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잡지를 보면서 든 서글픔, 《SPORTS 2.0》에 대한 아쉬움

일본이 연일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조작한 말도 안 되는 교과서 출판을 허락하고 사용 비율을 올리겠다고 하지 않나, 극우 신문의 서울 지국장은 독도를 양보하라고 하질 않나, 일본 국가 차원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격분한 대한민국 일각에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본 돕기 성금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고, 모 자치단체는 모았던 성금을 다시 되돌려주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많은 시민이 실망하는 건 당연합니다.

대지진을 겪은 이후 최악의 원전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답답한 일본이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 문화의 저력을 이끌어내는 출판문화가 그것입니다. 다양한 문화 현상을 폭넓게 담아내는 잡지의 현황을 보노라면 정말로 부럽기 그지없는데요, 생각비행은 일본에서 유명한 한 스포츠 잡지에 주목했습니다. 요즘 한창 야구장이 들썩들썩하잖습니까.

일본 유명 스포츠 잡지,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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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 잡지 Number(넘버)


일본에는 정말로 다양한 잡지가 있습니다. 스포츠, 만화, 패션, 요리 등 그 분야는 실로 전 방위적인데요, 생각비행이 특히 주목한 잡지는 《Number》(이하 《넘버》)라는 스포츠지입니다. 《넘버》는 1980년에 창간되어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두루 다룹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와 같은 인기 구기 종목은 기본이고, 수영, 레이싱, 격투기(이종격투기, 프로레슬링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종목이 없을 정도죠.

이 잡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특집기사입니다. 스포츠계에서 특별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양질의 사진과 깊이 있는 내용의 기사로 내용을 꾸밉니다. 유명 선수가 은퇴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위에 보이는 특집기사는 2008년에 은퇴한 노모 히데오(野茂 英雄)를 향한 《넘버》 편집진의 열정과 회한이 담긴 특별호입니다. 여기에는 선수 시절부터 은퇴에 이르기까지 노모 히데오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 기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1980년부터 쌓아온 《넘버》의 자료(사진과 기사)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묻혀버린 한국 스포츠 잡지의 자존심, SPORT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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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잡지 SPORTS 2.0


과연 한국에 일본의 《넘버》와 견줄만한 잡지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잡지가 있었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SPORTS 2.0》(이하 《스포츠2.0》)이라는 훌륭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넘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잡지였습니다. 《스포츠2.0》도 《넘버》와 같이 버라이어티하게 스포츠를 전 방위적으로 다뤘습니다. 구기 종목은 물론이요, 스노보드를 비롯한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포츠도 소개하던 잡지였습니다.

위 사진은 황선홍 감독과 홍명보 감독을 다룬 《스포츠2.0》의 특집기사입니다. 2002년 이후 월드컵 스타들이 빠진 축구팀의 세대교체와 당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룬 대담이었죠. 이러한 특집기사는 하루하루 발행하는 신문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잡지 형식은 《스포츠2.0》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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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0의 훌륭했던 기획 기사들.


잡지 구성을 한번 살펴볼까요? <시대가 그들을 불렀다>라는 야구 특집기사가 있군요. 여기엔 한국 야구를 주름잡았던 선수와 팀에 대한 소개를 담은 기사가 있습니다. 불사조 박철순, 연습생 신화 장종훈, 거포 이승엽처럼 1982년 프로야구 개막부터 2006년까지 최고의 선수와 팀을 돌아보는 기사입니다. 올해는 프로야구 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인데요, 《스포츠2.0》이 지금도 나오고 있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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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0은 인종, 국적을 초월해 다양한 스포츠인들을 만났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스포츠2.0》은 다양한 주제로 스포츠의 여러 분야를 다뤘습니다. 잡지 표지는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유명 선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 농구의 간판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 브라질 최고의 축구 선수인 호나우지뉴,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데릭 지터에 이르는 면면을 볼 수 있었죠. 생각비행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표지는 일본 야구의 원로 장훈과 이승엽이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입니다.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 선수와 일본 야구의 원로 장훈 씨가 함께 나눈 대담이 특별기사로 실렸거든요.

일본의 《넘버》에 결코 뒤지지 않았던 《스포츠2.0》은 아쉽게도 2008년 12월을 끝으로 휴간되었습니다. 사실상 폐간이었죠. 2008년 즈음 한국을 강타한 경제위기와 그로 말미암은 광고 수주 하락이 빚은 일이었습니다. 《스포츠2.0》의 기자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만, 복간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양준혁, 그를 기록할 잡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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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선수

2010년 9월 19일, 한국 야구에서 신(神)이라고 불렸던 사나이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출신 선수로 그야말로 '기록의 사나이'라 할 만한 거포였지요. 그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아서 사람들은 그를 신, 즉 양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양준혁 선수의 현역 시절 기록
9년 연속 3할(93~2001년), 16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93~2008년), 15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93~2007년),
골든 글러브 8회(96~98, 2001, 2003, 2004, 2006, 2007),
사이클링 히트(96, 2003), 20홈런-20도루(96,97,99,2007),
타격 1위(93,96,98,01), 최다 안타 1위(96, 98), 타점 1위(94),
장타율 1위(93, 96), 출루율 1위(93,98,2006), 최우수 신인(93)

양준혁 선수의 은퇴 경기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그날 경기가 양준혁 선수 한 개인에게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팬이 양신의 은퇴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그분들은 한국 야구의 한 획을 그은 훌륭한 야구선수의 은퇴를 아쉬워했습니다.

이런 대단한 선수의 은퇴를 기념할 만한 특집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스포츠2.0》과 같은 잡지가 있었다면 《넘버》에 실린 노모 히데오 선수의 은퇴 특집기사보다 훌륭한 특집기사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국 야구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선수를 아무런 특집기사를 담은 잡지 한 권 없이 보낸다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얼마 전에 이북(e-북)과 관련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힘없고 열악한 상황의 콘텐츠 생산자들은 수익이 없이 지쳐가 줄줄이 사라지고, 결국에 상업적이고 자극적이며 획일화된 콘텐츠만 남게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은 다양한 출판문화를 장려고자 정부가 앞장서 노력하는 반면, 한국은 경제불황으로 출판시장이 어려워지자 어디에 손 벌릴 데 없는 잡지가 줄줄이 폐간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콘텐츠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독보적인 스포츠 잡지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까요?

기록은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영역입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허허벌판을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취를 보고 우리는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은 위대한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선 사람의 실수를 담은 기록은 그와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예전보다 두 걸음, 세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창의력을 제공해줍니다.

앞으로 한국에 어떠한 출판물이 새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부가 앞장서서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는 출판문화를 고양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한 실질적인 정책이 의미를 지니려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투자와 소비는 결국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최근 들어 한국에게 미운 짓만 골라하는 일본이지만, 이 기사를 작성하는 시간만큼은 그들이 축척한 출판문화가 부럽기만 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Best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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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y

    안녕하세요. 짧은 기간이지만 한 때 sports2.0에 몸담았던 사람입니다. 저도 팬이었다가 그 곳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2011.04.28 14: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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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반갑습니다. 좋은 잡지를 펴내는 데 애쓰셨던 분을 만나뵈어 저희가 더 고맙습니다. 좋은 추억거리를 주셨으니까요. 어떤 일을 하시든 큰 발전을 이루시길 소망합니다. 저희 블로그 가끔 오셔서 소식 남겨주세요.

      2011.04.29 15:39 신고