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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아마존 한국 진출? e북의 순기능과 역기능

by 생각비행 2014. 2. 27.
일주일 전 보도된 《국민일보》의 단독 기사가 일거에 출판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 입성을 확정했던 세계 최대 유통업체이자 서점인 아마존이 e북 시장부터 공략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유통업체 관계자는 19일 "최근 한국에 아마존 고위 인사가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는 당분간 한국에서 종합쇼핑몰 사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말했다. 대신 아마존은 e북 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 중이다. 책이나 음악의 경우 가전제품이나 의류에 비해 단기간에 가입자를 늘리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게 출판업계 설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14년 콘텐츠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e북 콘텐츠 시장(솔루션 제외)은 10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도 20∼30% 성장할 전망이다. 전자출판협회는 단행본 기준으로 2013년 e북 콘텐츠를 전년보다 5만 종 이상 증가한 20여만 종으로 집계하고 있다.


세계적인 출판 대국인 일본에서 아마존이 '아마존 재팬'을 세워 공식 진출한 지 1년 만에 e북 시장의 38.3퍼센트를 점유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공짜에 가까운 e북 리더 킨들파이어(Kindle Fire)[각주:1]를 내세워 e북 시장을 아마존이 평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몇 년 사이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각주:2] 직접구매로 우리나라 소비자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존에 익숙해진 상태에 있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진출로 우리나라 e북 시장이 활성화되어 전체적인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이 나오는 한편, 아마존의 독식으로 도서 시장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까지 혼재되어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분이 관심을 보이는 e북과 e북 시장의 이모저모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서구 시장이 주도하는 세계 e북 시장
 
앞서 말씀드린 출판 대국 일본조차 일본 국내 사업자들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e북 시장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2012년 아마존 재팬의 킨들파이어 출시와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이 캐나다 e북 업체 코보를 인수 합병, 애플의 아이북스 스토어, 구글의 구글플레이북스 등 서구 시장의 선도적인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경우, 보급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아이패드를 위시한 킨들파이어, 넥서스7 등 태블릿들의 보급이 빨라 전반적으로 e북 시장 자체는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비석세스

기기 성능 경쟁이 조만간 마무리되면 그때부터는 콘텐츠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의 교보문고라고 할 수 있는 키노쿠니야를 누르고 도서 유통 1위에 오른 아마존 재팬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습니다. e북에 적합해 콘텐츠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분야는 단연 만화입니다. 대중에게 친숙한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지갑을 쉽게 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도 웹툰을 중심으로 스마트 기기에서 많은 실험을 진행 중이고, e북 시장에서 판타지, 무협 같은 장르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일본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똑같이 출판 불황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통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종이책처럼 반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e북 쪽으로 점점 무게중심이 옮겨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북의 빅데이터

콘텐츠 전쟁으로 귀결되는 e북 시장에서 독자의 삶의 방식과 독서 유형을 확인하는 일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중요한 작업이 될 텐데요, 단순히 종이책의 디지털화를 넘어 e북에 최적화된 편집과 디자인을 추구하고 독자의 독서 유형을 분석한 마케팅은 날이 갈수록 더 요구될 것입니다.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코리아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통계를 공개한 e북 서비스 업체가 있습니다. 미국의 스타트업[각주:3]인 스크리브드와 오이스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독자들의 취향과 그에 따른 소비 유형을 예시했습니다.

직장 동료가 추천해준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다음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다면 로맨스 소설에 손이 갈지도 모르겠다. 텍사스주나 조지아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이른 아침 무렵까지는 스릴러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필립 K. 딕이라면 와인이나 위스키보다는 맥주에 관한 책이 잘 어울릴 것이다.


이 업체들이 독자를 모니터링해 공개한 통계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도출됩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훨씬 더 솔직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대중 서적이 더 많이 팔리지만, 별점 등의 리액션은 고전 명작이 더 많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고전을 읽으면 꼬박꼬박 별점 5개를 매기지만 《다빈치 코드》는 별점을 아예 매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 자기계발서는 굉장히 인기 장르지만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은 20%도 되지 않는다. 반면 미스터리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한 사람이면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읽는 사람이 80% 이상이다.

- 평전을 읽는 속도는 시간당 20쪽 정도지만, 에로틱 소설은 그 3배 이상이다.

