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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취업하려면 정치적 신념마저 포기하라는 헬조선의 자화상

by 생각비행 2015. 11. 12.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헬조선 등등 갖가지 말들이 꽁꽁 얼어붙은 청년들의 취업 현실을 반영하는 가운데 지난달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이 22.9퍼센트로 정부의 공식 실업률 11.1퍼센트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감 실업률은 정부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잠재 취업가능자도 포함하기 때문에 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청년들은 갖가지 '노오오오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예전보다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박근혜 정부가 야기한 국정교과서 파문과 아울러 해괴한 스펙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청년들의 '정치 성향'이라는 평가잣대입니다. 정치 성향이 어떻게 취업하려는 청년들의 스펙이 될 수 있느냐고요? 글쎄요. 정부와 기업의 시각은 다른 듯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국정교과서 찬반을 물은 아모레퍼시픽


주식시장에서 일명 황제주로 불리는 아모레퍼시픽. 지난 4월에는 1주에 무려 400만 원을 넘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취업 대상자의 채용 면접에서 국정교과서 찬반을 물어 물의를 일으킨 것이죠.


출처 - YTN

 

한 면접 당사자가 자신의 SNS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형 인턴 채용 2차 면접에서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강한 의지를 표하신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면접자는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되는지 면접관에게 물어본 후 국정교과서는 사실상 바람직한 결정이라 할 수 없다며 역사를 보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면접관은 "그래서 국정교과서 찬성이에요 반대예요?"라고 직무와 전혀 관계없는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면접자는 국민들이 비판과 견제의 시각으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는데, 결국 채용에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1차 면접에서 언변이 우수하다고 호평받은 인재였는데도 말이지요. 파문이 확산하자 아모레퍼시픽은 부사장 명의로 해명 자료와 함께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분개한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에 들어갔습니다.

 


'정치 신념'을 개인 정보로 수집하려다 역풍 맞은 SK


국내 최대 통신사 SK의 앱스토어인 T스토어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은 최근 개인정보 취급방침을 개정하면서 이용자의 사상과 신념, 노동조합, 정당의 가입, 탈퇴, 정치적 견해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해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T스토어의 추천서비스를 좀 더 정교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우리나라 상황상 굉장히 민감한 정보를 별생각 없이 수집하려다 역풍을 맞은 셈입니다. SK플래닛의 개인정보 취급방침 개정안에는 이용자의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유전정보, 범죄경력자료에 해당하는 정보 등도 포함되어 있어, 인터넷 빅브러더를 꿈꾸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출처 – 블로터


민감한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일개 기업이 수집하려는 행위도 무시무시하지만, 요즘 같은 정치 상황에서 수집된 정보를 개인 사찰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끔찍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미 국정원을 필두로 한 개인 사찰이 비일비재하며 카카오톡 이용자의 정보를 국가기관이 마구잡이식으로 수집 또는 요구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논란과 반발이 정치권으로 번지려 하자 SK플래닛은 이 서비스와 동의절차를 하루 만에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행정고시, 최종면접에서 사상검증까지


취업에 몰리고 몰린 끝에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맨 청년이 부지기수입니다. 그중에서도 행정고시는 공부를 통한 성공담의 꽃일 겁니다. 그런데 스펙을 가장해 사기업이 취업 준비생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고 사상을 검증했던 행태가 공무원 시험에서조차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달 말 5급 행정고시 최종 면접에서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왔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아울러 공무원으로서 종북세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답변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답니다. 더구나 행정고시 최종 면접에는 한강의 기적, 비약적 경제발전, 새마을운동을 찬양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제시했다고 하는데요, 면접 참가자들이 최종면접 동안 사상 검증을 당하는 줄 알았다고 성토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최종면접은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상 옳다고 생각하는 쪽보다는 문제를 낸 정부 쪽 입맛에 맞춰 답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새마을운동을 비판하는 '좌편향'된 사람들은 이전에 아무리 우수한 성적을 거뒀더라도 최종면접에서 탈락시키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굳센 의지가 드러난 꼴입니다.


최종면접 참가자들은 올해부터 면접 때 사상을 검증해서 애국 보수우익 아니면 다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불만과 불안을 쏟아냈습니다.



