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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99%를 위한 위한 기업, 협동조합의 미래

by 생각비행 2012. 9. 7.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2012년은 UN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은 '세계협동조합의 날'입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1923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도 전 세계의 협동조합은 대규모 파산이나 조합원 해고 없이 어려운 상황에 잘 대처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협동조합이 이 기간에 성장하고 발전하여 지역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이 경제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UN은 2009년 12월 뉴욕에서 열린 제64차 정기총회에서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협동조합이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는 자율적인 조직을 말합니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 다수가 서로 뭉치고 나누는 호혜의 힘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자본주의 독점의 치명적인 폐해를 극복하려는 기업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일반 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은 국가나 복지단체 혹은 자선단체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책임에 바탕을 두기에 요즘 뜨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99퍼센트의, 99퍼센트에 의한, 99퍼센트를 위한' 기업인 셈입니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 공식 로고

세계협동조합의 해 로고는 협동조합의 7원칙을 상징하는 7명의 사람이 협력하여 정사각형의 물체를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정사각형의 물체는 협동조합 사업의 성공적인 진행을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7원칙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 걸까요?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원칙의 변천 (출처: 세계협동조합의해 누리집)


협동조합의 7원칙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4. 자율과 독립
5.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6. 협동조합 간 협동
7.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국제협동조합연맹은 오랜 논의를 거쳐 1995년 100주년 총회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선언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여러 상황에 놓인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으로 협동조합 운동의 나침반이자 방향타인 셈입니다.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원칙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처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원칙이란 계율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행동 판단과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된다. 협동조합들은 원칙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정신을 따라야 하며, 각 원칙이 품고 있는 정신을 전체적으로 협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협동조합의 원칙은 연례행사에서만 꺼내는 진부한 목록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틀이자 에너지를 제공하는 요인이다.

_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발표한 협동조합의 원칙 서문에서

   
세계적인 협동조합, 어떤 게 있나?

FC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는 1899년 11월 29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를 연고지로 삼아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축구 클럽입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17만 3000여 명의 시민이 출자자이자 주인인 셈입니다. 클럽 회원 중 가입 경력 1년 이상,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6년마다 치르는 회장 선거에서 투표할 권리가 있고 이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10년 6월 산드로 로셀(Alexandre Rosell)은 역대 최고 득표율인 61.35퍼센트를 얻어 회장이 되었습니다. 

2006년 9월 12일 FC 바르셀로나는 유니폼 스폰서십을 유니세프와 체결하여 많은 이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니폼 스폰서십은 돈을 받고 특정 회사의 로고를 새겨 홍보하는 대가로 수익금을 창출하는 구조인데요, FC 바르셀로나는 에이즈에 노출된 전 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해 5년간 구단 수입의 0.7퍼센트를 유니세프에 지원하기로 계약했습니다. FC 바르셀로나가 일반적인 축구 클럽 이상의 클럽인 까닭이 바로 이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AP통신
통신사는 뉴스를 모아 다른 신문사, 잡지사, 방송 사업체에 제공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합뉴스, 중국의 신화통신, 일본의 교도통신이 바로 이런 통신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5대 통신사로는 AP, AFP, TASS, UPI가 있습니다. 

AP통신은 정부 후원이나 상업적 방식이 아니라 미국 내 1400여 개 이상의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가 회원으로 참여하여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뉴스의 수집과 전송)을 위해 각기 발행 부수의 비율에 따라 경비를 분담하여 운영하는 협동조합입니다. 1848년 뉴욕의 6개 신문사가 입항하는 선박으로부터 유럽의 뉴스를 공동으로 취재하기 위해 결성한 '항구뉴스협회(Harbor News Association)'가 그 기원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많은 신문사가 이중, 삼중으로 비용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동의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겠다고 생각하여 뉴욕 AP를 거쳐 지금의 AP(Associated Press)로 개칭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2010년 현재 수천 개의 매체에 문자, 사진, 그래픽, 음성, 영상 형태의 뉴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지국에서 37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 부문에서 30개의 상을 받는 등 총 49개의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몬드라곤
몬드라곤은 1950년대에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발전시켜온 협동조합복합체입니다. 그 안에는 가전제품 기업도 있고, 식품회사도 있으며, 유통업체도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노동인민금고’라는 신용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나로 묶여 있으며 전체 사원 수는 무려 8만 3000명이 넘습니다.

