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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일상비행

19금 전시회가 있다? - LUST(욕정) 한중일 춘화전

by 생각비행 2010. 10. 21.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티베트까지 아시아의 다양한 전통문화유산을 모아 아시아 문화 전문 박물관으로 자리 잡은 화정박물관에서 19금, 미성년자 관람불가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제목은 '욕정'이란 뜻의 LUST.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춘화를 중심으로 각국의 성애(SEX)에 대한 관념을 돌아보고 그 특징도 비교해볼 수 있는 전시회죠. 그곳에 생각비행이 다녀왔습니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저는 경복궁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경복궁역은 역 자체가 하나의 유물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소 무겁기도 한 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_^;;


가을이라 그런지 경복궁역 내 서울메트로 미술관 1관에서도 미술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10월25일까지 계속하는 전시회라니 이번 주말에 가시면 LUST 한중일 춘화전을 보러 가시는 길에 공짜로 미술품을 더 감상하실 수 있겠네요.^_^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1020번이나 1711번 버스를 타고 화정박물관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버스로 열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이니 걸어서 갈 생각은 안 하는 편이 좋습니다. ^_^;;


문앞에는 덩치는 크지만 북실북실한 개가 한 마리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을 향해 짖지도 않고 수더분하고 착하더군요. 아마도 화정박물관의 마스코트인가 봅니다.^_^


지하에는 간단한 식사와 와플, 커피를 들 수 있는 카페가 생겼나 봅니다. 들어가 보지 않아서 맛은 잘 모르겠어요.


LUST. 포스터를 보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입장권을 살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입장료는 5000원이며, 이 입장권으로 화정박물관 2층에서 전시 중인 LUST 한중일 춘화전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춘화 특별전 입장권을 사면 1층의 상설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가시는 김에 1층 전시까지 마저 관람하시는 건 어떨까요?^_^


2층으로 올라가 LUST 한중일 춘화전 첫 번째 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안쪽은 유물 보존을 위해 사진 촬영이 엄금되어 있어 아쉽게도 직접 촬영한 사진은 없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대신 대표적으로 전시된 유물들을 짚어보지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식욕, 수면욕, 배설욕, 성욕 이렇게 4대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욕은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대표적인 욕구였습니다. 춘화는 이 욕구 중 성욕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문화라는 게 당연하겠죠. LUST 한중일 춘화전은 춘화를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전제로 사회적으로 규정 및 규제당한 성의 비상구이자 해방구 그리고 탈출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관람할 수 있는 춘화는 조선의 춘화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까지 대여해 전시해놓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다시피 조선의 춘화는 자극적이라기보다는 해학적입니다. 직접적인 장면은 자제하고 벗어놓은 남녀의 신발과 굳게 닫힌 문으로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의 재치 있는 저항이란 생각도 드는군요. 물론 조선의 춘화라고 다 사시장춘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 상당히 직접적인 작품도 많아요. 그런 작품은 직접 보실 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함구하겠습니다. ^_^

그리 많지 않은 조선의 춘화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중국의 춘화가 보입니다. 중국은 첫 코너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네요. 전족과 페티시즘. 맨 첫 화첩의 그림은 옷을 풀어헤치긴 했지만 가릴 데 다 가린 남자가 가릴 데 다 가린 여자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발에 대한 페티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었어요. 코너 제목을 보지 않고 그림만 봤더라면 이게 왜 춘화첩인지 모를 뻔했습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성적 판타지가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네요.^_^;;

또하나 중국 춘화의 특징은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을 훔쳐보는 제3자의 존재였습니다. 그림마다 있다고 할 만큼 제3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페티시에 이어 관음증까지 다양한 성적 도착증이 등장하니 에로틱하다는 느낌을 넘어 다소 웃기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대에 그린 말 위의 사랑이란 작품이 가장 우스웠습니다.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체위들이라 야하다기보다 웃음이 납니다. 그림뿐 아니라 모조 음경 등 입체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으니 빼놓지 말고 구경하세요. ^_^;;

중국 코너가 끝나면 첫 번째 관의 마지막 순서로 조촐하게 세크레툼이란 이름의 서양 에로틱 아트 코너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세크레툼은 비밀이란 뜻에 가깝지만 더 정확하게는 '사적인'이란 뜻이라더군요.
19세기 이후 서양의 에로틱 아트라 그런지 묘사가 세밀하고 오늘날의 기준과 가장 흡사하게 음란합니다. 형식은 그림책 혹은 만화책 같은 느낌입니다. 이 코너는 작품이 몇 점 없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첫 번째 관을 나와 맞은 편으로 가면 두 번째 관인 일본관이 나옵니다. '과연 일본!'이라고 해야 할까요? 관 하나가 따로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죠. 춘화전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성에 대한 개방적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우키요에'와 '춘화'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키요에(浮世繪)는 일본 서민회화의 한 양식으로 보통 목판화를 말합니다. 소재는 대부분 춘화를 포함한 풍속화입니다. 우키요에라고 하면 보통 다색 인쇄 판화인 니시키에(錦絵)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다색 인쇄 판화 기술이 발전해 명확한 색분리가 이루어지면서 반복해서 찍은  선명한 색채가 훗날 유럽으로 건너가 고흐, 마네, 고갱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책을 만드는 생각비행으로서는 동서양의 예술적 교류와 활판인쇄부터 다색 인쇄 판화까지 인쇄 기술의 발전이란 면에서도 놓칠 수 없는 전시회였습니다. ^_^


일본에는 유명한 화가들의 춘화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입니다. 우키요에와 유럽 인상파를 얘기하는 데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표작이죠.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본 적 있는 그림일 겁니다.^_^

이렇게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화가의 춘화가 이번 LUST 한중일 춘화전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춘화첩을 시집가는 딸의 성교육을 위해 사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일본의 춘화는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춘화 중 가장 과장된 형태와 크기의 남녀 성기를 강렬한 색채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본 춘화실 끝에 전시된 작자 미상의 고인고실은 간결하게 생략된 인체 그림이 오늘날의 일본 만화의 원형을 보는 듯해 재미있었습니다.^_^

7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이지만 LUST 한중일 춘화 특별전 도록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살짝 살펴볼까요?



그리 큰 규모의 특별전은 아니었지만, 사는 나라, 시대, 사람들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성에 대한 관심과 욕망이 있었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풍성한 가을 색다른 19금 전시회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떠신지요?^_^

전시 기간은 2010년 9월14일부터 2010년12월19일까지. 전시 시간은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19금 미성년자 관람불가 전시회이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LUST 춘화 특별전의 입장료는 5000원, 평소 화정박물관의 상설 전시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화정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hjmuseum.or.kr/museum/main.a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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