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레길10

《오동명의 바다소풍 17》모슬포구 바닷가 3층짜리 수협 건물 옥상에 올랐다. 모슬포, 동네 이름이 생긴 유래처럼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사람이 살기에는 몹쓸 곳인가. 건물은 모두 시멘트로 단단해 보이지만 오로지 바람만을 막기 위해 지어진 창고 같아 도대체가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았고 바다의 정취, 시골의 정경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멀리 보이는 오름의 젖가슴같이 부드러운 능선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시멘트 인공물에 얹어진 오름 지붕은 싸구려 브래지어가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빨랫줄에 부끄럼 없이 널브러져 있는 느낌이다. 마침 섬에서 섬으로 들어오는 배가 있었다. 마라도나 가파도에서 떠나왔을 배에 내가 타고 있었다. 그 배는 여객선이 아니었다. 나무들로 얼기설기 묶어 바다에 뜰 수 있을 정도의 배, 테우1)였다... 2011. 8. 22.
《오동명의 바다소풍 16》인심(人心)으로 나는 여름 바다로 가려면 올레길을 지나야 합니다. 바다에 닿기 전에 먼저 만나는 사람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오후, 동네 어귀 팽나무 아래 정자에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동생과 더위를 나고 있습니다. 아이들 곁에는 진짜 옛 장군이 들었을 법한 창과 방패를 지닌 장수풍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장수풍뎅이여서 모조품이 아닐까 싶어 물었습니다. “어디서……?” 밭에서 따온 마늘을 다듬고 있던 아이들 엄마가 마늘을 든 손으로 가리킵니다. 뒷산, 오름입니다. 그곳엔 많다는 얘기인 듯합니다. 바다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동구(洞口) 정자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들과 놉니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힙니다. 가려던 바다를 잊고 마시던 커피를 펜에 찍어 아이들을 그려봅니다. 바다에서 건너왔을까. 오름에서 내려왔.. 2011. 7. 25.
《오동명의 바다소풍 15》이제 쉬어, 이제 가자 이튿날 아침 바다산책 때 어제 본 무동연인을 같은 바닷가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오래 전 갓난 아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고 들어주던 장난을 이번엔 그들이 바닷가에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두 달 전 서울에 올라가서 중간고사 준비하느라 애쓰고 있는 다 큰 아들을 들어 안아주려 했더니, 피하더군요. “남세스럽게….” 허락했다 해도 아마 들어주지 못했을 겁니다. 몸무게는 나만 못하지만 머리 하나는 더 크게 훌쩍 자란 아들을 이 짧은 팔로는 이젠 들 순 없을 테니까요. 젊은 연인이 부러워서 다시 어제처럼 힐끔 남상거립니다. 그들의 시간이 한없이 부러워서 또 어제처럼 힐끗 기웃거립니다. 지난 시간들, 지나가버린 것들을 힐끔거리고 힐끗거리는 거겠지요. 쉬라는 여자의 말이 들려옵니다. 땅에 발을 딛는 여자의 몸이 불편.. 2011. 7. 12.
《오동명의 바다소풍 14》지금 사랑 20대 청년들입니다. 목말을 태워 바닷가를 하나가 되어 걷고 있습니다. 무동(舞童)이 된 여자가 말이 되어준 남자를 내려다봅니다. 남자 역시 올려다봅니다. 내려다보면 우러르고, 올려다보면 아우르니, 저렇게도 쳐다볼 수 있구나 하며 부러웠습니다. 언제 한번 목말을 태워준 여자가 있었나? 아들 외엔 없으니 한 명도 없는 셈이지요. 바라만 보아도 좋은 까닭은 하나가 됨을 보기 때문이겠지요. 삭막하게 살아온 지난 시간이 그들의 목말로 더듬어집니다. 지금 그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무동을 얻게 된다 해도, 이제 목말을 태워줄 힘이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엔 다 제 시간이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금지금 걸맞은 지금 사랑은 무얼까? 사랑이 때를 놓치지는 않을 겁니다. 마음이 놓치고 마는 거겠지요. 2011. 7. 8.
《오동명의 바다소풍 13》삼나무 찻상에 깃든 바다 바다만 바라보다 보면 그 속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속이 더 보이듯이요.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 옳지만은 않습니다. 바닷속도, 사람 속도. 날치(물 위로 나니 이렇게 부릅니다. 날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동네 바닷사람은 주둥이가 뾰족한 학꽁치라고 합니다)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물을 박차고 오르려면 힘이 꽤 들 텐데도 거푸 날며 물속을 이동합니다. 노는 걸 겁니다. 굳이 필요 없을 듯한 유영을 하는 새들처럼요. 먹이를 찾으려고 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건 새들로부터 오래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아마 물고기도 그럴 겁니다. 날아오른 물고기 한 마리를 쫓아 눈으로 따라갑니다. 앞으로만이 아닌 동근 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물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 것 같진 않으니 분명 노는 것,.. 2011. 7. 2.
《오동명의 바다소풍 12》보말죽 한 그릇 5월의 제주도 바닷가엔 보말이 아주 통통합니다. 6월이 되면 또 고메기가 한창입니다. 보말이나 고메기는 아마도 바다 다슬기 종류일 겁니다. 보말이나 고메기로 죽을 쒀 먹으면 맛이 특이하고도 맛이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5, 6월의 제주도 사람들은 바닷가 검은 돌에 붙어사는 보말이나 고메기 따는 일이 부업입니다. 부업으로 끼니를 대신할 때도 있습니다. 죽이라도 배가 든든하거든요. 이들의 간식 같기도 한 보말죽이나 고메기죽이 가끔은 제주도로 옮겨와 사는 외지인에게도 한 그릇 담겨 옵니다. 제주도 이웃인심이지요. 한 그릇의 인심이 참으로 그득합니다. 바닷가의 한 펜션에 머물던 관광객들이 바다로 나와 보말을 채집하고 있습니다. 예, 보고 있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채집 같습니다. 마치 학교에 도로 내야.. 2011.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