 자에게 베푸는 자비야말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 받으시는 제사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실존하는 세계로 만들었던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제자도를 실천하여 가치의 전복, 인식의 전환을 이뤄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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