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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5.18 당시 기총소사의 진실을 밝힐 유력한 증거 나오다

by 생각비행 2016. 12. 23.

“19일 오후 트럭을 타고 羅州로 대피했다. 20일 光州의 세무서와 MBC KBS가 불타고 시민들이 광주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광주로 들어갔다. 시내 곳곳마다 검은 연기가 솟아 올랐고 군용트럭에 탄 시민들이 애국가와 반정부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오후 2시쯤 군용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아봤는데 갑자기 월산동로터리 부근에서 헬리콥터가 나타나 사격을 가했으며 길가의 한 학생이 쓰러졌다.”

(광주사태부상자회 이광영 부회장)


“한편 금남로에서는 도청 부근 상공에 군용 헬리콥터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MBC가 있는 제봉로 근처에서 기총소사를 하기 시작했다. 금남로 주변의 골목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일시에 땅바닥에 엎드리거나 건물안으로 숨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희생되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출처 - 5.18기념재단


군부 독재가 자행한 자국민 학살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1980년 5.18민주화항쟁. 전두환 등 지휘자의 부정과 은폐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정황이 담긴 증언과 기록을 보다 보면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그것도 적이 아닌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국민을 향해 어떻게 군인이 총질할 수 있는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확실하게 인정되지는 못했습니다. 군사 독재 정권이 헬기에서 기총소사했다는 광주 시민들의 증언과 기록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12.12 관련 재판에서도 군 당국 역시 헬기나 탱크 등의 투입은 없었다고 잡아뗐죠.


출처 - SBS


그런데 지난 12월 15일 5.18기념재단의 발표에 의하면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군요. 전두환 정권이 시민을 학살하는데 헬기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 말입니다. 지난 13~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광주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총탄 흔적 130여 개를 육안으로 확인했습니다. 총탄 흔적은 1980년 5월 당시 전일방송국이 있던 10층 내부의 기둥에서 50여 개, 천장에서 30여 개, 바닥에서 50여 개 등 총 130여 개가 나왔습니다. 국과수는 총탄 흔적의 방향이나 각도 등을 고려할 때 공중에 떠 있는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탄흔 크기로 볼 때 헬기에 달린 기총보다는 작은 5.56mm 총탄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 헬기에 탑승한 계엄군이 소총으로 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5월 당시 금남로 주변에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으므로 계엄군이 헬기를 동원했다는 것에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1980년 5월 당시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소유의 건물이었던 전일빌딩 10층은 전일방송 영상 데이터베이스 사업부가 사용했는데, 당시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광주공원, 사직공원, 월산동 인근에서 헬기 사격에 대한 증언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희생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5.18 이후 10층은 사무실을 비웠다고 합니다. 그 후 쭉 공실이었던 이 건물에서 무더기 총탄 흔적이 나올 거라곤 광주시나 5.18 단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총탄 자국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출처 - 한겨레


계엄군이 헬기 사격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군 보고서가 최근에 확인된 바 있습니다. 전 5.18유족회장인 정수만 5.18연구소 비상임연구원은 1980년 9월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육군본부에 제출한 '광주 소요사태 분석 교훈집'에 헬기 사격 요청 내용이 있다고 지난 18일 밝혔습니다. 보고서에는 항공기임무 항목에 '무장 시위 및 의명 공중화력 제공' 요청이 있을 시 공중 사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공중 사격 지시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뤄졌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군은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의혹을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해왔으나 최근 드러난 증거를 통해 5.18 민주화항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의 책임을 더 깊이 물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문제는 전일빌딩의 보존 방식입니다. 1968년 세워진 전일빌딩은 노후화되어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5.18 당시 옛 전남도청 광장, 분수대에서 쫓겨온 시민들이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긴 곳이 바로 이 건물이었고, 그당시부터 총탄 흔적이 꾸준히 발견되는 사실 등을 이유로 5.18 단체 등은 리모델링 계획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광주시가 전일빌딩의 노후화와 사적가치 등의 조사를 시행하고, 이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건물 10층에서 헬기 사격 탄흔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하려던 계획을 바꿔 체계적인 건물 보존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능하다면 국가사적지로 정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원폭돔이나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처럼 역사의 흔적이 담긴 상징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삼엄한 군사 독재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저항한 민주 시민들이 있었음을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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