-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독서 속도가 빨라지는 독자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는 가속계수가 높을수록 해당 책의 평점도 덩달아 높아진다.

- 오프라인 서점에서 볼 법한 상투적 마케팅 문구로 치장한 책보다 특정 개별 회원이 어떤 책을 추천할 때 브라우징 트래픽이 10배 이상 증가한다.

사실 이 통계를 공개한 스타트업들은 e북 콘텐츠 제공 업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e북 구독 서비스 업체들입니다. 종이책처럼 e북을 구매하는 방식을 넘어, 일정 금액을 내면 도서관처럼 제한된 권수 안에서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결제 단계를 최소화하되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구매할 위험을 최소화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죠.


e북의 역기능, 사생활 침해와 창작 의욕 저하

하지만 e북을 통한 독서 행위에는 그만큼 역기능도 존재합니다. 바로 개인 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문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e북 리더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출판사들이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독자들의 독서 패턴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종이책 판매 부진으로 사양길에 들어섰던 출판업계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독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파악해 공략할 수 있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작가의 창작의욕 저하나 독자의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e북을 읽는 사람의 3분의 1이 에로틱한 소설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한다는 통계를 공개했습니다. 《해리포터》 같은 아동도서를 읽는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도 57퍼센트였고, 26퍼센트는 SF 장르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남에게 숨긴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e북 독자 5명 중 1명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출은 독자의 반응과 완전 반대로 e북 독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스릴러와 로맨스, 유머와 SF, 판타지 장르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어떤 의미에서 대부분이 e북 리더를 숨겨 놓은 야동을 보듯이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e북 업체는 독자가 읽는 책의 모든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사생활 침해와 같은 문제를 우려할 만합니다.

한편 작가로서는 작품 집필에 방해를 받기 쉽습니다. 출판사로서는 e북 판매 마케팅 자료가 축적되면 좋겠지만, 도출된 결과를 작가에게 강요하기 시작하면 창작의욕을 꺾을 수도 있습니다. 한 e북 출판사는 연애소설 독자들의 취향을 분석한 결과 검은 머리와 녹색 눈동자를 지닌 유럽권 말씨를 구사하는 30대 남성이 가장 완벽한 남자 캐릭터로 뽑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런 캐릭터를 작가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좀 갑갑해집니다.

출처 - 황금가지

2013년 5월, 이야기의 제왕이라 인정받는 스티븐 킹은 자신의 신작 《조이랜드》를 당분간 e북으로 낼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e북의 선구자였던 스티븐 킹으로서는 이례적인 발표였는데요. 서점에서 종이책 구매가 촉진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값싼 e북에 고전하던 전통 서점들은 스티븐 킹의 이 지원사격에 힘을 얻었습니다.

2012년 통계이긴 합니다만, e북 리더로 e북을 보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종이책으로 독서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e북을 선호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현실로 나타난 통계는 젊은층과 노년층의 e북 보유 비율은 특별히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종이책과 비교할 때 전체 비율은 갈수록 e북으로 옮겨가겠죠.

아마존이 우리나라 e북 시장에 진출하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아마존의 무차별적인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제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국내로 들어오면 출판 시장뿐만 아니라 유통 업체까지 위협을 받을 것"이라며 "독일에서 출판 업계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아마존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프랑스는 정부가 입법을 강화해 아마존의 무료 배송 등을 철저히 막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존의 행보를 지켜보며 국내 출판계가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1. 아마존닷컴의 태블릿PC. 애플 아이패드(499~799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199달러에 출시되어, 아이패드가 장악한 태블릿PC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에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전후면 카메라를 없애고 저장공간을 최소화하여 가격을 낮춘 대신, 1800만 곡의 노래ㆍ영화ㆍ전자책 등 아마존이 갖춘 콘텐츠에 최적화된 미디어로서 기능하는 데 중점을 뒀다. [본문으로]
  2.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 11월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전통적으로 연말 쇼핑 시즌을 알리는 시점이자 연중 최대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을 의미한다. '검다'는 표현은 상점들이 이날 연중 처음으로 장부에 적자(red ink) 대신 흑자(black ink)를 기재한다는 데서 연유한다. 전국적으로 크리스마스 세일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날이기도 해서 관련 업계에선 이날 매출액으로 연말 매출 추이를 점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자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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