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X의 세상 읽기] 세월호, 그날의 기록

세월호, 그날의 기록

 

 

1.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결단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권력이 풀어놓은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민낯을 드러낸 참사였다.

 

2.
세월호 하면 떠오르는 숱한 잔상이 있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선령 규제 완화, 더 많은 화물을 싣고 승객을 태우기 위한 선박 개조와 증축, 안전 규제 완화와 철폐, 승무원의 비정규직화, 사고 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명벌, 승객보다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이해할 수 없는 해경의 구조 방식, 수백 명의 승객이 남아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구조에 힘쓰지 않은 이유, 세월호 침몰 후 수색 작전에서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했던 잠수업체 언딘과 해경의 모호한 유착 관계,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에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위한 의전 통화나 청와대의 요구를 들어주기 바빴던 119상황실과 해경의 업무 태도, 사고 초기 인명 수색 과정에서 드러난 재난구조 체계의 총체적 부실과 문제점,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며 책임 면피에 급급했던 정부와 대통령, ‘정피아’ ‘해피아’ ‘관피아’로 통칭되는 이권을 매개로 한 유착 관계, 세월호와 국정원 간의 드러나지 않은 의문의 관계, 유병언만 잡으면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던 권력의 앞잡이들이 펼친 술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대통령의 잘못과 행적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국가 시스템, 이 모든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받아쓰기한 것도 모자라 진실을 감추는 데 일조한 언론과 방송의 저급한 보도 행태…, 더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3.
진실을 감추는 숱한 잔상에 의해 삶의 바탕이 무너져 하루하루 지쳐가던 그때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 정국, 4.13 총선 이슈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던 시기였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드러낸 숱한 사실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가? 그렇다면 세월호에서 승객들에 의해 구조된 5살 권 양이 훗날 ‘그런데 왜 구조하지 못했나요?’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끝난 기록이 아니라 진행형인 기록이며 우리의 몫이 남아 있다.

 

 

4.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그해 추석 때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을 곱씹어 읽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의 의미를 묵상할 기회가 있었다. 프리모 레비는 나치에 의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한 당사자였음에도 평생토록 자신이 ‘구조된 자’라는 사실에 힘겨워했다. 그가 짊어지고 살았을 죄책감의 실체를 세월호 참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경솔한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가 무죄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얼마나 깊이 마음 아파했던가를 반성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5.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순간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 지냈던가? 정부를 비판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질타하고, 사회적 연대에 힘을 쏟지 않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희생된 분들이 겪었을 죽음에 대한 공포, 상실감, 고통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한 나 자신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화해의 제자도》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기독교적 희망을 배우는 것은 결과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또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사람들과 가까이할 때 우리의 소명은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그 만남에서 오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는데, 참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대목이었다.

 

6.
세월호 사건과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고 세상의 참상을 정직하게 보고 대면하도록 요구한다. 아울러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짜놓은 생존경쟁의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이에 대해 일찍이 답을 내놓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7.
아픈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요, 고통받는 사람들이 우주의 중심이다.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중심, 우주의 중심이 될 존재들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 1011일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다짐했으면 한다. 무죄함의 의식에서 벗어나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 세월호라는 죽음의 공간을 평화와 화해가 넘치는 역사적 화해의 공간으로 되살려야 할 의무가 바로 우리에게 있다고. 촛불은 그 다짐의 약속이며,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남은 진실을 바로 우리가 기록하겠다고 말이다.

 

*2017년 1월 20일 녹색당 서울시당에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자 X의 세상 읽기]라는 연재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책은 생각의 집합체입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생각이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그 책은 다시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생각의 선순환이 잘 이뤄진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상상의 나래를 펴자! 책으로 꿈꾸는 생각의 혁명!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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