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도입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드디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의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합헌 4, 위헌 4, 각하 1로 나온 합헌 결정이었죠. 하지만 합헌과 위헌이 드디어 동률을 이루었다는 성과와 별도로 2004년과 2011년의 결정에서 진일보한 점이 있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헌재는 병역법이 헌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헌법불합치가 6, 각하가 3이었죠. 이번 위헌 심판 사건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른 입영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볼 것인지가 쟁점이었는데요, 헌재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면서도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법조항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도기적 판단을 내린 듯합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현재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이 지나도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군대나 감옥이냐의 기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처벌조항 자체는 병역자원 확보와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고자 한 것이니 적합한 수단이라고 보면서도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위반이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임을 인정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습니다. 

 

헌재는 병역법 5조에 규정된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갈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포함하도록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고 판시했습니다. 이전까지 헌재의 판단은 7대 2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던 걸 생각하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것이죠.


출처 - 뉴시스


대체복무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혹은 개인적 신념 등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사회복지 또는 사회공익 등 분야에서 활동하는 방식으로 복무를 대체하게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2005년 이래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에서도 노무현 정권 기간인 2007년 대체복무제 시행 추진 방안을 내놓고 2009년 시행이 목표인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2008년에 이를 철회했던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계 곳곳에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하며 대체복무도 같이 사라졌지만 그전까지는 재활센터, 유치원, 요양원 등 공공복지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시행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거나 재난 발생 시 긴급 대처가 필요한 분야 등에 투입되었죠. 대만은 꽤 광범위한 분야에서 대체복무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소방 등 사회치안 분야에서 일하거나 병원, 양로원, 요양시설 등의 시설에서 봉사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교정 시설이나 화학 연구 등 교육 봉사부터 화재 방지, 공공건물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합니다. 

 

그리스에서는 대체복무자가 우체국이나 법원 등 행정기관에서 근무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스위스 등은 출퇴근이 원칙이지만 대만은 합숙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대체복무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현역 군복무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대체로 대체복무 기간을 더 길게 잡습니다. 보통 1.5~2배 정도 기간을 복무하게 하는데요, 현역 복무 중인 사람이라도 신념이나 종교적인 변화로 인해 대체복무를 신청하면 대체가 가능합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유튜브


징병제와 군대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 상황을 볼 때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두고 상당한 사회적 진통이 예상됩니다. 일단 국방부는 24시간 급접보호가 필요한 치매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수발과 같이 사회복무자 배치 분야 중 난도가 가장 높은 분야를 제시합니다. 한센, 결핵, 정신병원 등 국립 특수병원과 노인전문요양시설 200여 곳 등에 출퇴근 없이 해당 복무 시설에 합숙하면서 현역보다 두 배 정도 오래 복무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안되곤 합니다. 

 

하지만 인권적인 측면에선 이에 대해 다른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UN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를 도입하되 징벌적 성격이 아닌 비전투적 성격이어야 하고 공익적이어야 한다고 결의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간을 마치 징벌이라도 되는 양 무작정 길게만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과거 대한민국 안보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북한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국으로 규정하고 비정상적인 냉전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전쟁 위협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국방비로 쏟아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안보 논리는 필요 이상으로 남북의 군사적 대립을 조장했고, 때때로 무력 충돌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무력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평화는 안보/평화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평화와 안보는 상호보완적이고 병행적인 관계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평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대한민국이 남북 간 갈등 국면을 넘어 통일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무력은  결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고, 평화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국민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뉴시스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 혼돈의 시간이 있긴 하겠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수감되기보다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비전투적인 방식으로 수행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로 볼 때도 그편이 훨씬 이득일 겁니다. 경직된 군대 문화에 젖은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때입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