몬드라곤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해고를 하지 않은 기업으로 유명해졌는데요, 일시적인 휴직자가 있긴 했지만 노동자들은 그 기간 동안 80퍼센트의 급여를 받고 재교육을 거쳐 다른 관계사로 복직했다고 합니다. 당시 스페인의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육박했는데 어떻게 몬드라곤은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현대적인 거대그룹인 몬드라곤은 종업원들이 경영진을 선출하며 종업원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협동조합입니다. 여기에서는 재벌 총수가 독재할 수도 없고, '1주 1표'의 주주 자본주의 원리가 아니라 '1인 1표'의 경제 민주주의로 조직을 운영합니다. 스페인의 10대 기업 집단 안에 들어가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는 '이익 극대화'가 아닌 '고용 확대'인 까닭에, 3만 5000명의 노동자 조합원은 1만 4000유로(약 2000만 원)의 출자금을 내고, 평균 7300만 원의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출자에 따른 배당금은 계속 쌓아놓았다가 퇴직 시 거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경쟁력

2008년 시작된 세계 공황으로 2012년 현재에도 세계 전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나 도요타 같은 대그룹도 이 기간에 수많은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정규직을 해고하지 않고도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은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이 일반 기업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관계에 불과합니다. 소비자는 기업의 고객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홍보하여 가능한 한 많은 상품을 소비하도록 유도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능한 기술혁신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매출을 일으키려고 노력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 지배계급 안에만 맴돌며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점점 기업은 부유해지고 국민은 가난해지는 것이지요.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 (출처: 2012 세계협동조합의해 누리집)

하지만 협동조합과 조합원의 관계는 이러한 '고객' 관계와는 크게 다릅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모두의 협동에 의해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상부상조적인 결합을 확산함으로써 생산이나 소비에 내재하는 제반 모순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협동조합은 대주주가 결정권을 독점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소비자 또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합니다. 사회적 경제는 탐욕 대신 협동, 신뢰, 명예 같은 동기로 움직입니다. 또한 고용, 민주주의, 환경 등의 성과를 재무 성과보다 앞세웁니다. 이런 차이점이 오히려 일반 기업보다 경쟁력 있는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물론 협동조합이 기업 조직의 유일하거나 대안적인 모델은 아닙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함께 시장에서 선택 가능한 매우 바람직한 조직 모델이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어떤 특수한 영역이나 특정 시장에 한정되는 예외적인 조직 형태가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주식회사와 어깨를 견줄 수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지역의 식료품 매장을 운영하는 '유니콘'이라는 노동자협동조합 매장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커다란 글귀가 있습니다.

"삶이 먼저다. 그리고 삶의 실현 방식이 경제다. 그 경제의 조직 방식이 협동조합이고 그건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그건 철학의 문제다." 

어떤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조직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고 철학의 문제이지만, 1884년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최초의 협동조합이 탄생한 이후 협동조합은 수많은 경험과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개념과 원리에 그러한 자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합원의 참여를 통해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형적인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은 그런 정신과 원리를 조직 문화로 정립하여 전수하기 때문에 무형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있는 셈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미래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모든 경제 영역에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8가지 종류의 협동조합만 법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산림조합, 새마을금고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협동조합은 필요할 때마다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되었습니다. 

(출처: 한겨레)


이처럼 대한민국은 8개 특별법으로 정하지 않은 어떤 협동조합의 설립도 불가능했기에 협동조합의 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사과 재배 농민이 농협을 만들려면 200명 이상이 3억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해야 했으며, 생협의 설립 요건은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협동조합의 설립 요건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2011년 12월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됨으로써 다양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출자금 제한 없이 조합원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국회는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여 공포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새로운 경제사회 발전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농업협동조합법」등 기존 8개의 개별법 체제에 포괄되지 못하거나 「상법」에 의한 회사설립이 어려운 경우 생산자 또는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경제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주로 수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하며, 협동조합 등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자주·자립·자치적인 협동조합의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은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 정부 간섭의 축소, 사업영역의 개방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율과 독립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되살릴 수 있고, 그동안 정부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던 관제 사회적기업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주식회사 형태를 띤 다수 사회적기업들은 영리 추구와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선을 빚기도 했으나 조합원들의 편익 극대화가 목적인 협동조합이라면 그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협동조합의 활성화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업체가 경제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


이런 이유로 사회적협동조합에 관한 기대가 큽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정의해 기존에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단체, 비영리법인들이 행하던 사회적 목적사업을 협동조합이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협동조합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와 복지를 활성화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좋은 기회가 열린 건 사실이지만,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 민주적 운영,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을 고민하지 않으면 그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더라도 협동조합이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협동은 희생을 기본으로 합니다. 조합의 이익을 우선할 때 개별적 희생이 전체적인 보상으로 돌아옵니다. 협동의 원칙을 이해하고 협동으로 접근할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꿈을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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