먹고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고 겁박하는 박근혜 정부의 비열함


이뿐이 아닙니다. 세월호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문제가 되어 저축은행 면접에서 탈락한 청년, 야당 지지자이면서도 스펙을 위해 새누리당 산하 단체에 가입한 청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헬조선은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성향과 신념조차 내팽개쳐야 하는 현실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면접 문제로 사상을 검증하라는 정책이 정부에서 직접 내려오지는 않았겠지요. 기업들이 박근헤 정부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긴 결과일 겁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지성과 비판정신의 소유자를 뽑아봐야 대들기만 하고 피곤할 테니 노예근성에 물든, 알아서 기는 취업 대상자를 뽑는 수단으로 사상 검증이라는 잣대를 들이댔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와 권위주의가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지점이 바로 여깁니다. 박근혜 정부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기업들이 알아서 조심하는 가운데, 취업 준비생들은 살길을 찾아 자기 신념을 배신하고 자존심마저 버려야 하는 분위기가 조장되는 것이죠. 안 그래도 치열한 취업 전쟁에서 정치적 성향이 '스펙'이 되거나 최종 면접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잣대가 된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참으로 악랄하고 비열한 방법입니다. 취업의 문 앞에서 신념과 자존심마저 저버리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사회라면 어떤 희망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까요?

 

 

독립, 하셨습니까?

 

우리는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꿉니다. 하지만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살거나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비단 젊은이만이 아니라 50대, 아니 은퇴 이후 세대까지도 '독립'이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분들을 격려하고 좋은 예를 소개하기 위해  《독립, 하셨습니까》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백댄서(연습생), 연예기획사 아르바이트, 할인마트 판매직, 잡지사 리포터, 시민단체, 사보 취재 기자 등을 거치며 이 땅의 젊은이와 비슷한 고민의 시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인 독립보다 더 중요한 '삶의 독립'을 선택했습니다. 틈틈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죠.

 

《독립, 하셨습니까》는 꿈을 꾸며 자기만의 길을 낸 9명의 대상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저자 자신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고단한 삶을 견디면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꾸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스스로 성찰하며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삶의 여정에서 '무엇이 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의 직업에서는 특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형용구'에서 그의 인생, 신념, 지향점을 파악하기 때문이지요.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이 담긴 《독립, 하셨습니까》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며 삶을 개척하려는 이 땅의 존재들을 위한 응원가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열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내는 것은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을 가는 것에 비해 몇 배는 힘든 여정입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 '실패'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저자가 만난 9인의 삶이 오롯이 증명합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여행, 공동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삶과 새로운 접근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대안적 삶을 생각하는 공동체는 취업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삶을 선물합니다. 공동체는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고민하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공동체는 사회의 병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선구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점차 사라져 가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가치를 함양하는 교육장이기도 하지요. 

《더 나은 삶을 향한 여행, 공동체》는 공동체의 역사와 발전사, 다양한 공동체의 철학과 이념, 두 저자가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체험한 공동체의 실제 모습, 세계 유수의 공동체를 방문하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기에, 공동체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많은 문제의 해결점을 제시해줍니다. 내용의 충실함이나 깊이로 보나 이 책은 공동체를 안내하는 데 있어 고전의 반열에 듭니다.

 

이 책은 이 땅에 좋은 공동체가 더 많이 생겨나고, 더 많이 가꾸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은혜공동체'는 약 80명 정도의 구성원이 경희대 서울캠퍼스 근처에서 함께 살아가는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이뤄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며 살다 보니 다른 공동체의 삶에도 점차 관심이 생겼고 다양한 자료를 함께 공부하던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10년 전에 출간된 한국어판은 절판된 지 오래였습니다. 

 

이에 은혜공동체 구성원들의 제안으로 번역자 황대권과 출판사 생각비행이 뜻을 모아, 우리 사회에 행복한 공간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식으로 재출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누구 하나라도 욕심을 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전 책의 내용을 새롭게 다듬는 작업, 현재 시점에서 각종 공동체의 현황과 추천 자료 등을 보완하는 작업은 공동체의 힘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동체는 처음엔 자급자족하는 단순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서서히 사회 환경과 구성원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점차 유기농 관련 사업에서부터 컴퓨터 사업과 같은 첨단 사업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지요. 이때 중요한 건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기성 사회와 교류하고 적응하는 ‘균형 감각’입니다. 공동체라면 막연히 주류 사회에서 이탈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는 자생력을 갖기도,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습니다.

 

공동체는 더 나은 삶을 구상하고 창조하는 힘을 기르는 곳입니다. 공동체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우리는 익숙한 세상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했던 멋진 말처럼 "상상력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Imagineers)"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공동체적 가치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창조적 의지의 공동체로, 스스로 치유가 가능한 세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헌신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독립을 꿈꾸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여러분을 응원하며 사회에 필요한 책을 열심히 펴내면서 함께하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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