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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바다소풍

《오동명의 바다소풍 13》삼나무 찻상에 깃든 바다

by 생각비행 2011. 7. 2.
바다만 바라보다 보면 그 속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속이 더 보이듯이요.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 옳지만은 않습니다. 바닷속도, 사람 속도.

날치(물 위로 나니 이렇게 부릅니다. 날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동네 바닷사람은 주둥이가 뾰족한 학꽁치라고 합니다)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물을 박차고 오르려면 힘이 꽤 들 텐데도 거푸 날며 물속을 이동합니다. 노는 걸 겁니다. 굳이 필요 없을 듯한 유영을 하는 새들처럼요.

먹이를 찾으려고 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건 새들로부터 오래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아마 물고기도 그럴 겁니다. 날아오른 물고기 한 마리를 쫓아 눈으로 따라갑니다. 앞으로만이 아닌 동근 원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물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 것 같진 않으니 분명 노는 것, 노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놈도 지쳤는지 아니면 내가 따라 잡질 못했는지 녀석의 놀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나 봅니다. 내친 김에 나도 물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럴 땐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입니다.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눈을 감으며 바닷속으로 더 깊이 빠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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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차 한 잔을 준비해 찻상에 올려놓습니다. 제주도 삼나무 찻상은 목공소에서 손수 만들어온 겁니다. 삼나무 무늬 안에 물고기 한 마리가 보입니다. 사실은 옹이입니다. 삼나무 무늬 안에 타원의 물결이 보입니다. 사실은 나이테입니다.

찻상이 바다로 보입니다. 바다를 너무 보고 온 거지요. 먹을 갈아 물고기 두 마리를 그려 넣어봅니다. 한 마리는 왠지 쓸쓸해보입니다. 바다에서 혼자 놀던 물고기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를 더 그립니다.

하나는 통통하고 하나는 홀쭉합니다. 수컷 같고 암컷 같고, 사내 같고 계집 같고…. 하나가 말을 걸어오지만 하나는 새침하게 몸을 돌립니다. 살짝만, 돌아서지 않을 만큼만. 하나가 찾아나서면 하나는 꼬리를 칩니다. 약간만, 바짝 붙지 않을 만큼만.

찻상이 바다가 됩니다. 두 뼘밖에 안 되는 작은 찻상이니 바다라기보다는 연못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연못이 된 찻상에 차마 잔을 올려놓을 수 없어 바닥에 잔을 놓으니 연못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바다가, 연못이 집 안에 들어앉았습니다. 집 안이 바닷속이 되고 연못 속도 됩니다. 찻상이 세계가 됩니다.

비가 며칠째 내립니다. 제주도는 6월 중순쯤 장마가 시작되는데, 처음 이 계절을 맞는 사람은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젓습니다. 습기 때문이지요. 제주도 입도 2년차인 나는 그러려니 하며 더 즐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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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물고기가 노니는 찻상 곁에 막걸리 잔을 두고 제주 막걸리(서울 가면 그곳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이젠 제주 막걸리 외엔 다른 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곳 막걸리가 입맛에 맞는 것인지… 물이 좋아 맛도 좋다고들 합니다만)를 마실까 합니다. 바닥에 잔을 내려놓는 이유는 연못가, 바닷가, 그 곁, 가장자리에서 마시고 싶어섭니다.

들어가 보는 것보다 곁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바라보며 마음을 졸이던 때가 더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섭니다. 이렇게 변죽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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